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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오마주를 위한 오마주 (2018.5.15.)

in #kr7 years ago (edited)

뭐, 저는 기능의 차이로 보니 어려움의 차이로 생각진 않고요. 그냥 드는 생각으로는, 시를 쓰고 싶었던 평론가가 많은 반면 평론가가 되고 싶었던 시인은 별로 없어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