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와 공적인 가치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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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와 공적인 가치

나는 개인의 관계에서 의리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보답해야 한다. 그게 의리 아니겠는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다 욕하더라도 나도 나서서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런 의리가 없다면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그러나 그 의리가 공적인 이익과 충돌한다면 여간 고민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최선의 방법은 침묵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의 눈물을 머금고라도 의리가 아닌, 공적인 이익의 편에 서야 할 때도 있다. 공인이라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

평소에 사람들을 괴롭히던 누군가가 죽었다 치자. 피해자는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며칠씩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고 소화가 안돼 뭘 먹을 수도 없다. 그런 피해가 공적으로 인정되고 가해자를 단죄한 것도 아니다. 그럴 때 그 모든 것을 잘 아는 그 죽은 악한의 친지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개인적인 입장과 공인의 입장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의리로 볼 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슬픔을 표시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 행동조차 뉴스감이 된다면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의 정치인들에게도 그런 걸 요구하지 않는가. 아무리 개인적인 입장이라고 해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개인적인 행동'으로 봐 주지 않는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한 개인의 삶이다. 그러나 그의 언행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저 끝난 것으로 볼 수 없다. 그의 죽음 앞에서 주례사비평처럼 적당히 미화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진실된 모습으로 남도록 해야 한다. 그 역사는 한 사람의 죽음과 함께 저절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공인'이라면 절실히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가 우리의 가슴에서도 진정으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그가 남긴 피해자들의 가슴 저미는 상처 역시 치유된 뒤여야 한다.

가끔 이제 그가 죽었으니까 잊으라고 한다.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의 악행은 지나가던 깡패의 돌발행동이 아니었다. 그런 것이었다면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악행이 가능했고, 그의 악행이 되풀이되면서 피해자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만든 것은 그 악행을 주도한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적인 환경이다. 그렇게 보면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형인 셈이다. 주례사 같은 애도사도 그런 역할을 한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하지 못하는 그대, 그러면서 박근혜를 욕하는가? 정치인들의 낙하산 인사가 한국을 병들게 만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오늘 어떤 악한의 죽음에 대한 감상적인 공인의 글을 읽고 너무나 화가 나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