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가면서 무언가 내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 그 중 가장 특이하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 ‘사부작’ 댄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비해서 그렇다. 가로늦게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사부작, 미드 한편 정도는 자막없이 봐줘야 한다고 영어공부 사부작, 가까운 일본에 여행가서 신나게 돌아다니겠다고 일어공부 사부작, 그래도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지 하며 기타 연습 사부작… 하다못해 점점 팔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팔굽혀펴기를 틈틈이 한다고 또 사부작댄다.
왜 그리 사부작댈까 잠깐 생각해본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삶의 가장 빛나는 한 순간이 이제 지나가버렸다는 아쉬움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시기가 마흔을 넘기면서였던 것 같다. 삼십대때는 몸도 마음도 아직 젊다. 10대, 20대를 보면 그 안에 뒤섞여 얼마든지 어울리고 경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착각이겠지만) 하지만 마흔 고개를 넘어가면 분명하게 느껴진다. 내 삶의 찬란한 순간은 이제 지나갔다고.
그냥 느낌적인 느낌 때문만은 아니다. 일을 하는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어진다. 몸이 못견뎌 한다. 젊을 때는 마감을 맞추기 위해 ‘며칠 밤도 날밤을 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몰입이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선택과 집중. 그러나 마흔을 넘어가면 그 자신감이 사라진다. 하루만 밤을 새도 다음 날 병든 닭처럼 졸게 된다. 마음 속에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열망이 활활 타오르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에 불려나온 학부모 같다. 마음은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어서 정말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못따라주고 다리가 풀려 넘어지곤 한다. 몸과 마음의 불일치다.
열정은 다른 방식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은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40대는 삶에서 단 하나의 초점만을 겨냥할 수는 없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생업을 감당하면서도 삶의 무료함을 이길 취미생활도 해야 한다. 건강도 챙겨야하고. 그러자면 에너지를 적절하게 배분하고 그것을 꾸준히 끌고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자동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낡은 자동차 퍼지듯 퍼진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고 가족이 있고 일용할 양식을 벌어야하는 생활인의 꿈은 이루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매일 조금씩 꿈꾸어야 하고, 그 꿈을 꾸준함으로 이루어야 한다.
사부작 거려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