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2008년에 쓴글을 보다.
부제는 ‘이놈의 나라는 ..’ 이었다
장면1.
여학생은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넘어진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오는 군홧발 세례. 갑작스레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살고자 하는 생각으로 버스 밑으로 굴러들어갔다. 다시 나오자 누군가 머리채를 끌어당겼고 죽어라 뛰어 아수라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날 여학생은 학교 수업이 휴강이 되었고 남자친구와 함께 촛불 시위를 하러 광장에 나왔다. 처음에는 가벼운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자는 생각이었다. 지난 대선에는 투표권이 없어 투표를 하지는 못했다. 방배동 아파트에 살고 있어 지방친구들은 부자라 말하지만 국립대 교수인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 정직했던지 집 이외에는 딱히 가진 부동산이 없다. 종부세는 내고 있지만 집값이 오른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자리에 식구들이 오래 동안 살았을 뿐이었다. 오히려 이사를 가고 싶어도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못 가는 현실에 자신을 음대에 보낸다고 쓴 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등록금은 왜 이리도 높은지. 그러던 중 유가가 올라 무거운 악기를 들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중 수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인 것을 보고 한 번 가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방패를 들고 헬멧을 쓴 전경들이 모이더니 갑작스레 자기네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다. 놀라서 뛰다 남자친구의 손을 놓치고 마주친 것이 어느 전경의 주먹이었다. 아직 귀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 고통인 그녀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고 두렵다.
장면2.
며칠 만에 잠시 잠을 자러 들어왔다. 6인이 함께 쓰는 이곳은 전경의 내무실이다. 상경인 그는 눈을 감자 겁에 질렸던 소녀가 생각난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를 폭력성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군대 갈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전경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무얼 하는 곳인지도 몰랐고 다만 도시에 있다는 말만 듣고 간 것이다. 도시에 있으면 애인과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던 거다. 며칠 전 외박 때 3년이나 사귄 여자 친구는 헤어짐을 통보했다. 외박을 다녀오자마자 출동이란 말에 광장에 나갔고 이틀이 넘게 잠을 자지 못했다. 진압 명령이 떨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때리고 있었다. 아마 아까 겁에 질린 여학생은 자신의 그의 여자 친구 또래였을 것이다. 위 침대에서는 수경인 선임이 낼모레면 제대인데 이게 웬 난리냐며 광장의 시민들을 욕한다. 반대 쪽 침대의 이경은 지금 이 상황이 모두 혼란스럽기만 하다. 꿈꾸던 군 생활을 이런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란 걸 알고는 너무 고통스럽다.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지, 왜 아버지 같은 여동생 같은 사람들을 때려야 했는지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장면3.
그녀는 얼마 전 딸에게 인터넷을 배웠다. 전경에 입대한 아들 녀석 말로는 요샌 군대에서도 인터넷이 되어 이메일을 확인 할 수 있단다. 이메일을 써보려고 어렵사리 배운 인터넷이었다. 요새 인터넷 게시판에는 광장의 소식으로 난리다. 강경진압이 있었다드니 말도 많다. 아들이 관련 없기만 바랄 뿐으로 요 며칠 새벽기도를 다녀왔다. 며칠 전 외박을 나왔던 아들은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침울해 했었다. 소고기라도 사주어 힘내려고 하자 요새 이런 거 먹으면 안 된단다. 그녀보다도 건강과 안전을 따지던 아들이었다. 이메일을 보내려다 동영상이 올라와 있어 본 그녀는 한 여학생이 무참히 전경 발에 밟히는 장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딸을 불러 위험하게 저 곳에 가지 말라고 할 참에 헬멧 속의 전경의 얼굴이 보였다. 틀림없는 아들이었다. 그녀의 생일 때면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놓던 아들이었다. 졸업하면 재수를 해서 의대에 가서 불우한 사람들을 돕겠다던 그녀의 아들이 동영상에서 한 여학생을 짓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짓밟힌 여학생은 내 후배였을지도 모르겠다. 짓밟은 전경은 내 친구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염없이 울던 아주머니는 나의 고모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언제까지 이놈의 나라는 나의 후배가, 나의 친구가, 나의 고모가 또 다른 누군가들이 슬프고 아파해야 하는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아프네요.ㅜㅜ
이런 일이 이제 없기를 바랍니다. 다행히도
지난 촛불혁명은 평화롭게 이루어졌지요.
분명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믿어요.
맞습니다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느끼고 저희도 모두 노력해야지요
아~~
제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랑 같네요.
1987년 닭장차 주변에서...
저 사진은 우리나라가 아닌 것 같네요.
저 당시 백골단(사복경찰) 이 사실은 전경 들이 많았고, 같은 대학생 친구들이었습니다. 제 친구도 우리집 친구집에 전화 걸어서 누구 빨리 집에 오라고 하세요 라고 전화 하고 그러더라고요.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이제는 다시 그럴 일이 없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네 우연히 일기를 보다 슬퍼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