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른 사람, 다시 부르는 노래]
너희가 Thug Life를 아느냐
잊지 못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보고싶은 뮤지션이 있습니다.
뮤지션과 가상 대화를 통해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996년 라스베가스, 서부 힙합의 스타 투팍 샤커가 총격으로 사망한다. 복싱 경기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당한 괴한의 습격이었다. 6개월 후, 투팍의 라이벌이자 동부의 제왕 노토리어스 B.I.G 역시 총격으로 사망한다. 아메리칸 힙합의 황금기, 이른바 골든 에라를 빛낸 동, 서부 스타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2PAC(이하 투팍)은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죽어도 죽지 못하는 스타로 유명하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생존설을 비롯한 여러 의혹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일부 팬들은 2PAC이 죽지 않았으며, 현재 자메이카에서 지낸다고 주장한다.
정말 자메이카에서 왔을지도 모를, 투팍을 만났다. 민머리,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근육질 사나이였다. 헐렁한 바지와 달라붙는 민소매 티가 90년대 바이브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아, 갱스터 스타일이란 이런 겁니까? “너가 보기엔 Old Skool같나?” 그가 말했다. “A$AP Rocky나 Kanye West 스타일도 힙합이야. 이 시대의 힙합이지” 그렇죠,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스타일이거든요. 스냅백을 고쳐 쓰며 내가 말을 이었다. 요즘 스트릿 패션과 더불어 힙합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이 힙합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도 있고요.
“Snoop Dogg 녀석이 잠깐 나온 프로그램을 말하는 건가?” 그가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아주 웃기지도 않더군. 갈등을 부추기질 않나, 철창에 가두고 물어뜯게 하질 않나.” 그의 말엔 냉소가 배어있었다. “오 X발, 너도 그게 힙합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갑작스러운 물음이었다. 확실히 한국에서 힙합의 상당 부분이 디스의 이미지에 머물러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투팍,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디스에 관해서면 할 말이 많지.”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비기나 나나 디스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어.“ 투팍은 과거 ‘Hit Em Up’이라는 곡으로 비기(노토리어스 B.I.G)를 죽일 듯 물어뜯은 전력이 있다. “그땐 다들 그랬지. 우린 ‘Thug Life’였으니까. 그게 뭔지 아나?”
Thug Life는 투팍의 노래 곳곳에 나오는 슬로건으로, 단어대로라면 ‘폭력배의 삶’ 정도가 된다. “빈민가 흑인은 아무것도 갖지 못했어. 우리를 지켜줄 건 우리 자신 뿐이었지. 때문에 폭력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게 Thug Life의 시작이었어” 그가 말하는 8,90년대 게토와 흑인의 삶에는 2015년 서울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어쨌거나 힙합이 곧 디스라고 생각하는 놈들을 보면 답답하다니까, X발” 그는 말 끝마다 거센 F 욕을 뱉었다. 하긴 Thug Life니까,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근래 대중화된 힙합이 지나치게 디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죠. 그렇다면 힙합 음악을 이루는 요소들에 또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일단 Thug Life를 더 설명해줄게. 8,90년대는 말야, X나 암울했어. 우린 갱스터로 자랄 수밖에 없었지.” 실제 투팍은 스무 살이 되기 전 8번이나 구금되고, 성인이 되어선 경찰관과 싸우다 잡혀 들어가는 등 거친 삶을 살았다. “갱스터였어. 그게 내 삶이었고 난 내 삶을 솔직하게 가사로 옮긴 것뿐이야.” 그는 눈썹을 치켜 뜨며 손바닥을 위로 향하는, 아메리칸 갱스터다운 제스처를 보이며 말했다.
“지금 한국에서 총기, 마약, 섹스 등이 주된 문제일까?”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네요. 덩달아 커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거야. 적어도 힙합이라면, 자기 삶이 드러나야 돼. 우린 게토에서 뒹굴고 서로 치고 박고 살았어. 그런 X같은 삶을 있는 그대로 노래한 것뿐이야.” 손을 엉켜 잡은 그의 모습은 결의로 무장한 격투기 선수를 꼭 닮았다. “한국 힙합에서 말하는 디스? 그건 그냥 사춘기 반항심이야. 멋있는 척, 센 척 까지 말라고, X발.” 문득 Control 디스전 당시,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좁아 싸워도 결국 공연장에서 만난다는 어느 가수의 말이 떠올랐다.
투팍은 한껏 과열된 모습이었다. “멀쩡한 부모 밑에서 곱게 자란 놈들이 갱스터의 삶을 노래한다고? Original Gangster? X도 웃기는 소리 말라 그래.” 그는 허공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디스라는 거도 말야, 자기 표현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야. 자기 삶을 진솔하게 말할 용기도 없으면 힙합도 뭐도 아니지.” 부리부리한 그의 눈이 더욱 커져있었다. “삶에 대한 성찰, 고백 그런 게 힙합이야. 서로 물어뜯고 힙합이라는 인간이 너무 많아, X발”
성난 투팍을 진정시킬 필요를 느꼈다. 그는 시집 ‘콘크리트에서 핀 장미’를 낼 만큼 시적 역량을 인정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를 갱스터의 이미지와 시적 가사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평한다. 오늘날까지 투팍은 자기고백적 가사와 더불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메시지를 노래한 랩퍼로 회자된다. 그나저나 힙합의 역사에 있어서, 자기고백적 가사라고 하면 또 투팍을 빼놓을 수 없죠. 안 그런가요?
“그게 내 삶이었으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 들어 보였다. 그의 노래 ‘Keep Ya Head up‘에는 여성 인권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또 ‘Dear Mama’에서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담히 노래하기도 한다. 물론 ‘How Do You Want It’ 등의 노래에서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하는 등, 투팍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노래를 냈다. “너, 내 노래 좋아하는 거 있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희미한 시절, 망망대해만큼 넓게 음원을 보유한 사이트에서 투팍의 ‘California Love’, ‘Changes’ 등을 발견했다. 당시 듣던 그의 노래가 처음 접한 ‘외힙’이었다. 영어를 공부하겠답시고 받아 적은 노래 ‘Changes’에는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그러고 보니, ‘Changes’가 미발표 곡이었는데도, 그걸 제일 좋아했던 것 같네요.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 같은데, ‘Changes’ 역시 Thug Life의 연장선이야. 어두운 배경으로 출발했어도 싸워 이겨내고 또 희망을 노래하자는 거지.” 그는 자신의 말에 당당한 모습이었다. ‘Changes’ 가사는 마틴 루터 킹 Jr 목사가 썼다고 해도 믿을, 인권과 희망에 대한 열망이 담긴 노래다. “Thug Life를 단순히 깡패의 삶 정도로 받아들이진 말라고. 결국 메시지는 희망이니까.”
그는 두 손을 들고 손가락을 교차해 Westcoast의 상징, ‘W’를 만들어 보였다. 서부 힙합의 슈퍼스타답게 단단한 손가락이었다. “삶을 말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게 Thug Life야. 그리고 그게 힙합이지.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X발.” 그의 부릅 뜬 두 눈에 반짝, 빛이 돌았다.
(이 글은 2015년 미디어 자몽에 연재되었습니다.)
사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2pac이네요. 90년대의 2pac은 저만의 의미로 좀 특별하지요. 저는 또 다른 의미로 2pac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