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와 가정폭력
정희진 저자의 ‘아주 친밀한 폭력’은, 강남순 교수님의 ‘용서에 대하여’ 처럼 오랜 시간동안 읽을 목록에 올라와 있었지만 차마 열어보지 못한 책 중 하나이다. 성 역할, 가족, 폭력 이 모든 범주에 들어가는 일들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전과 같이-내 자아와 가족에 대한 검열과 성찰이 전보다 깊고 더욱 아프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여성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두 번 경험하는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의 폭력에 대하여, 그리고 가정 폭력-즉 아내에 대한 폭력-을 다룬다. 매일 어딘가에서 가정에서 '강남역 사건'이 일어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희진 저자는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인권 단체 ‘여성의전화’ 에서 상근자로 일할 때부터 꼭 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이 책의 출간 전후에 겪었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 읽기'였다고. 저자가 서론에서 던진,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주의 시각, 피해자 중심 분석, 여성 인권에 관한 책이 충분히 거론되고 출판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라는 질문은 어디에 가 닿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 책을 쓰면서 한 시간 쓰고, 한 시간 울고, 한 시간 자는 상태를 반복했다. 음식은 거의 먹지 못했다. 책상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초콜릿과 우유를 사다놓고 책상 앞에 계속 앉아 있었다. 글을 쓰는 도중에 피해 여성에게 연락이 오면 변호사와 경찰을 만나고, 아이와 함께 폭력 남편을 탈출하려는 여성을 돕기 위해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설득하러 먼 곳을 돌아다녔다.
이러한 ‘여성주의 시각’에서 쓰여진 책들을 찾아 읽을때면 항상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자아 분열과 혐오감, 허탈감, 정의감 등은 동시에 동반되는 공부 의지를 채워주는 ‘연구력’에 비하면, 참아줄 수 있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여성들이 감내하는 폭력을 낱낱이 읽고, 사회적 문제라는 명백한 사안에서 아직도 심각성을 깨닫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직-간접으로 보고 있자면 때때로 눈물이 차오르기도 한다.
<썅년의 미학>의 저자 민서영님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썼다. 책 덕후가 말하는 이런 책은 반드시 거르면 된다. 1. 백인 남자가 쓴 자기계발서 2. 한국 남자가 쓴 문학 및 에세이 3. 일본 남자가 쓴 심리서 이 글의 좋아요는 8.4천회, 리트윗만 2만건이다. 세기동안 여성을 짓눌러온 역사 속에 남성들이 일방적인 권력으로 써낸 책들은 이젠 더 이상 읽어줄 필요가 않다, 는 뜻으로 해석했으며 명쾌하게 찝어낸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팔로워들도 깊이 공감한 것이다.
또한 요샛말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 ‘믿거’ 라는 말이 있다. 믿고 거른다는 뜻이다. 아무리 혐오적 발언을 내뱉고 무례한 행동을 해도, 남자들은 그들의 업적(마저도 얼룩져있음)은 화려하게 조명되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이상한 맥락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알탕연대' 라는 말이 있다. 남성중심의 문화, 가부장적 사회의 산물 속 흔히 ‘거물’이라 일컫는 남성들의 독보적인 행진을 뒤따르는 사람들 끼리의 연대라는 뜻이다. ‘믿거’와 ‘알탕연대’가 양면으로 비춰지는 문화의 바닥엔 보이지 않지만 치열한 권력 싸움이 존재한다.
그 누구도 비하되지 않으며, 배제되지 않고, 혐오를 받지 않는, 공평한 매개체를 바라지만, 공중파에선 찾아 볼 수 없는 컨텐츠다. 반드시 누군가를 깎아 내리고 차별을 해야만 웃긴단다. 생각보다 여러 겹의 장막에 쌓여 봐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무작위로 재생산하고 있는 미디어 그리고 그 배경으로 생산되는 교육. 학문이란 무엇인가,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정희진 저자의 한 문장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국가와 민족 등 정체의 단위가 위계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이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지기 쉽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남성이 여성의 몸에 행사하는 폭력과 통제가 자연스러운 사회다…남성의 성 역할과 인권은 일치하지만, 여성의 성 역할과 인간으로서 권리는 일치하지 않는다.
