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조직에 관한 생각 (4309자)
나의 입장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온전히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다. 최초의 폭로자 가현이와는 친분이 있다. 최근의 삶은 운동의 영역과는 괴리가 벌어졌지만 과거에 학생회, 당사자운동단체, 정당에서 활동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언더조직’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한 집단의 구성원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 중에서도, 혹은 나에게도 비선조직은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조심스럽지만, 그렇기에 내 입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비선 조직과 잠재적으로 가깝다는 추측과 더불어, 나는 사회 운동을 지지하고 앞으로도 운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다. 문제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개선 방안도 원론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봤다.
문제점
비선조직의 문제점을 요약하면 이렇다.
- 대표성을 위임받지 않은 사람들이 단체의 활동에 비중있게 개입했다.
- 조직 내부의 강령이 공개 조직의 진보적인 성격과 모순되게 보수적이었다. (혼전순결 등)
- 조직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철인이 되기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활동의 도구로서만 이용했다.
- 조직문화가 강압적이고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으며 조직원간 경쟁을 부추겼다.
- 공개 조직이 표방하는 가치를 진정성 있게 추구한 것이 아니라, 정치공학에 몰두했다.
- 비선 조직에 가해진 공개적/비공개적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내부 논리를 정당화했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비선 조직의 퇴행성을 비난하는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각각의 항목에는 핑계댈 구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1.
평균적인 한국인이 이 사안을 접한다면 가장 문제 되는 항목은 1번일 것이다. 박근혜의 비선 최순실이 국가 운영을 좌지우지했다는, 촛불 시위의 동기와 같은 종류의 문제제기다. 이는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했다는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 효능감을 박탈한다는 문제와 관련한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집단을 좌지우지했고, 나는 사실상 집단에 관여한 바가 없었다는 소외감을 발생시켰다. 이 배신감은 많은 이들에게 운동 사회 전반에 관한 혐오감을 조성했을 것이다.
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권력이 위임된 대표자에게 더 많은 권한과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대표, 대의원, 이사가 되는 것이 비선에 숨어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이득을 줘서 공개 선거에 나가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운동단체, 정당의 열악한 재정 상황과 대중의 반발(국회의원의 월급을 줄여야 한다는 댓글로 요약되는 주장)을 이겨내기 어렵다. 그러나 운동을 위해 개인이 헌신하고 있으며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공개적인 보상이 필요함을 알려나가야 한다.
2.
운동 사회를 혐오하는 사람에게 2번 항목은 좋은 공격 지점을 제공한다. ‘진보는 위선적이다’ 류의 주장이다. 이는 3번 항목과도 관련된다. 공개 조직은 진보적이지만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해서 내부의 강령은 보수적, 비민주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근자를 착취하는 노동자 정당,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퀴어 단체에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논리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지만 이 문제는 조직원의 의지를 꺾는다는 더 큰 문제를 낳는다. 공개 조직에서의 자아와 비선 조직에서의 자아가 충돌하면서 ‘나는 왜 운동을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만약 두 정체성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중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조직의 운영 측면에서도, 개인의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어렵더라도 우선 최소한 비합리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규약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자치 규약을 주기적으로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 자치 규약이 시대에 뒤떨어졌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까.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 혹은 대중 매체들을 접하면서 내가 그들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미래에 다가올 어떤 이상향을 섬기는 운동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걸 하지 않고서는 사회는 물론이고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3.
‘활동가는 전인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나는 품성론을 잘 모르지만 어떤 활동에 앞서 품성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조직사업을 하려면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 집회에 나가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품성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은 활동의 지속가능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포기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대의와 관련이 있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는 너무 사소한 이야기라고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불가분이다. 동료 활동가를 배려하지 않고서는 결코 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 이건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문성의 문제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조직은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조직이다.
조직원을 활동의 도구로서만 이용해서, 허수아비 역할을 정당화하거나, 쓸모없어지면 내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조직원을 도구로서’만’ 이용하는 것이 문제지, 도구로서 이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학생회를 할 때 총학생회장 경환이형은 ‘너는 이러이러한 성격이니까 이 사업을 잘 할 것이고, 나는 이러한 목적으로 널 써먹을거야’라고 말하고는 했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밉살맞은 말투로 했다는 것이고, 이는 사람들이 이경환을 싫어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활동가들이 서로를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그것이 더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학생회장에게 잘 보이는 이유가 뒷날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 정치인 선배로서 이끌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주 바람직한 동기다. 후배 A에게 ㄱ 단체의 조직사업을 시키는 이유는 ㄱ 단체가 우리 단체와 인간적인 교류를 형성하면 이롭고 후배 A는 ㄱ 단체와 관심사가 통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이다. 때로 이러한 동기는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체에 이익이 되도록 합리적으로 인적/물적 수단을 써 먹는 것은 필수적이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 거지,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역시나 배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번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5.
5번은 조금 어렵고 철학적인 문제다. 정치인은 필연적으로 마키아벨리스트인가? 마키아벨리스트가 되어야 하는가? 이에 관한 이론과 담론들이 있다. 만약 여기에 동의한다면, 비선 조직이 공개 조직의 의제를 최저시급으로 정했다가, 장애인 문제로 정했다가, 페미니즘으로 돌리는 행태를 정당화할 수 있다. 핵심 가치, 예컨대 보편적 인권이나 헌법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운동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어느 정도 마키아벨리즘에 동의하는 편이다. 따라서 여기에 대해선 개선방안보다는 고려할 점을 말하자면, 개인의 인격과 단체의 논리가 분열하지 않을 선을 지키면서 흐름을 잘 타야 한다는 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6.
6번 문제는 앞서 말한 문제점들을 포함하면서도, 폐쇄성이라는 핵심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문제다. 어쩌면 이것이 모든 사단의 원흉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 ‘조직 내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할 때 비선 조직은 묵살하고 자기 확신을 강화했는가? 핑계댈 구실이 없는 악습이다. 나는 비선 조직이 종교 집단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선 조직을 연구하려면 종교에 관한 이론을 빌려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한국의 많은 사회현상도 마찬가지다.) 폐쇄적인 종교는 결코 메시아의 기적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 붕괴되지 않는다. 폐쇄적인 종교는 지도자가 사망하거나, 지도 계층이 분열할 때 붕괴된다고 한다.
조금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성질을 비선 조직에 적용한다면, 비선 조직은 사회 현실이 달라졌을 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대표가 조직 내의 힘을 잃었을 때 무너지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비선 조직의 대표가 무너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면 조직이 민주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기필코 조직 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한다면, 침팬지 사회처럼 힘(지식이나 사업 능력)을 겨루는 방식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투표 외의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대표가 무너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없다면 비선 조직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마치며
이상으로 비선 조직의 문제점과 약간의 정당화, 그리고 개선 방안을 이야기해봤다. 이 주제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조직 문화의 피해자가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련의 폭로와 비판이 운동사회 전반에 대한 혐오와 활동가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길한 예감을 고백하자면, 비선 조직은 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의 조직이건 조직원을 배려하고 정말 사회가 진보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