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관한 지난 글들.
개헌에 관한 생각들 (1) - 나는 평화 헌법으로의 개헌을 꿈꾼다
개헌에 관한 생각들 (2) - 시민들은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개헌 시리즈, 3편입니다. 열심히 쓴 글이 날아가 버려서, 기억을 되살려 급하고 거칠게 복원해봅니다ㅜㅜ 올리지 않고서는 잠이 안올 것 같아요...
이번에 이야기해볼 주제는 개정 헌법 '전문(前文)'에 관한 것입니다. 헌법 전문, 이라고 하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전문이란 한자 뜻 그대로 '앞에 오는 글'이라는 의미입니다. 보통 법령이나 강령, 조약 등의 앞에 오는 글을 전문이라고 합니다. 보통 전문의 경우, 법령의 목적과 유래, 가치와 원칙 등에 대해 선언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의 헌법 전문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십수번 반복하는, 개인의 절대화와 찬양의 의미를 담은 전문도 있습니다 (...)
사실 개인적으로는 개헌에 대해 조사하면서 이 전문에 대한 내용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총학생회 회칙 개정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작업 자체가 굉장히 재밌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만, 가장 인상 깊었던 일 중에 하나는 과거 개정 과정에서 소실되었던 회칙의 전문을 새로 썼던 작업이었습니다. 어느 공동체의 규정을 정하면서, 그 공동체의 역사성을 분명히 하고 주요 가치를 선언하는 일인 만큼 전문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번 개헌 논의에 있어서도 전문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현재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것으로 국가의 역사적 정통성을 규정하고 있죠? 그리고 민주개혁과 통일, 민족의 단결이 국가의 당면 과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이념으로 선언하고 있구요. 기회의 균등, 능력의 발휘를 통해서 국민생활을 균등하게 향상시키고,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는 목표를 이야기합니다.
현재 개헌 과정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전문의 개정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3.1운동과 4.19 혁명에 이어, 5.18 항쟁과 6월 항쟁, 부마 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민주화 투쟁을 전문에 명시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지난 2017년의 촛불집회를 전문에 포함하자는 주장도 있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겠다고 공약을 내걸었고, 지난 5.18 기념사에서도 이를 반복하여 언급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방향에 대해 국론 분열을 운운하며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전문에서 좀 더 미래지향적인 가치들, 이를테면 현재 개헌의 주요 가치로 언급되는 분권화, 생명존중, 복지국가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도 중요한 논의 대상입니다. 30년 동안 시대가 변화한 만큼, 그러한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목표와 가치들을 선언하자는 의미인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들을 추가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5.18을 비롯한 민주화 투쟁들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기간의 군부 독재를 겪은 나라에서, 피흘려서 쟁취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분명히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굳이 사건 자체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촛불집회로 표출되었던 정치개혁과 직접 민주주의의 열망을 전문에 녹여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을 통해서 헌법 개정의 시대적 배경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이 헌법이 어떤 방향에서 개정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문에 어떤 미래지향적 가치를 나타내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들이 분분한 상황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지난 글에서도 강조했듯 평화국가로서의 지향을 뚜렷히 나타내는 문구가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흔히 '평화헌법'이라고 부르는 일본국 헌법의 경우, 헌법 전문을 통해 평화주의를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헌법 전문에서 "다시는 정부의 행위에 의하여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결의"하며, "일본 국민은 항구적인 평화를 염원"하고, 일본을 넘어서 "전 세계의 국민이 균등하게 공포와 결핍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가짐"을 선언하고 있는데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수십 년 간 분단 체제의 모순 속에서 고통을 겪었던 나라인 만큼 평화주의적 지향을 분명히 함으로써, 날로 긴장이 더해가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선도적으로 평화국가로의 전환을 선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부의 편중과 양극화, 노동의 위기라는 사회적 모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명시했으면 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 받고, 존중 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 지금의 시대적 과제임을 헌법 전문을 통해 뚜렷하게 규정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개정 헌법의 전문은 좀 더 명확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쓰여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지금 헌법 전문은 아무래도 오래 전에 쓰여진 것이다 보니 오늘 날에 보았을 때 좀 장황한 나열에 가까운 문장이죠. 가능하다면 문장을 끊어서, 헌법의 역사성과 주요 가치, 국가의 목표를 나누어 서술하면 좋겠습니다. 헌법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 만큼 시민들이 누구나 쉽게 읽고 명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개정 헌법의 전문은 누가 제안하고 초안을 쓴 문구가 될 것인지, 그것도 제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ㅎㅎ
스스로 헌법 전문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활동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바라는 국가의 구체적 지향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과연 포인트가 있을 것인가... @홍보해
개인적으로는 헌법 전문 국민 공모전 같은걸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ㅎㅎ
이벤트로 괜찮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