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jin90g 입니다.
사람이 부지런해야 하는데, 고작 논문 옮겨 오는 거 가지고도 일상에 치여서 이렇게 힘듭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스티아의 정치경제학을 들어가는 기초 공식에 대한 검토와, 이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교분석입니다.
분량이 길어서 3부작으로 나눠서 갑니다.
이번에는 좀 빨리빨리 쭉죽 올릴 생각입니다. 금요일까지 아예 3부작을 빨리 뺴야죠.
그리고 특별편을 하나 더 준비해서...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 근대 학자들이 보여주는 한가지 태도로
바스티아의 [경제적 조화] 마지막 장
"정치경제학과 도덕-입법-종교" 초벌 번역을 좀 다듬어서 올려볼까 합니다.
그럼 도대체 고전기 경제학이 어떤 학문적 토대에서 비롯했는지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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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교환과 자연법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서 사회 질서를 도출하려는 시도는 많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칸트는 인륜의 법칙이 자연의 법칙과 상관없다고 『법이론』에서 못 박았으며, 현대 학자들은 자연법에 근거한 증명이 사실과 가치를 동일시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무능력이란 사실로부터 무고하다는 도덕적 판단은 잘도 이끌어낸다.) 필자가 하려는 것은 자연법 자체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글에서 바스티아가 자연법에 의지해야 하는 배경을 이미 밝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스티아가 자연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증명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경제적 조화』에서 바스티아의 핵심 주장은 “모든 정당한 욕구의 자연적 조화”이다. 바스티아에게 교환은 사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 ‘정당한’을 ‘합법적인’으로 번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스티아는 법의 정당성도 비판하기 때문에 / 더불어 그에게 사회는 법률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 그래서 필자는 ‘합법’ 보다 한 차원 높은 ‘정당한’, ‘옳은’으로 번역한다.)
바스티아에게 사회는 인간성 일반법칙 위에 세워진 자연적 조직이다. 그래서 사회는 성문법과 정부보다 앞선다. 인간사회의 모든 활동은 일반법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인간성 일반법칙을 다양하게(프랑스인 답게) 부르는데, 가령 인간 본성, 위대한 자연의 법칙, 신의 섭리 등이 있다. 이런맥락에서 그의 ‘교환 개념’은 인간의 자연상태를 뜻한다. 교환이 사회인데, 사회가 인간의 자연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스티아는 인공적인·상상의·발명된 사회를 비판한다. 그에게 인간성 일반법칙을 무시하는 정부의 간섭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려는 시도이고,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디자인한 공동체는 자연법과 상관없는 거대한 허구다. 그래서 학자들에 따르면 “바스티아는 분명히 자연법 입장에(존 로크에 일치하여)있다.” 그리고 “그는 경제학이 논리적 연역적 추론으로 발견되는 보편적으로 타당한 법칙들의 학문이라고 되풀이하여 역설했다.”
그런데 우리는 바스티아가 토대로 사용하는 자연법이 정확히 무엇인지 검토해야 한다. 그는 루소를 인공적 사회조직 개념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 열렬히 비판하는데, 루소는 자연법 그리고 자연상태를 주장하는 철학자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자연법이 바스티아의 정치경제학 공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교환 개념을 검토하기 위해 먼저 바스티아의 자연법이 무슨 뜻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교환이 인간의 자연상태라는 주장, 그리고 모든 정당한 욕구의 자연적 조화 이론이 명확하게 드러날 테니까.
필자는 우선 바스티아의 자연법, 다시 말해 신의 섭리라는 질서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바스티아의 루소 비판을 정리해보고, 그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자연법을 다른 학자들의 자연법과 차별화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바스티아의 자연법을 ‘신의 계획’ 이라고 비판한 Cubed여 와 Massala의 공저 논문을 반박할 것이다. 그들은 “바스티아가 아마도 꺠닫지 못한 채로 로크의 자연권 개념을 가톨릭 개념의 자연법에 병합하려고 시도했다”고 주장하는데, 필자가 이해하기에 그들의 해석은 극도로 적대적인 해석이며, 바스티아의 의도와 경제적 조화의 기초개념들을 무시한 해석이다.
(논리적 전제와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둘 중 하나만 옳다.)
그래서 오늘은 1-1 바스티아의 자연법만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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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바스티아의 자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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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아는 『경제적 조화』에서 자연법을 자주 언급하지만, 그것을 간결한 명제로 정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곳에 흨어져 있는 바스티아의 구절들을 하나씩 살펴봐야 한다. 먼저 이 구절을 함께 살펴보자.
“자연은 매우 잘 조직되어있어서, 만약 내가 때때로 갈증을 풀지 않으면, 그리고 샘이 집으로부터 1리 떨어져 있다면, 나는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매일 아침, 내 적은 몫의 물을 구하러 가려고 노고를 치르는 이유다. 왜냐하면 물이 우리가 말하는 갈증이라는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특성을 가지며, 그 유용한 성질을 내가 물에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
“실로, 빵의 요소들은 자연의 사방에 실재한다. 장 바티스트 세의 정확한 견해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무엇이라도 창조할만한 필연성도 가능성도 없다. 가스, 소금, 전기, 식물의 힘, 이 모든 것들은 실재한다.”
이 구절들을 본다면, 우리는 바스티아가 서로 다른 본질을 가진 실재와 그것들 사이의 법칙을 인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스티아의 자연법은 실재로부터 출발한다. 여러 사물들은 저마다 고유한 성질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무효로 만들 수 없다. 인간이 그것을 창조할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또한 실재이며, 그러므로 자연의 법칙에 지배받는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욕구를 가지며, 쾌락과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가지며,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바스티아의 자연법은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진 실재들,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성립하는 법칙의 존재를 함축한다.
