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는 잊어버리기 위한 것.
메모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한다. 내 책을 본 사람들은 나도 메모를 많이 한다고 믿는 것 같다. 내 기억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기 때문에 더 그럴지 모른다. 정보가 많은 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아, 물론 메모의 범위를 넓힌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메모는 다시 들춰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스스로 기가 차다고 느끼는 생각이 떠올라도 메모하기보다는 기억해 두려고 애쓴다. 물론 그러다가 잊어버린다. 가끔 그것이 너무 아까워서 메모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그 메모를 다시 들춰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시 메모를 하지 않았다. 메모했던 것들은 비교적 덜 잊는다. 역시 메모의 범위를 넓히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어제 일이다. 약속 시간이 되어 나가다가 카센터에 들렀는데 자동차를 맡겨야 했다. 할 수 없이 다른 차를 썼다. 그런데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짓을 저질렀다. 노트북과 책 한 권이 든 백팩을 그 차에 두고 떠난 것이다.
격리된 방에서 사람을 기다릴 때 책이나 노트북이 없으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분명히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할 것이고 읽을 것이라고는 메뉴판밖에 없는 방에서 부들부들 떨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다시 카센터로 가서 백팩을 가지고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이 금단증상과 싸워보기고 했다. 어제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잘 견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책뿐만이 아니라 노트북이 없어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생각이 나면 그것을 글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메모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메모를 주로 페이스북에 올린다. 그러다가 필요하면 찾아 보기도 한다. 무척 드문 일이지만. 나는 왜 메모를 다시 찾아보지 않을까?
그 생각들이 내 몸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좋게 봐서 그렇고, 끊임없이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강의하고 글을 쓰는 주제는 꽤 다양하고 넓은 편이다. 당연히 메모가 필요하다. 그렇다. 메모를 한다.
문제는 무슨 메모를 했는지 잊어버릴 뿐 아니라 다시 그 메모를 들춰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메모는 그때그때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러고 잊어버린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궁금한 것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고 새로이 생각해 봐야 할 것도 많다. 아마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