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마이클 잭슨이라서

in #kr7 years ago (edited)


[우리가 부른 사람, 다시 부르는 노래]

고마워요, 마이클 잭슨이라서


잊지 못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보고싶은 뮤지션이 있습니다. 

뮤지션과 가상 대화를 통해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2009년 6월, 마이클 잭슨(이하 MJ)이 세상을 떠났다. 컴백 공연 This Is It을 한 달여 남긴,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그와 인연은 해를 거슬러 올라간다. 교실 뒤편에서 ‘Billie Jean’의 문 워크를 추다 양말에 구멍이 났고, ‘Smooth Criminal’의 린 댄스를 추다가 무릎이 깨졌다. 내 우상은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었다. 무대에 올라 반짝이는 장갑을 휘저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MJ는 수척한 얼굴로 나타났다. 핏기 없는 얼굴에 야윈 두 뺨이 도드라졌다. 앙상한 콧날 탓인지 눈망울이 전에 없이 커 보였다. 다소곳하게 다리를 꼰 팝의 황제가, 나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반가워요 마이클, 잘 지내셨죠? 최근에 낸 ‘Love Never Felt So Good’’도 잘 들었습니다. 정말 좋던데요.

 

  “고마워요.”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아직 날 기억해준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아직도 현역에 있는 것만 같아요. 뮤직비디오의 팀버레이크를 보니 함께 춤을 추고 싶더군요.”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군무 말씀이죠? 당신이 함께 있었다면 분명 엄청났을 거 같네요. 그가 ‘Thriller’ 뮤직비디오에서 좀비들과 추는 군무는 역대 최고의 군무로 손꼽힌다. 그를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로 만들고 수많은 후배들의 오마주를 자극한 춤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는 MJ를 사랑했으니까요. 많은 팬들이 This Is It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쨌거나 아쉽게 됐어요.

 

  “그렇죠” 그가 미소 지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모든 걸 되돌리고 싶었죠. 내게 This Is It이 새로운 출발일 거라 믿었고요.” 나 역시 그의 컴백을 기다렸다. 수많은 스캔들과 루머에 굴하지 않는 영광스런 재림을 간절히 바랐다. 그래도 모든걸 되돌리기엔 이미 많은 걸 이루었잖아요.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잭슨파이브 시절부터 얘기해볼까요? 잭슨파이브는 유년시절 그와 형제들이 결성한 그룹으로, MJ는 당시 12세의 나이로‘Ben’이라는 곡을 불러 최연소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어머, 그건 아픈 이야기에요. 난 정말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어요. 물론 그 시기가 나를 아티스트로 키웠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여전히 너무 아픈 이야기네요.”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MJ는 다섯 살 나이에 아버지에게 떠밀려 쇼 비즈니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엄격하다 못해 가혹할 정도로 아들을 훈육했고, 그는 이 시기의 상실과 아픔으로 평생 고통 받는다. 오 미안해요 마이클, 다른 얘기부터 하죠. 제가 수상경력 등을 찾아봤거든요. 말도 안 되는 커리어에요 이건.

 

  “돌이켜보면, 모든 게 동전의 양면 같아요.” 그가 입술 앞으로 손가락을 모으며 말했다. “난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뮤지션으로서의 내 커리어는 늘 성공적이었어요. 퀸시 존스와 함께할 때도 그랬고, 혼자일 때도 그랬죠.” 퀸시 존스는 그와 <Off The Wall>, <Thriller>, <Bad> 등 앨범을 함께 제작한 희대의 프로듀서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 뒤에는 늘 어두운 이면이 따랐죠.” 그렇겠죠. 잘은 모르지만, 분명 그랬을 거에요. 당신의 생활에 대해 조금이나마 얘기해줄 수 있나요? MJ는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내 커리어를 말할 때마다 아픔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건… 꽤나 아이러니컬해요.” 그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일평생을 루머와 스캔들에 시달리면서도 MJ는 최고의 아티스트로 군림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공연 연출부터 뮤직비디오까지 다방면에 재능을 보인 그는 팝 음악을 발전시킨 전대미문의 아티스트였다. “난 늘 외로웠어요. 아마도 알 거에요, 내 유년의 아픔들에 대해 몇 차례 밝힌 적이 있으니까요. 또 톱스타라는 이유로 매스컴은 늘 나를 공격했죠. 아, 그 시절은 정말이지 끔찍했어요.” 그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랬군요 마이클,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괜찮아요. 이제 모두 옛날 일이 되어버렸죠. 몇 가지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말이에요. 가능하다면, 나의 스캔들과 루머에 대해서 말을 아껴줄 수 있을까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위대한 아티스트가 두 손을 맞댄 채 내게 말했다. 그러죠. 그를 따라 나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MJ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아동 성추행 스캔들과 성형에 대한 루머는 훗날 상당 부분 세간의 오해로 밝혀졌다. 마이클, 그래도 당신의 복장과 행동이 유별나다는 거 정도는 알고 있죠? “물론이에요.”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를 만난 이래 가장 밝은 웃음이었다. “난 아티스트니까요.”

