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돈"에 관한 이야기 A to Z

in #kr7 years ago (edited)
 "Money is a great servant but a bad master". 프란시스 베이컨이 남긴 이 말처럼, 돈은 이따금 우리의 주인이 되어 우리를 눈물짓게 하고, 때로는 충실한 종이 되어 우리를 웃게 합니다. 돈을 만들어낸 것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돈은 자신의 창조자인 인간에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모순적인 존재지요. 프란시스 베이컨같은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에서도 이러한 돈의 본질과 돈에 얽힌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고발해왔습니다. 오늘은 돈과 그에 얽힌 인간 본성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낸 5편의 추천작을 골랐습니다. 킬링타임용으로 볼 수 있는 가벼운 영화부터 마음의 준비 없이 봤다가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영화까지, 돈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01 피에타(Pieta)



  첫 번째로 소개할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2012년 개봉작 <피에타>입니다. 배우 이정진과 조민수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제6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아 큰 화제가 되었지요. 영화 <피에타>에는 다양한 예술적 은유들이 등장하는데, 이미 제목에서부터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참 절묘하게 잘 지은 제목입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 또는 '불쌍히 여기소서'를 의미하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뉘어 눈물 흘리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조각상의 명칭이기도 합니다.(유럽 각지에 여러 종류의 피에타상이 조각되었는데, 바티칸에 위치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조각상이 가장 유명합니다. 영화 포스터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상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피에타>는 '용서'와 '구원', '연민'을 이야기한 영화입니다. 혹자는 <피에타>를 종교적인 영화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돈에 관한 이야기일까? 먼저 줄거리부터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린 채무자들을 쫓아다니며 돈을 받아내는 것이 이 영화의 주인공 강도(이정진)의 일과입니다. 채무자들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강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강도의 폭력에 시달리던 한 남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강도에게 자신이 엄마라고 주장하는 미선(조민수)이 불쑥 찾아옵니다. 미선의 등장에 평생을 외롭게 자라온 강도는 혼란스러워합니다. 고통의 시간이 흐른 후, 강도는 미선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강도가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미선이 홀연히 사라집니다. 강도는 평소 자신이 괴롭히던 채무자의 소행일 것이라 짐작하고 채무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 과정에서 미선과 강도 사이의 잔인한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강도는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의 상징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없어도 그만인 '돈' 때문에 누군가는 죽음을 택합니다.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끝내 벼랑 아래로 밀어버리는 잔인성을 가진 '돈'의 무서운 얼굴입니다. 청계천의 쇠락한 공장들을 배경으로 한 김기덕 감독 특유의 거친 시선은 이런 돈의 얼굴을 날 것 그대로 드러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공감할 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강도에게 인간성을 찾아준 것은 바로 미선입니다.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린 강도는 지켜야 할 사람을 끝내 지키지 못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뒤늦게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미선을 찾아 헤매던 중 강도는 잔인한 비밀을 알게되고(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습니다) 강도는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진정한 '구원'을 얻습니다.


  강도의 '속죄'와 '구원'을 상징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영화 전반이 충격의 연속이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모든 감정을 응축해놓은 잔인하고도 화려한 피날레입니다. 돈이 파괴해버린 인간성과 파괴된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 <피에타>에는 많은 상징과 은유가 등장하는 만큼 다양한 철학적 해석이 가능합니다. 무서운 여운과 무거운 슬픔을 남기는 영화이므로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표현할 수 있는 그 모든 인간적인 감정의 끝을 보여주는 <피에타>, 진정한 영화광인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02 10억(A million)



  두 번째 추천작은 2009년 개봉한 조민호 감독의 <10억>입니다. 배우 박희순, 박해일, 신민아, 이민기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얼마 전, 러시아의 한 방송사에서 20억 원을 상금으로 내걸고 참가자들 사이에 온갖 범죄를 허용하는 서바이벌 쇼를 기획했다는 뉴스를 보고서 바로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10억>의 시나리오와 굉장히 유사했습니다. 영화적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러시아의 패기(?)가 놀랍기만 합니다. <10억>의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터넷 방송국 PD 장민철(박희순)은 상금 10억 원을 내걸고 서바이벌 쇼를 기획합니다. 수십만 명의 신청자가  지원했으나, 장민철은 단 10명의 지원자를 직접 선발합니다. 사막과 무인도, 밀림을 오가며 서바이벌 게임이 진행되면서 한 명씩 참가자들이 희생됩니다.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한 지 1주일 후, 단 한 명의 생존자만이 남아 경찰에 발견되고, 서바이벌 쇼를 둘러싼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게 됩니다. 


  <10억>은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돈을 좇는 과정에서 극대화되는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복수'를 그린 영화입니다. 소재의 신선함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후반부의 반전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만, 관객과 평론가들의 전반적인 평이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즐길 수 있는 킬링타임용 영화를 찾는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03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Sell me this pen"


  세 번째 추천작, 2014년 개봉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입니다. 1990년대 주가조작,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22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던 월가의 유명인사 조던 벨포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벨포트를 연기하며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지요.


