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T Column
안녕하세요.
KEEP!T 입니다.
이번엔 경제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고자 합니다.
입국 금지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지인의 회사가 미국에서 워크샵을 하는데 입국을 금지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유가 뭔지 궁금했는데 이란에 다녀온 이력을 문제 삼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주변에 조금씩 미국 입국을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습니다. 미국 이외에도 수많은 국가들이 다양한 행정적, 경제적 제재를 통해 외교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경제제재는 왜하는 것일까요?
또, 최근들어 이 경제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몇몇 국가에서 암호화폐를 두드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제제재란?
경제제재는 탈냉전이후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외교수단입니다.
경제제재는 성격에 따라 특정 행동을 억제하는 부정적 제제와 대상국의 행동을 유도하는 긍정적 제제로 나뉘나, 일반적으로 특정 국가의 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함으로써 제재대상국의 행동을 억제하려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제재에는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무기 금수조치가 있고, 무역과 금융제한조치가 있습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경제제재가 중요한 외교정책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효과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리비아의 비극
대표적인 미국과 UN의 경제제재 국가였던 리비아의 사례를 한 번 볼까요.
리비아는 1961년대 대량의 석유가 발견되면서 일약 아프리카의 최대 부국 중 하나로 떠오릅니다.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무혈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초강경 반미 정책을 펴고 석유를 국유화하며 석유값 인상을 주도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합니다. 미국은 1970년대 부터 테러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리비아에 경제제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의 팬암기 폭파사건, 1989년 니제르 상공에서 프랑스 UTA항공 DC10기 폭파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뿐만이 아닌 UN의 경제제재를 받기 시작합니다. 리비아는 끝까지 사건 연루를 거부하였고 이에 1992년 1차, 1993년 2차 경제제재를 발동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리비아 정부 및 민간기업의 해외자산 인출동결, 석유장비 금수조치 등이 추가되어 실질적으로 리비아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킴은 물론 리비아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는 내용들이 포함됩니다.
이 제재를 통해 리비아는 국제교역 및 투자의 위축을 초래했고, 항공기 운항중단 조치에 따른 수입물자 반입의 애로로 물류사정이 악화되면서 물가가 치솟고 경제운용에도 상당한 제약을 받았습니다. 1992~99년간 UN의 경제 제재조치로 인해 리비아의 1인당 명목 GDP가 1992년의 7,430달러에서 1999년 5,929달러로 감축되었죠.
시간대 별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978․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군수장비 판매금지
1981.5․ 워싱턴 주재 리비아 외교공관 폐쇄
1982.3․ 리비아산 원유수입금지․원유․가스관련 장비 및 기술수출 금지
1985.11․ 리비아에서 정제된 석유제품 수입금지
1986.1․ 미국내 리비아 자산동결․리비아진출 미국원유업체 철수․레이건 행정부의 트리폴리 폭격․리비아에 대한 포괄적 교역 및 금융거래 제한(상품․기술․서 비스의 수출입 금지, 리비아에 대한 원조 및 신용공여 금지)
1988.12․ 미 항공기(Pan Am) 로커비(Lockerbie) 상공에서 폭파(270명 사 망)
1989.9․ 프랑스 UTA항공기 북아프리카의 니제르(Niger)상공에서 폭파 (171명 사망)
1991.10․ 미국․영국, 팬암기 폭파혐의로 리비아 정보요원(2명) 기소. 프랑스, UTA폭파혐의로 리비아 정보요원(4명) 기소
1992.4․ UN, 로커비사건 용의자 신병인도요청 거절에 따른 경제제재발 효(민간항공기 운항금지, 군수장비 판매금지 등)
1993.11․ UN, 경제제재조치 강화(리비아 해외자산 동결)
1996.8․ 미국, ‘이란․리비아 제재법’ 발효 (리비아 석유산업에 연간 4천만 달러 이상 투자하는 기업 제재)
