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바스티아 연재(7)] 교환의 자연적 한계와 확장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십니까? @jin90g 입니다. 오늘은 교환의 자연적 한계와 확장을 다루는 날입니다.
특히 오늘 장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경제정책의 방향이나 경제를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품고 있는 숨은 전제에 대한 이해에 색다른 물결을 주는 날입니다.

질문이 있으시다면 최대한 정성들여서 답변해보겠습니다.
물론, 앞으로 나올 스토리를 너무 앞지르지 않는 한에서 말입니다.

그럼 교환의 자연적 한계와 확장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교환의 자연적 한계와 확장


자연법에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한정한 욕구와 더불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유의지와 사유능력을 타고난다. 그러나 인간 능력은 욕구보다 더디게 발전하며, 따라서 혼자 힘으로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 때문에 인간은 보다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만족을 얻어야 생존·번영할 수 있고, 여기서 ‘교환’이 따라온다.

교환은 “각각 자신의 노력으로 타인을 이득 보게 만들고, 그것에 어울리는 비례 안에서 타인의 노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분업·협력으로 표현되는 교환을 통해 인간은 만족에서 노력의 비율을 축소하고, 유용성(Utilité) 총합에서 자연의 무상 유용성이 차지하는 비율을 증대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능력은 우리 욕구를 능가하게 된다. 따라서 교환은 인간의 자연상태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가 무한정하기 때문에, 교환 또한 욕구에 맞춰 자연스럽게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분업과 협력은 쉽게 한계를 마주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은 욕구를 능가하지 못할 것이고, 사회는 정체, 퇴보하며 서서히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교환은 자연법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인간은 교환을 마음대로 확장시킬 수 없다. 교환 자체도 인간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 “만약 교환이 노력을 절약한다면, 그것은 또한 노력을 요구한다. 교환은 그것이 요구하는 노력이 그것이 절약하는 노력과 같게 될 때 까지 확장되고, 커지고, 증대된다. 그리고 교환은 상업 기구 개선 혹은 단지 인구 응축 그리고 사람들의 접근을 형성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발전에 필요한 조건으로 되돌아갈 때가지 멈춰 선다. <프레데릭 바스티아 / 『경제적 조화』>

비록 교환의 본성이 노력을 절약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동시에 노력이 필요한 것인 이상, 교환이 확대될 수 있는 자연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 교환에 소모되는 노력 < 교환이 절약하는 노력 → 교환 확대 / 경제 발전
  • 교환에 소모되는 노력 = 교환이 절약하는 노력 → 교환 정체 / 경제 정체
  • 교환에 소모되는 노력 > 교환이 절약하는 노력 → 교환 축소 / 손해 보는 장사

물론 인간은 교환의 자연적 한계를 자연법에 근거해서 확장시킬 수 있다. 범선이나 철도, 비행기 같은 상업기구의 개선은 두 도시의 물질적 접근과 같다. 그리고 사람들의 물질적 접근 또한 상업기구의 개선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도시화는 그 자체로 상거래에 소모되는 노력을 절약한다.

화폐의 도입도 마찬가지다. 바스티아는 “화폐 덕분에, 교환이 진실로 무한한 발달을 취할 수 있었다”고 평한다. 교환이 사회 자체이므로, 사회는 화폐 도입을 통해 교환을 촉진하고 증대함에 그치는 바가 없다. 신용, 저당 유가증권, 환어음, 은행증서(Billet de Banque)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간은 교환의 자연적 한계를 확장시키지 않고서도 인위적으로 교환을 팽창시킬 수 있고, 반대로 교환을 자연적 한계 아래로 억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위적 교환 팽창·억제는 인간의 교환능력 및 자연법칙과는 별개로 근본 없이 이루어진다.

가령 정부는 실재하지 않는 교환을 부추기기 위해 식민지를 군사적으로 정복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징세를 통해 국민들의 재산을 낭비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국민들 사이의 교환을 위축시킨다. 이런 까닭에 바스티아는 당시 영국의 면직물 산업을 비판했는데, 인도산 면직물 상품이 영국 시장에서 인기를 얻어 영국 모직물을 압도하자, 동인도회사가 정부를 대행해서 인도 평원을 정복, 목화를 인도에서 영국으로 옮겨와 면직물 산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바스티아는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도 비판한다. 알제리에 일자리를 억지로 만드는 만큼 프랑스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의 서글픈 타향살이와 프랑스인들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증오와 복수심을 덤으로 말이다.


반대로 정부는 부의 재분배 혹은 기간산업 육성을 이유로, 국외 무역이나 국내 상거래에 특별 세금을 물릴 수도 있다.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상인의 시장 진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교환을 자연적 한계 이하로 제한하는 법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교환 제한 조치는 항상 해롭거나 쓸모없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정부가 교환의 자연적 확대를 막아서면, 인간의 능력이 욕구를 능가할 수 없어 고통받을테고, 다른 한편으로 이미 교환이 자연적 한계를 마주한 상황에서, 이를 제한하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니까.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교환은 본성상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의 판단착오와 실수로, 잠시 동안 한 나라의 교환 시스템이 자연적 한계 밖으로 팽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적 욕구라는 교환의 원칙에 따른다. 우리는 도덕이든, 지식이든, 미적 취향이든, 허영이든, 어떤 의미든 간에 쓸모없는 초과분의 교환이 가져오는 손해를 감당할 수 없고, 용납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교환은 인간 본성에 따라 빠르게 자연적 한계를 되찾는다.