  22세에 뉴욕에 발을 들인 촌뜨기였던 벨포트는 주식중개업을 하는 회사에서 잡무를 맡은 직원으로 취업합니다. 회사의 선임이었던 마크로부터 월가에 관한 여러 조언을 듣고 익힌 벨포트는 점차 월가에 적응하여 브로커 자격까지 얻게 됩니다. 1987년 10월 19일, 소위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갑작스러운 경제위기에 직장을 잃은 벨포트는 장외시장에서 소액증권 거래를 시작합니다. 타고난 언변과 뛰어난 두뇌로 고객들을 유치한 벨포트는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고, 고향 친구들을 불러 모아 스크래튼 오크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스크래튼 오크먼트를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벨포트와 그의 친구들은 마약과 섹스, 술과 파티를 매일 즐깁니다. 그러나 스크래튼 오크먼트를 운영하고 상장하는 과정에서 벨포트와 그의 친구들은 여러 불법을 저질렀고, 결국에는 FBI의 수사대상이 되고야 맙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벨포트가 월가에 적응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순한 인생역전 휴먼 드라마가 아닙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나서 마약과 섹스, 범죄에 빠져드는 벨포트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삶이 인간을 얼마나 망가뜨리게 되는지를 목격하게 됩니다.(벨포트의 화려한 삶과 황폐한 내면을 표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정말 일품입니다) 우리의 삶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돈을 버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위한 것인가, 원하는 돈을 얻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돈의 수단성과 목적성에 관한 철학적인 화두를 던집니다. 


  뿐만 아니라,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고도의 금융자본주의 사회가 가지는 불합리성을 폭로합니다. 돈 버는 지식을 가진 1%가 나머지 99%의 평범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구조적 모순이 벨포트의 입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언뜻 가벼워보이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사유를 하도록 만드는 수작입니다.    

 

#04 작전(The Scam)


 "주식시장에 그 동안 꼬라박은 수업료를 다 모았으면 그랜저 세 대는 뽑았겠다." 

  

  네 번째 추천영화, 2009년 개봉한 이호재 감독의 <작전>입니다. 故 박용하, 김민정, 박희순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주식'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 중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호재 감독은 이 영화에서 긴장감과 세밀한 표현을 위해 3,600개에 달하는 컷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한국영화에서 사용되는 컷의 2배에 달하는 분량입니다. 영화의 탄탄한 시나리오는 이러한 감독의 노력 덕분에 더욱 긴장감 있는 영상으로 현출됩니다. 특유의 몰입도 덕분에 러닝타임 2시간이 1시간처럼 지나갑니다.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백수 현수(박용하)는 주식으로 한방을 꿈꾸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고 맙니다. 모든 것을 잃고 투신까지 생각했지만, 수 년 동안 피나는 노력으로 주식을 독학한 끝에 마침내 슈퍼개미로 거듭나게 됩니다. 어느 날, 차트 분석을 통해 작전주를 찾아낸 현수는 작전주를 추격해 큰 이익을 보게 됩니다. 작전주를 계획했던 전직 조폭 출신 종구(박희순)는 작전을 망쳐버린 현수를 찾아내 납치했지만, 현수의 실력을 인정하고 새로운 작전에 투입합니다. 종구를 중심으로 펀드매니저, 자산관리사 등으로 구성된 작전팀은 순조롭게 작전을 진행하지만, 수백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눈 앞에 두고 서로 속고 속이는 한바탕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모 TV프로그램에서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주인공의 세 가지 요소를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시련', '분명한 목표', '기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작전>의 현수는 위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주인공입니다. 주식투자 실패를 통해 시련을 겪었고, 반드시 돈을 벌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으며, 종구를 만남으로써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기회를 얻었지요. 현수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타짜>의 주인공 '고니'에 버금갈만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다재다능한 배우였던 박용하님이 일찍 세상과 등을 진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주식에 관심이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스릴 넘치는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께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05 빅쇼트(The Big Short)



 "It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into trouble. It i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just ain't so"


  오늘의 마지막 추천영화, 2015년 개봉작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입니다. 크리스천 베일, 라이언 고슬링, 브레드 피트 등 화려한 라인업의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빅쇼트>는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입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게 된 원인과 금융위기의 양태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영화가 있을까요. <빅쇼트>를 좀 더 흥미 있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금융지식이 필요합니다. 저는 금융관련 지식이 부족한 탓에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감상 전부터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나레이션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표현된 적절한 비유가 금융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우니까요.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기 전, 4명의 주인공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미리 금융위기를 예측합니다. 단순히 예측에 그치지 않고, 금융위기를 통해 큰 이익을 얻을 계획을 마련합니다. 예상대로 미국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크게 휘청거렸고, '신용부도통화스와프'라는 형태의 공매도(아니 의사 양반, 대체 이게 무슨 소리오!)를 통해 미국경제의 몰락에 베팅했던 주인공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게 됩니다.   


  <빅쇼트>는 오늘날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의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자본흐름의 불합리성과 불평등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빅쇼트>를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입니다. 누군가는 한 순간의 위기로 전 재산을 잃지만, 누군가는 그 위기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는 현실. 인간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돈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월가의 탐욕이 초래한 금융위기로 모든 것을 잃게 된 사람들은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까. 금융위기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막대한 부는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하고도 합리적인 대가였을까. <빅쇼트>는 고도로 발달한 금융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며 자본주의의 미래를 고민하도록 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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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좋은 추천글이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재밌게본영화들도 많구 잘보고갑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시우님^^
종종 좋은 정보 공유하도록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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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글 잘 쓰시네요. 여기다가 환영인사 드릴게요~~ 자주 글 써주세요. 법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화이팅입니다!! 보팅은 지금 100% 될때까지 충전했다가 할게요. 리스팀해놓고 있을게요. 그럼...꾸벅..

반갑습니다^^
낯선 글에 관심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소식 주고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돈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끝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좋은 영화 추천 감사드리고, lawmance님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덕님^^
시간나실 때 소개해드린 영화들 중 끌리는 것 아무거나 골라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좋은 주말 보내시길!

이렇게 깊이있는 글에는 가차없이 추천 눌러드립니다.
꾸우우~~욱

피에타가 돈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로맨스님의 글을 읽고 돌아보니
돈이 큰 화두였네요.
길고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여러 해석들 중 저만의 해석일 뿐입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지요. 마담 에프님의 해석도 궁금하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