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라디오] Court And Spark by Herbie Hancock (feat. Norah Jones)

in #kr7 years ago (edited)


대학교에 진학할 때 어쩌다보니 학비가 좀 싼 곳으로 가게 되었고, 부모님은 조금 덜 내는 등록금 만큼 나에게 선물을 해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서점에 가서 오디오 잡지를 두어 권 집어들어 몇 번 읽었다.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알아내고 싶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유한계급의 취미생활인 면이 강한 하이파이 오디오 세계에서 내 예산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기의 정보는 없었다. 물론 이 역시 90년대 초반, 인터넷이 없던 시절 얘기다.

무작정 용산 전자상가로 갔다. 기기를 청음할 때 자신이 잘 아는 음악을 들고 가면 좋다는 얘기를 읽었기에 두 장의 씨디를 들고 갔었다. 하나는 퀸시 존스의 Back On The Block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봐도 대학교 일 학년 학생이 혼자 등록금의 반절 정도를 들고 오디오 샵을 어슬렁 거리는 게 흔한 광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땐 드디어 내 방에 둘 오디오가 생긴다는 생각에 기뻤던 마음밖에 없었고, 바가지를 쓰면 어쩌지 하는 염려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마음이 전해졌을까, 두 번째로 들어선 수입 오디오 매장에서 아저씨는 지금 생각해도 제법 친절하게 이것저것 들려주며 설명을 해 주었다. 첫 번째 매장에선 나를 지나가던 고양이 정도로 쳐다봤었다.

가져간 퀸시 존스 음반의 네 번째 곡, I'll Be Good To You를 듣고 있자니-정말 시원한 곡이다- 아저씨는 앰프랑 스피커는 이렇게 맞춰 가면 좋을 것이라고 권해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소리니까 젊은 나이에는 음악을 들어라, 오디오는 나이 들고 여유가 생겼을 때 관심을 가져도 좋다, 라고. 그 아저씨의 말대로 음악을 듣기에는 충분히 좋은 소리였다. 우리 집은 허름하긴 해도 단독 주택이라 볼륨을 올려도 괜찮았다. 듣던 음악들을 쫓아가다보니 결국 업으로 음악을 하게 되었다.

십 년 전쯤, 처음으로 마스터링 스튜디오에 작업한 결과물을 들고 가서 모니터할 때 소리 자체에 대한 충격을 받았다. 헤드폰이나 모니터 스피커로 들을 때에는 안 들리던 게 갑자기 너무 많이 들려서. 그때부터 좋은 오디오를 갖고 싶다, 더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듣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하지만 적절한 볼륨으로 음악을 들을만한, 음향적으로 잘 마감된 공간이 확보되지 않고는 고가의 앰프며 스피커 등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하이파이 오디오는 내게 너무 비싸다.

그러다 작년에 학교 내에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어쩌다보니 2년 치의 퇴직금을 받게 되었다. 일이 주 정도 고민하다가 스피커를 한 조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간이 작으며 짠돌이인 나는 중고거래를 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연구실에 낑낑대며 스피커를 옮기고는 한 달 정도 매일 듣던 음반이 바로 허비 행콕의 Rvier였다. 조니 미첼의 곡들을 연주한.

몇 년 전에 처음 들었을 땐 좀 밋밋한 음악이라 생각하며 그냥 지나쳤었는데, 조금 나은 시스템으로 듣자니 다르게 들렸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 전반에 걸친 사운드 퀄리티가 너무 좋았다.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꿈꾸는 재즈 사운드 중 하나다.

옛 음반들에 담긴 연주를 너무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가끔씩은 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도대체 듣고 있기 힘든 경우도 있다. 덱스터 고든의 연주를 너무 좋아하지만 그의 어떤 음반은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다. 근데 이 음반은 명료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공간감도 잘 느껴지지만 너무 멀거나 퍼져있지 않아서 각 악기와 가수의 소리 자체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어쩌다보니 내게 사운드의 기준이 되어버린 음반이다.

허비건 웨인이건 일단 연주자들이 너무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사람들인 건 물론이고, 그걸 지극히 세련되게 담아내어 현대적인 느낌이 또 좋다. 인트로의 피아노 소리를 듣자면 숨이 막힌다. 웨인이 툭툭 치고 들어올때도 물론 그렇다. 이제는 제법 두꺼워진 노라 존스의 목소리 역시 훌륭하다.

존경하는 한 엔지니어분이 '현대의 음악은 현대의 소리에 담겨야 한다'고 하셨을 때 무릎을 쳤습니다. 사실 재작년에 음반 작업할 때 이 음반을 가져가서 들려드리며 이 음반처럼 해주세요, 하고 부탁했었구요.

노라 존스의 대단한 팬은 아닌데-목소리는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스팀잇라디오에 벌써 두번째 등장하게 되었네요. 뭐 그럴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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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본문에 River를 Rvier로 적은 오타가 있군요 ㅠ 부끄럽다 ㅠㅠ

ㅋㅋㅋㅋ오마주할 한 달 전 글들을 알아보다가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