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원 느낀점(2)-쪽방촌
쪽방촌을 둘러 본 경험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요셉의원 근처에는 영등포 쪽방촌이 있다. 일주일에 한번 봉사자들은 물과 간식거리를 비닐봉투에 담아서 쪽방촌을 순찰한다. (나는 수녀님들과 함께 갔다.) 방문을 두드리면서 '요셉의원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안에 계시면 비닐봉투를 건넨다. 안 계시면 문고리에 걸어놓는다.
알다시피 쪽방은 비좁고 천장이 낮다. 한 사람이 누우면 들어차는 너비의 방은 교도소를 연상시켰다. 쪽방촌의 열악함은 단순히 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쪽방촌 건물 한 채에는 방 서너개가 있는 1층과 불법 증축한 2층을 합쳐 일고여덟 가구가 산다. 그런데 물이 나오는 수도가 하나뿐이다. 2층 복도 가운데에 있는 수도에서 사람들은 씻고, 음식을 해 먹고, 심지어는 용변을 보기도 한다. 당연히 위생이 나쁘다.
쪽방에도 집주인이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수급을 받아서 살기 때문에 집주인은 거주자들의 통장을 걷어서(!) 직접 관리한다. 매달 수급일에 돈이 들어오면 방세를 통장에서 인출하고 나머지 돈을 용돈 주듯이 쥐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집주인들이 악독한 사채업자 같지만, 실상인즉 그들도 쪽방촌 주민이다. 그들은 보통 건물 1층 철문에 가장 가까운 방에 산다. 집주인의 방은 쪽방 2개를 붙여서 넓고, 방안에 화장실이 있다.
쪽방촌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어떤 건물은 꽤 신식이고 방도 넓다. 노숙인들이 모여 사는 '쉼터'도 여러 종류가 있다. 단연 최고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시설이다. 나는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교회와 목사님들이 없으면 노숙자, 빈민 사업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식거리를 돌릴 때 실수로 한 골목을 빠뜨렸다. 남자 한명이 나와서 험한 말투로, 왜 우리는 그거 안 주냐, 차별하는 것이냐고 윽박질렀다. 하필이면 손에 들고 있는 봉투가 다 떨어지고 난 뒤였다. 나는 너무 무서웠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하면서 도망치듯 골목을 나왔다. 불공평함을 느끼는 감각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코너에 마트가 하나 있었다. 이 동네의 유일한 가게인 만큼 먹거리와 생필품을 팔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일, 마트의 진열대에는 녹색 소주병밖에 없었다. 오직 술만 파는 마트.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범인이자 유일한 오락거리의 진원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녹색 벽면이 놀라우면서도 씁쓸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우리는 밤에 돌았기 때문에 어두컴컴했는데 한 골목은 희미하게 주황색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문 밖에 사람 몇 명이 나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형광빛 가발을 쓴 노인들이었다. 성매매를 하는 골목이었던 것이다. 할머니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들은 쪽방촌 남자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다. 그들 역시 쪽방촌 주민이다. 자기 방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욕망과 권력의 기제는 가난 속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서울시에서 파악하는 것보다 노숙자들의 숫자는 훨씬 크다고 한다. 바오로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다. 봉사 현장과 행정의 괴리는 큰 것 같았다. 쪽방촌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라진 사람들이 정말로 쪽방 생활을 청산하는지, 아니면 고시원으로 혹은 쪽방보다도 월세가 싼 지방으로 흩어져서 통계에 잡히지 않을 뿐인지는 확실치 않다. 요양병원에서 대형 버스를 몰고 와서 쪽방촌 주민들을 우르르 싣고 간다는 말도 들었다. 쪽방촌 주민들은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요양병원은 환자수를 채워 보험급여를 타는 것이다. 숫자 뒤에는 사정이 있었다. 시의 정책이나 봉사활동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냉소주의에 잠식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노숙자/쪽방촌 사람들을 도우려는 의지가 현실과 더 연결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요셉의원 느낀점(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