모든 실재들 사이에는 법칙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생물들이 고유한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식물들은 광합성을 하지만, 동물들은 다른 식물 혹은 동물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모든 생물들은 자연법에 따라 저마다 생존·번영하는 원리를 타고 난다. 우리는 이 본성을 종종 ‘본능’이라고 부른다.
“만약 내가 모르는 어떤 동물들이 있어서, 그것들이 자신의 조직에 의해 자신의 삶의 영역을 절대적인 고립 안에다 퍼뜨리게 할 운명이라면, 자연이 그 동물들의 욕구와 능력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놓아야 한다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 그것들의 탄생에서, 생명 안에 그것들의 최초 출현에서, 능력은 욕구에 상대적으로 그것을 충족해야하는 만큼 완비되어 있어야 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여러 동식물들이 완성된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식물의 씨앗은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며, 여러 동물의 새기들은 태어나면서 걷고 뛴다. 사냥 법을 가르치지 않아도 맹수들은 사냥하며, 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아도 새들은 난다. 따라서 바스티아의 자연법은 모든 생물들이 고유한 생존·번영의 원리를 타고난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생존·번영의 원리가 방해받거나 훼손당하지 않는 한, 모든 생물들은 자연스럽게 생육하고 번성한다.
따라서 우리는 바스티아에게 자연상태란 어떤 것인지를 말할 수 있다. 자연상태란 각 생물들이 자신의 고유한 생존·번영의 원리를 통해 생육·번성하는 상태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연상태는 인간이 생존하고 번영하는 고유한 원리에 따라 규정될 것이다. 인간 능력에 대한 바스티아의 구절을 살펴보자.
“오직 인간만이 비교·판단하는 것처럼 보이고, 오직 인간만이 추론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며, 세대에서 세대로 그 노동을, 생각을, 그리고 매우 귀중한 경험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고, 끝으로 오직 인간만이 개선 가능성의 능력이 있어서, 마치 세계 저 너머로 측량할 수 없는 사슬이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고등동물로 올라갈수록, 우리는 동물들에게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취약구간을 발견할 수 있다. 어미는 새끼들의 생존능력이 완비될 때 까지 새끼들을 보호한다. 그러나 동물의 취약구간은 인간에 비하면 매우 짧다. 인간만큼 어린 시절이 취약한 동물도 없다. 인간만큼 본능이 약한 동물도 없다. 인간은 능력이 완비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며, 그 능력조차도 본능과 같이 자동적인 능력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비교·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이 능력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약한 동물적 본능을 보강하고, 생존·번영한다.
필자는 바스티아가 인간 생존 원리로 지목한 능력이 사유(思惟) 능력 그리고 자유의지를 뜻한다고 이해했다. (사유는 생각으로 쉽게 번역할 수 있는데, 라임을 좀 살리고 또 철학 공부 티좀 내려고 사유로 썼다.) 바스티아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비교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이 자유의지를 타고난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은 사유를 통해서 자연 법칙을 이해하며, 도구를 만든다.
물론 인간이 오직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만 타고나지는 않는다. 인간도 살아있는 동물이다. 우리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직접 노고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건강한 신체능력은 생존에 이롭다. 예리하고 민감한 감수성도 위험을 감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념도 갖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적절한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는 도덕적 능력도 생존에 이로울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함께 다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른 생물들과 공유하는 요소들을 제외하고, 다른 한편 인간 사회를 보다 고양시키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능력을 제외한다면, 정치경제적 의미에서 인간의 고유한 생존 수단이 사유 그리고 자유의지라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자연법에 따라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를 타고났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동물적 본능을 포함하여,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를 사용하는데 방해받지 않는다면, 인간은 생존하고 번영한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상태가 이제 지금가지 우리가 다룬 내용을 공식화하자.
하나,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진 실재들과 그것들 사이에 성립하는 법칙이 존재한다.
둘, 모든 생물들이 고유한 생존·번영의 원리를 타고 난다. (인간의 경우 /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를 타고난다.)
셋, 각 생물들의 자연상태는 각자 고유한 생존·번영의 원리를 통해 생육·번성하는 상태이다. (인간의 경우 / 인간의 자연상태는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를 통해 생육·번성하는 상태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바스티아의 『경제적 조화』에서 사용되는 자연법 이론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각 생물들은 저 마다 고유한 생존의 원리를 통해 번영한다. 인간의 고유한 생존 원리는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데 방해받지 않는다면, 인간은 생존·번영한다. 따라서 만약 인간이 교환 없이 생존·번영할 수 없다면, 교환 또한 인간의 자연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경우 교환을 사유능력과 자유의지를 사용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환 개념은 바스티아가 증명하고자 하는 “모든 정당한 욕구들의 자연적 조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연법 학자들이 바스티아의 자연법 원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바스티아는 자연법과 자연상태를 말하는 루소를 인공적 사회조직의 대변자라고 비판했으니까. 그러므로 바스티아가 자신의 자연법 이론을 루소의 자연법 이론과 차별화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모든 자연법 철학자들이 자연법과 자연상태라는 개념을 엄격히 동일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자연법이 혼란된 뜻으로 사용된다면, 바스티아의 경제적 조화 이론을 교환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큰 오해를 받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스티아의 자연법이 다른 학자들, 특히 루소의 자연법과 어떤 차이점을 갖는지 밝혀, 바스티아의 자연법 이론이 갖는 학문적 위치를 명확히 해야한다.
다름에 이어질 글에는 루소 내용이 짧게 나오는데, 제가 루소 전공자는 아니어서 인용구와 바스티아의 루소 비판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루소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충분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프랑스에서 배워오신 선배님을 만나서 좀 께름찍하네요..
루소 전공자 소환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 와중에 편집하다 라틴어 표기 틀린 오류.. 아..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