1999.4․ 리비아, 로커비 용의자(2명) UN측에 신병 인도․UN 경제제재 잠정중단
1999.7․ 영국․리비아, 외교관계 회복 합의
2001.8․ 미국, ‘ILSA법‘ 5년 추가 연장 (연간 투자한도액을 기존의 4천만 달러에서 2천만 달러로 강화)
2001.9․ 가다피, 9․11 테러 비난(미국과의 관계개선 의도)
2003.8․ 리비아, 로커비사건 보상금(27억 달러) 지급합의
2003.9․ 리비아․프랑스, UTA사건 잠정합의․UN,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11년간) 공식해제
2003.12․ 가다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계획 포기선언
2004.1․ 리비아․프랑스, UTA사건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추가보상금 지급합의 미국․영국 핵기술자, 리비아 대량살상무기관련 원료 및 기술파기
2004.3․ 미국, 미국인의 리비아 여행금지 해제․미 의회대표단, 리비아 방문․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리비아 방문
2004.4․ 미국, 리비아 경제봉쇄 완화
2004.6․ 리비아 트리폴리에 미 연락사무소 개설(양국간 외교관계 복원)
2004.9․ 경제제재 공식 해제
위의 과정을 통해 리비아는 완벽하게 굴복하고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며, 관련 사건에 대한 보상을 충실히 이행하는 등 미국과 UN의 압승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후 카다피는 선진국의 의도대로 지내며 공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2011년 아랍의 봄에 휘말려 리비아 내전을 벌이게 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리비아는 치안을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고 IS 등 무장단체들의 활동까지 겹쳐, 현재 다수의 국가가 여행금지국가로 설정해놓은 나라이며, 여전히 경제도 치안도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수준입니다.
다른 국가에서 일어난 경제제재 역시 무수히 많은 비극을 일으켰습니다. 아이티의 경우는 어떨까요. 가톨릭 신부 출신의 정치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1991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자 클린턴 정부는(클린턴은 아이티 대사이기도 했었죠. 그만큼 아이티를 잘 알았을 겁니다.) 그를 복귀시키려고 미주기구(OAS)를 동원해 아이티와의 무역에 제한을 가합니다. 그 때문에 아이티의 모든 중소기업들은 곧바로 파산했습니다. 아이티는 한때 전세계 야구공의 80%를 생산할 정도였지만, 지금 이런 공장들은 완전히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아이티의 비극은 그 전부터 있었습니다. 미국을 포함해 외세의 압력에 놓였던 1986년 아이티는 수입쌀에 대한 관세를 폐지해야 했는데, 순식간에 아이티 쌀 생산량의 75%가 미국쌀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쌀 시장과 조금씩 겹쳐 보입니다.)
경제제재가 휩쓸고 남은 자리엔 언제나 거대한 비극이 자리합니다.
경제제재가 가져오는 실질적 결과
첫 번째로, 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제재만으로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에 군사력 사용을 좀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티, 이라크, 보스니아가 그 예죠.
두 번째로, 제재를 하게 되면 내부의 정치 체제는 공고해지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북한, 쿠바, 이란이 이에 해당됩니다. 해외와의 긴장 국면은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좋은 이유로 활용됩니다. 공급이 부족하니 국민들의 생활은 정부의 원조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고, 정치적으로는 지식인들이 몰락하거나 해외로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지며, 반대파는 존재하기 어렵게 됩니다.
세 번째로, 경제제재는 해당국가의 집권층에 타격을 주지 못하며, 반대로 취약계층에 심대한 타격을 주게 됩니다. 이라크의 경우, UN아동기금의 조사에 따르면, 1991년에서 1998년 사이 이라크에서 경제제재로 50만명의 5세 이하 어린이가 사망했습니다. 1990년 이전과 비교해 볼 때, 영아사망률은 2배 이상 증가했고, 5세 이하의 어린이 사망은 6배 증가했습니다. 결국 이라크에서의 경제제재는 전쟁이전에 이라크 주민의 1/10을 죽이게 됩니다.
이에 경제제재를 당하는 국가들은 어떻게든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갖가지 시도들을 하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많은 국가들이 취했던 시도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실패했는지, 그리고 암호화폐는 왜 그들의 희망 중 하나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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