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불현듯 꽤 먼 과거의 일이, 그것도 아주 사소하거나 오래되어 잊혀졌던 일들이 생생하게 바로 오늘 경험한 것처럼 기억의 문을 열고 나타날때가 있다. 어제도 여느날처럼 저녁을 간단히 먹고 Gym에 들러 러닝머신위에서 20분정도 달리고 있을 때였다. 얼마전에 큰마음을 먹고 아내 몰래 산 B사의 wireless ear-phone을 끼고 달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30여년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앞뒤의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연상이 일어나다가 툭 튀어나온 것일수도 있겠지만 막상 그 상황이 떠오르고 나니 그 즈음에 했던 다른 생각들은 어리론가 사라져버렸다.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그때를 스스로 기가 좀 허해졌다거나 혹은 (어려운 입시가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어쨋든 통과해야할 시험등이 있었을 때였으므로) 스트레스가 평소보다 많을때라고 결론짓곤 했던것 같다. 그리고 후에는 그 경험을 친구들과 여름철 수련회 등에 가서 밤에 나누던 무서운 이야기거리들의 재료쯤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 해에 나는 밤에 자면서 가위에 눌리는 경험을 자주 했었고 그날도 조금 일찍 잠이들어 새벽 1시나 2시쯤이었던것 같다. 갑자기 몸이 불편해지고 움직일수 없이 무엇인가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눈은 감은채 자꾸 몸을 뒤척여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옥죄는 무게를 어느정도 풀은것같은 약간의 여유가 들때쯤 (여전히 그때까지도 난 눈을 감고 반쯤은 깨고 반쯤은 잠들어있는 그런 상태였다) 갑자기 벽을 등지고 돌아누으려하자 천장쪽으로 올라온 귀 뒤쪽에서 나이든 노인의 목소리로 '왜...' 라는 짧은 외마디가 귀를 찔렀다. 나는 깜짝놀라 눈이 번쩍 띄였고 두려운 마음으로 불을 켰다. 소름이 돋고 확 달아나버린 잠을 다시 청하려 한참을 깨어 있었다.
사실 내용은 그리 무섭다기보다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만한 기이한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어쩌면 이건 사실이라기 보다는 꿈을 꾼 것이거나 환청같은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억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미래의 내가 죽음의 문을 지나 블랙홀 뒤쪽에서 과거로 돌아가 할수 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는 상황에서 쥐어짜듯 보냈던 메세지 같은 것일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다들 아는 그 영화의 내용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결론을 지을수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개꿈같은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반 평생을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니 이때쯤부터 나는 나의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것 또한 그저 가설이기는 하다.) 그 현실은 '아버지의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내 인생에 대한 개입'이라고 서른이 될때까지도 줄곧 믿어왔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었던 것 같다. 사회성과 책임감이 많이 결여된 나는 많은 관계들로부터 도망쳐왔고, 그것은 스스로가 무언가를 그저 받아들이기에는 혹은 쟁취하기에는 힘이 없다는 자신감결여의 감정을 저 깊은 곳에 숨긴채 쿨(?)하게 사라지는 것일 뿐이라고 위안하며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한동안 하지 못했던 머리속 자아비판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땀에 젖은 내 모습이 거울 너머로 보인다.
이상하게도 집에서 보아온 거울속 내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너편 허상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나즈막히 혼자 중얼거리듯 말한다. "왜..."
밤에 자다말고 그런 일 겪으면 정말 무섭겠습니다. 그것도 중학생 때라니... 그런데 그걸 인터스텔라와 엮어 생각하시다니, 와~~!
("왜" 다음에 나오는 말이 중요한데, 조금만 힘 좀 더 내셨으면... ^^)
잡다한 생각들을 글로 적어볼 생각입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어 이런글을 썼다기보다는 앞으로도 좀더 흥미로울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려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