 

  그럼 아티스트답게 음악 얘기를 좀 해야겠어요. 좋아하는 노래가 너무 많아서 뭐부터 설명할지를 모르겠네요. 먼저 <Off The Wall> 앨범이 있어요.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어떤 앨범일까요? “음, 다양한 장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Off The Wall> 앨범은 흑인의 소울 음악과 백인의 록 음악이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평을 받는다.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모두 아우르는 MJ 특유의 스타일은 그를 팝의 황제로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사실 많이 찾아 듣지 못한 앨범이에요. 앨범과 동명의 노래 ‘Off The Wall’ 외에는 몇 곡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Thriller>나 <Bad> 앨범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가 득의 양양하게 웃어 보였다. 맞아요, 사실이에요. MJ를 모르는 사람도, 두 앨범의 ‘Beat It’, “Billie Jean’, ‘Man In The Mirror’ 등은 알 정도니까요. 

 

  <Thriller> 앨범은 자그마치 37주 동안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있었고, 발매 당시 앨범의 9곡 중 7곡이 Top 10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관련된 기록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세기의 명반이다. 또한 MJ는 수록곡 ‘Thriller’ 뮤직비디오의 흥행을 앞세워 변두리에 있던 흑인 음악을 주류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후의 <Bad> 과 <Dangerous> 등의 앨범에서 그는 평화와 공존 등에 대한 주제의식을 보여주었다. ‘Jam’에서 그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위해 힘을 모을 것을 호소했고, ‘Black Or White’에선 흑백 갈등의 해결을 노래했다. 이어지는 <History> 앨범에서 그는 사회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인종갈등, 환경보호, 매스컴의 횡포 등을 제시하며 MJ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활용했다. 물론 이들 모두는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놓치지 않고 이룬 성과들이다.

 

  마이클, 당신이 활동할 당시만 해도 흑백 갈등이 심했다고 들었어요. 그로 말하자면 백인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흑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흑인 최초로 MTV에서 성공한 인물이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과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백인의 우상 비틀즈의 판권을 샀다. “인종차별만큼 한심한 일도 없죠. 피부색은 다른 거지 누가 옳고 그른 게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에요. 인종갈등을 비롯해 기아, 난민 등 사회문제를 위해 많은 자선 단체에서 활동하셨다면서요.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글쎄요, 음악을 단지 엔터테인먼트에 머무르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음악의 특별한 힘을 믿으니까요.” 그가 아이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래 전부터 모두의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이상적인 사회란 뭘까 늘 고민하기도 했고요. ‘We Are The World’ 노래 가사에 이런 생각들이 나타나있죠.” 우문에 현답이다. 요즘 말로 소셜테이너라고 하던데, 당신이 그 조상 격이네요. 당신이야말로 위대한 사회운동가였군요.

 

  “오, 난 위대한 가수에요.” 그가 장난기 어린 미소로 눈짓하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물론이죠. 저도 알아요, 하하. “난 정말 춤과 노래를 사랑했어요. 다시 한 번 춤추고 노래하고 싶어요.” 당신은 천상 ‘딴따라’네요. 어깨와 고개를 튕겨대는 MJ를 보며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불세출의 딴따라군요. 얼마 전 뉴스에서 소니의 한 엔지니어가 당신의 노래를 꽤 간직하고 있다 하던데요, 기대해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믹싱이나 더 신경 쓰라고 말해줘요.” 그가 손을 저으며 웃었다. 다시 노래로 찾아 뵙길 바랍니다, 마이클. “물론이죠. 고마웠어요 오늘, 얘기 들어줘서.” 팝의 황제께서 친히 감사를 표하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뭘요, 저야말로 고맙죠. 당신은 내 우상이라니까요.



(이 글은 2015년 미디어 자몽에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