그래서 바스티아는 정부가 공권력으로 교환을 ‘조장’ 혹은 ‘제한’하는 시도를 비판한다.


그런데 교환 ‘조장’이 교환의 자연적 한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비롯한다면, 교환 ‘제한’은 사뭇 다른 전제로부터 비롯한다. 그것은 “교환에서 한 사람의 이득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손해”라는 전제다.

이 전제는 매우 중요해서 반드시 검증되어야할 주제이다. 왜냐하면 만약 교환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부를 창출하는 행위라면, 교환이 인간의 자연상태라는 바스티아의 주장은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만약 교환이 인간의 자연상태라면, 폭력과 약탈을 배제한 조건에서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는 우연적인 상황을 배제한다면) 교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생존·번영할 수 있어야 한다.

  • “경제학자들은 사람이 살인해도 된다고, 약탈해도 된다고, 모욕해도 된다고, 사회가 자유방임하기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모든 법이 부재하더라도, 그런 행동들에 대하여 사회적 저항이 행동으로 선포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따라서, 이 저항들은 인간성 일반 법칙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이득이 다른 사람의 손해라면, 이 경우 교환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된다. 이는 인간을 생존·번영하게하는 “인간성 일반법칙”과 “인간의 자연상태”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내용이다.

교환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려는 사상은 교환 자체에서 본질적 갈등과 반목 그리고 적대감을 본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법 안에서 사람들이 조화될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약탈을 통해 기존에 자행된 약탈을 시정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교환은 약탈이고 불의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이득은 다른 사람의 손해"라는 명제의 대표적인 예시>


따라서 바스티아는 “한 사람의 이득은 다른 사람의 손해”라는 명제를 반박하고 “한 사람의 이득은 다른 사람에게도 이득”이라는 명제를 증명해야 한다고 봤다. 이 두 명제 중 무엇이 참이고 거짓이냐에 따라 교환의 자연법칙은 조화로울 수도 있고, 적대적일 수도 있다.

바스티아는 사람들이 이 두 원칙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전자는 자유로운 교환을, 후자는 강제된 교환을 함축하는데, 사람들이 두 방침 사이에서 무엇이 자연적이고 옳은 것인지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 틀림없이, 만약 우리가 고립과 교환 사이에 의문을 놓는다면, 사람들은 일치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자유로운 교환과 강제된 교환 사이에 의문을 놓는다 해도, 그 경우에도 마찬가지일까?” <경제적 조화>

자유로운 교환과 강제된 교환 사이에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원리가 존재한다. 한 사람의 이득은 다른 사람에게도 이득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이득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손해인가? 인간은 서로를 약탈하지 않고도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재산은 곧 약탈물인가? “첫 번째 경우에, 사회악은 자연법의 교란에, 재산과 자유의 법적 침해에 부여되어야 한다. 우리가 중지해야 하는 것은 그 교란이고 침해이다. …… 두 번째 경우, 우리는 아직 정부 개입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인조적이고 강제적인 조합이 아직 자연적이고 자유로운 조합을 충분히 대체하지 않았다.” <경제적 조화>

바스티아는 반목 원리에 토대를 둔 사고가 민중들 사이에 그리고 상류층 사이에 만연해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오해의 근원을 한편으로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관련해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힘든 노고를 면해보려는 어리석은 욕심이 특권 추구로 나타났다는 맥락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스티아는 이론적으로는 인간의 악행 혹은 크나큰 잘못의 원인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정치경제학이 완성되지 않을 거라고 봤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바스티아는 상류 계층의 첫 번째 임무로, 모든 특권의 포기를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살찐 손이 최소한 피로 얼룩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바스티아는 오해의 근원을 ‘가치’ 개념의 잘못된 이해에서 찾았다. ‘가치’는 무엇이 실질적으로 교환되는가를 설명하는 개념인데,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이해하여, 교환의 본질을 반목과 적대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스티아는 가치에 대한 연구, 교환에 대한 연구가 사람들 사이의 오해를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다음 화 예고>

"다이아몬드의 우화"를 통해 등장한 고전경제학의 가치 논쟁...
그리고 오해와 반목 속에서 생겨나는 피해망상과 새로운 피의 투쟁
바스티아는 지난 6화에 나왔던 '서비스' 개념을 이용해
다양한 가치 이론들을 하나로 조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데......

교환이 제로-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
사람이 서로 조화될 수 있음을 증명하라

보다 저 너머로!
Plus Ul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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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네요, 팔로우하고 갑니다. 나중에 몰아서 읽어볼게요.

넵. 제가 요즈음 연재가 규칙적이지 못해서 민망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꾸욱.들렸다가요

감사합니다. 꾸준히 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