나의 경험, 너의 경험, 우리의 경험
놀랍지 않게도, 나 또한 주변 ‘아빠’가 ‘엄마’ 또는 ‘딸’인 나의 친구들을 향해 휘두르는 폭력을 종종 전해 듣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동시에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물어보면 대체로 레파토리는 똑같은 편. 평소엔 진짜 자상하고, 착하고, 늘 참는 친구같은 아빠인데… 또는 (자책)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어서, 또는 (폭력의 책임을 전가하거나) 엄마가 너무 잔소리를 해대서 아빠가 참지 못한거야, 또는 나 진짜 집 나갈 거야, 알바해서 보증금만 구하면. 그때까진 할 수 없이 참아야지 뭐… 등.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도 있냐,라며 폭력의 심각성이나 사태를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안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물론 동시에 경험한다. 이러한 현상이 가시화 되기까지 피해자는 어떤 상태로 노출되있는지에 대한 걱정따윈 하지 않는 그들이다. 하지만 한국 여성 대부분은 평생에 한두 번 이상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한다. 육체적인 폭력 외에도 가스라이팅(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 온갖 매체에 빠지지 않는 여성 혐오, 오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셀 수 없는 범죄, 유리천장(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름) 등 주위에 공기처럼 둘러싸인 폭력은 일상이란 사실.
예능 TV, 드라마 심지어 시사나 다큐멘터리 마저 외면해온 지난 5년 간, 나는 각종 미디어와 매체에서 수없이 반복 생산 해내는 여성혐오를 어느정도는 거르고 살수 있었다. 그 좋아하던 넷플릭스도, 새 영화가 업데이트 되었다며 어찌나 광고를 하는지 어쩌다 한번 클릭하고 나선 후회하기 일쑤지만. 여성을 어떤 식으로든 깎아 내리는, 능력있는 여성을 저평가 하는, 농담이랍시고 성, 외모, 인종, 장애 등을 비하하는, 여성을 향한 폭력을 로맨스나 남여상열지사로 둔갑시키는, 드라마 ‘아저씨’를 ‘순수한 사랑’ 이라고 치부하는, 온갖 남성의 폭력과 권력을 TV, 라디오, 음악, 문학, 영화에 아무런 검열 없이 내비치는 매일같은 현실. 정희진 작가님의 말처럼,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이 언어화될 때만이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다. 를 기억하며 글로, 노래로 외칠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내 폭력’이 처음 사회 문제로 제기된 것은 1983년 여성 폭력 (violence against women) 추방을 운동 과제로 내세운 ‘여성의전화’가 창립 되면서 부터이다. 한 여성이 폭력 가정을 탈출 하기 까지의 그 과정부터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과거 시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폭력과 유린을 경험했을지 감히 상상 할 수 조차 없다. 물론 너무 슬프게도, 지금도 내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잘 모르거나, 외면하거나 참을 수 밖에 없는 ‘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을 견디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을 향한 폭력’이 역할과 관련하여 ‘맞을 짓’으로 치부된 과거와 지금이 얼마나 다를까.
목차
1장에서는 책은 여성에 대한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은 피해 여성의 탈출을 비롯한 다양한 대응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이를 통해 현재의 가족 제도 아래서 폭력 당하는 아내의 순종 혹은 저항이 폭력을 예방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고, 피해 여성이 폭력 가정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지를 다룬다. 인류 공통의 경험인 ‘아내 폭력’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통계와 자료를 통해 과거를 알아본다. 또한 우리가 평소에 쓰는 단어의 어원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으로 지어졌는지, 생생한 여성들의 폭력 피해 경험 등을 나열하며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2장은 당사자:연구자, 피해자, 운동가로서 나를 돌아보고, 책을 집필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다룬다. 3장은 여성의 눈으로 보는 ‘아내 폭력’은 아내를 때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연구한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적’ 공간인 가정에서 남성 가장이 어떻게 사회에서 가족의 이해를 대표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은 여성 경험의 사회문제화를 주장하는 표어로, 1960년대에 제 2세대 페미니즘이 사용하기 시작하며 여성학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페미위키).
4장 폭력 남편이 인식하는 아내 폭력, 5장 폭력을 수용하는 아내의 심리, 6장 아내 정체성과 가족 정치학 까지 공포와 저항의 가족 정치학 등 중요 사건을 파악하고 분석한 글들을 볼 수 있다. 잘 읽다가 남편의 착취에 맞서지 못하는 이유에서 울었다. 실제의 많은 폭력은 아내를 훈육하려는 폭력보다 훨씬 더 도구적이라는 첫 문장에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아내를 향해 휘두르는 폭력을 통해 자기이해를 실현하는 남편은 대체 어디서 생성된걸까. 이걸 감히 누가 개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나. 반복되어 강조되는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을 모두가 공동으로 가져야만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7장, 가족 중심 관점에서 여성 인권 관점으로-는 가장 첫 말머리와 가깝게 닿아 있다고 본다. 여성주의가 남성 혐오와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어처구니 없는 사회현상(사회 현상으로 부를 수 있다면) 밑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죽고, 폭력을 당하고, 가스라이팅 당하며 비하 당하고 혐오에 휘둘리는가. 우리 모두는 더욱 열렬히 ‘여성주의’ 시각의 교육과 관점을 펼쳐야 한다는 저자의 뜻에 깊이 공감하고 아낌없는 연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