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삼변 – 논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품인이라 합니다. 품은 품평하다는 뜻이고, 인은 사람이란 뜻이죠. 즉 사람을 평가할 때에 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다양한 사람의 유형 중에 어떤 사람이 가장 나은 사람이냐는 질문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문에 현답을 내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공자입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엄숙함, 따뜻함, 그리고 논리력을 모두 갖춘 사람을 삼변(三變)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 가지 서로 다른 변화의 모습을 그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일변(一變)은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망지엄연,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의젓하긴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다소 어려운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가서서 보았을 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즉지야온, 멀리서 보면 엄숙한 사람인데 가까이서 보면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엄숙하지만 또다른 모습, 바로 이변(二變)입니다. 겉은 엄숙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속은 따뜻한 사람이겠지요. 삼변(三變)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정확한 논리가 서있는 사람입니다. 청기언야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논리적인 모습이 느껴지는 경우입니다. 종합하면 외면의 엄숙함과 내면의 따뜻함에 논리적인 언행까지 더해져 이른바 최상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박재희, 「3분 고전」中
나에게 한 친구가 나의 첫인상에 대해 말했다. 그는 아주 솔직하게도 ‘굉장히 재미없는 사람’, 요즘 쓰는 말로하면 내가 ‘진지충’처럼 보였다고 해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 다보는 SNS에 이상한 혼잣말이나 하고 있고, 정치에 대한 투덜거림을 올려두었으니 늙은이처럼 보인대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런 나에 대한 평가가 싫지 않다. 오히려 기쁘다. 그 이유는 군 시절부터 가져왔던 나의 소망인 ‘군자삼변’이라는 가르침 덕분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문득 이 글을 떠오르게 해주어 고맙다. 예전의 나를 생각해보면 참 가벼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남들을 즐겁게 하고 싶고, 인기를 끌고 싶은 생각에 우스꽝스럽게 행동하거나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경험도 있다. 아니면 대범해보인다는 말을 잘못 이해했던지, 거침없는 언행을 일삼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멋진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았는데, 돌이켜보니 남들에게 상처를 준 일도 있었고 내가 상처받은 적도 많았다. 그래서 '나의 모습'보다 더 좋게 변화할 수 없을까 고민했었다. 이후 독서를 하다 ‘군자삼변’이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에 삶과 태도에 대해서 지향점을 세우게 되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에 엄숙해 보이는 사람, 요즘 시대에 그다지 선호되는 사람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나 역시도 “유쾌하고 즐거우면 좋지”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엄숙하게 나의 행동을 경계하고 싶다. 다언삭궁(多言數窮), 말이 많으면 곤란을 많이 겪는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에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아가 군자삼변의 덕처럼 누군가와 더욱 가까워졌을 때에, 따뜻하게 그를 포용해줄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에서 나의 말과 행동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도록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언행의 합리성은 절대로 스스로 찾아오지 않음을 알기에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내가 심심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으니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연히 ”진중하고 엄숙한 거랑 심심하고 재미없는 거랑은 다른데요?“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대충 비슷하니 기쁘다. 마치 내 희망사항이었던 ‘군자삼변’의 모습에서 첫 번째를 달성한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 기분은 그저 기쁘게 가져가면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 부족한 것은 고쳐가면서, 엄숙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며 옳고 바른 마음을 갖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