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to Cryptoeconomics : 암호학과 경제학의 결합, 암호경제의 시대
“Cryptoeconomics is the application of economics and cryptography to achieve information security goals”
-Karl Floerch, Ethereum Foundation -
바야흐로 암호경제학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암호화 기술을 근간으로 만들어지는 데이터 구조인 블록체인, 그리고 블록 생성에 대한 보상으로서 등장한 암호화폐 덕분이죠. 즉, 암호 기술과 경제학이 직접적으로 맞닿으면서 블록체인 프로토콜 위에서 개인간의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암호경제 분야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암호경제학의 본질
여러분은 암호경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저는 암호기술을 통해 개인 간의 경제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중앙 기관이 일방적으로 금융거래를 검증하거나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노드가 P2P 내지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서로의 거래 데이터를 검증하고 동기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죠.
비트코인의 경우, 해시 기술과 머클트리 구조 덕분에 머클 경로에 있는 hash 값을 활용해서 누군가 검증하고자 하는 트랜잭션 데이터를 쉽고 효율적으로 검증할 수 있습니다. (https://blockgeeks.com/guides/what-is-cryptoeconomics/) 비록 PoW 방식에서는 경제적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PoS로 전환되고 있긴 하지만요 :)
Web 2.0에서 Web 3.0으로의 전환
'주머니 속 송곳'이라는 직관적 의미를 가진 한자성어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습니다.저는 블록체인이 바로 낭중지추와도 같은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데이터들이 중앙화되어 생기는 문제점들이 점점 불거지고 있을 때, 몇몇 사례들을 보면서 블록체인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Cambridge Analytica 데이터 스캔들
블록체인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많은 관심을 받던 시점에, Cambridge Analytica라는 정치전략 연구소에 약 5천만명에 해당하는 Facebook 고객정보가 팔렸던 데이터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닥 회자되진 않았지만 미국 사회 내에서는 매우 큰 이슈로 여겨진 사건이었습니다. 예전부터 Facebook의 고객정보 유출문제는 심각하게 다뤄졌었지만,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주커버그는 청문회까지 다녀왔었죠. (https://en.wikipedia.org/wiki/Facebook%E2%80%93Cambridge_Analytica_data_scandal)정보의 검열저항성
많은 분들이 아실 수도 있지만, 지난 달 중국 북경대의 한 학생이 정부의 악행을 고발하는 글을 16진법으로 전환하여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 기록했습니다. 이더리움 지갑 앱인 Metamask를 사용하면 ETH 전송 외에도 Transaction data를 기록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블록체인 특유의 비가역성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내용의 글을 블록체인 위에 영원히 기록할 수 있습니다. (http://www.pitchone.co.kr/10562/)
이 외에도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었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데이터가 탈중앙적으로 기록되는 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블록체인의 비가역성, 검열저항성, 탈중앙성 등의 가치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블록체인이 신기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공감대가 누적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개인들이 중앙화된 정보 시스템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라는 예측은 미래학자들이 Web 3.0 시대를 거론할 때 자주 회자되던 특성이었습니다. 그 수단으로서 등장한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일 뿐이죠.
암호경제학적 측면에서 좀 더 나아가보자면, 블록체인은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암호화폐 데이터들이 Programmable Money로서 한계효용적 가치를 갖고 있고, 그것이 개인들에게 경제적 가치를 갖는 인센티브로 받아들여지면서 새로운 미시경제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본 문서에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탄생의 효시인 비트코인 또는 PoW 방식에 국한되어 이야기를 할텐데, 여기에서 제가 생각하는 암호경제학이란 이렇습니다.
암호화 해싱 작업을 거쳐 데이터가 동기화되고 이에 따라 한계효용적 가치를 지닌 암호화폐가 발행될 때, 프로토콜 참여자들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미시적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분야
결국 블록체인은 시대가 필연적으로 필요했던 기술이었고 블록체인,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암호화폐로 말미암아 암호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P2P 방식으로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블록체인이라는 data structure 위에서 경제현상(수수료, 마이닝, 인센티브로서의 암호화폐 등)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금 수준에서 분석가능한 경제이론으로는 미시경제학, 그 중에서도 비용이론 또는 게임이론과의 관계가 깊습니다.
사회적경제와 블록체인, 그리고 P2P 시대
왜 제가 뜬금없이 사회적경제라는 생소한 개념을 언급했을까요? 비트코인의 등장배경과 다소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적경제 사상의 교과서 "거대한 전환"에서 저자 Karl Polanyi는 극단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전통경제학을 비판하며, 아래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 커뮤니티 위주의 원시 부족사회 경제구조로 회귀하게 될 것.
- 협업 및 커뮤니티 위주의 경제집단이 필요해질 것.
- 전통경제학에서 설정해놓은 경제 변수(노동, 자본의 이원적 구분 등)는 극단적으로 효율 중심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
어떠신가요? 블록체인 거버넌스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 아닌가요? 칼 폴라니가 100년 전 쯤 예측했던 대안경제모델의 원리들입니다. 지금 현대 자본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갈증, 그리고 블록체인 거버넌스가 고민하고 있는 갈증과 유사합니다. 실제로 토큰이코노미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Steemit의 경우, 사회적경제 조직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협동조합 원칙을 준수해야한다며 백서에 명시했었죠.
블록체인이 등장했던 이유, 즉 Satoshi가 비트코인을 만들어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Satoshi는 2008년의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미국 중앙은행의 중앙집권적 화폐발행을 통한 양적완화 뿐만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에서 갖는 부의 불평등 문제나 앞서 언급했던 금융 기관의 일방적 거래 승인구조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나아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fiat money)에서 벗어나려 했고, 개인이 채굴 과정을 통해 직접 화폐를 만들어낼 수 있게끔 하고 이것을 현실에서 지급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비트코인을 만들어낸 것이죠. 사회적경제 사상과 100%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두 모델 모두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던 문제와 중앙화 이슈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경제 사상을 지지하고 있는 원리는 '효율성에만 집중하는 중앙기관 대신에, 사회 내부의 세세한 문제들을 개인끼리 연결되어 해결하자'라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회적경제 조직(협동조합, 공동체이익회사 등)은 하나의 자원봉사단체 내지 착한 사람들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었고 그 경제 모델적 한계때문에 기존의 주식회사 모델을 넘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블록체인은 거버넌스 측면에서의 문제를 겪고 있죠. 저는 이 두가지 모델이 보완재로서 융합을 이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가다 들려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