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의사의 요셉의원 느낀점(1)-의학적 고민들

in #kr7 years ago (edited)

요셉의원 느낀점(1)-의학적 고민들

작년 가을부터 올해 초까지 요셉의원에 나갔다. 요셉의원은 영등포 쪽방촌 근처에 위치한 자선의료기관이다. 이곳에서 진료하는 의사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다. 나는 내과 진료일에 간호사 선생님들을 도우면서 가끔씩 전문의 선생님들이 자리를 비울 때 간단한 진료를 봤다. 몇 달간을 돌아보면서 느낀점을 적어본다. 의학적인 고민도 있었고 의학 외적인 고민도 있었다.

내과에 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을 둘 이상 가지고 있다. 이들 질환에 대해 진료 가이드라인은 꽤 상세하게 나와있지만, 거기에도 빈틈이 있어서 자율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상황이 많았다. 여러 약을 먹고 있는데 혈압이 조절되지 않으면 어떤 약부터 얼마나 늘려야하는지? 우리 병원에 없는 약을 다른 병원에서 먹고 있을 때 어떻게 바꿔야 할지? 검색이나 책만으로는 해결이 안 됐다. 이런 부분은 직접 경험을 쌓거나 조언을 구해야만 한다. (따라서 의학은 획일적이지 않고 '명의'가 존재할 수 있다.)

사회력social history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요셉의원에 오는 환자들의 주거,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혈당이 엄청나게 높은 환자라서 인슐린 주사를 꼭 맞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처방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환자 집에 냉장고가 없어서 주사를 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약을 쥐어주며 돌려보내야 했다. 다른 병원에 보내봤자 입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는 환자였는데 새벽과 낮에 두 타임을 나눠서 일하고 집에서는 편히 수면할 수 없는 주거환경이었다. 이 환자의 치료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과연 '정상적인 수면'은 무엇인지. (그 환자의 진료는 내 능력을 벗어났고 내과에서는 수면제 처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시간에 오라고 했다.)

환자들이 소견서나 진단서를 떼는 이유는 보통 아프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는 보험료를 타려고, 일을 쉬려고, 군대를 안 가려고 등이다. 반대로 아프면서 아프지 않다고 증명받길 원하는 환자들도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이른 아침 일을 나가기 전에 일괄적으로 혈압을 측정해서 정상 범위에 있어야만 일할 수 있다. 혈압이 높지만 일을 해야하는 처지에서 소견서를 구하는 일은 필사적이다. 요셉의원에서는 그런 환자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원장 선생님이 소견서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고혈압이 얼마나 사회적인 질병인지 알 수 있었다. 의학적 정의에 따라 수치가 변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환경에 따라 결정적인 판단이 갈리기도 한다.

매달 말이 되면 환자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병원에 나오지 않는다. 왜일까. 수급이 들어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그 돈으로 술을 사 마신다. 술로 칼로리를 때우면 밥을 먹으러 자선기관에 올 필요도 없고 잠시나마 통증도 잊을 수 있다. 술은 그들의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노숙자들 사이에서도 왕따 문제는 심각하다. 아픈 노숙자들은 모임에서 배제된다. 고립되면 질병은 악화되고, 죽음에 가까워진다.)

잘 먹는 것은 건강의 핵심적인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치과가 얼마나 중요한 과인지 실감했다. 치아가 하나도 없는 사람과 몇개라도 남아있는 사람의 삶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다. 치아가 없으면 어떻게 먹고 살까. 죽? 그런 게 있을 리가. 결국 술이다. 열량의 대부분을 술로 때우게 된다. 간이 상하고, 만성질환은 악화되고, 중독과 불면에 시달린다. 정확한 수치를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치아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당뇨나 고혈압 환자들보다 몇 배는 불건강한 것 같았다. 얼굴부터가 심각하게 몰골이었다. 요셉의원에서 치과는 핵심적이고, 내과에 오는 많은 환자들은 치과 진료가 가능한지를 판정받기 위해 의사를 만난다.

요셉의원에서는 종이 차트를 쓴다. 나는 한글로 투박하게 적는 편이었다. 학교에서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모를 때는 1)관찰한 그대로 2)솔직한 언어로 쓰라고 배웠다. 배가 아파서 온 환자의 증상을 abdominal discomfort(복부 불편감)이라고만 기술할 수도 있지만 '꿀렁꿀렁하다'는 환자의 표현을 덧붙이는 식이다. 그게 옳아서이기도 하지만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 더 크다. 증상을 의학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웠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과 실습에서 시키듯이 엄청나게 긴 ROS(계통별 문진) 항목을 체크하는 식이 아니라 실전에서 필요한 수준으로 말이다. 과거에 있었던 '진단학'이라는 과목에서 혹시 이런 걸 배우지는 않았을지,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아쉽다.

피부과에 대해 제대로 못 배우고 졸업했다는 점도 아쉽다. 1차 의료에서는 피부 증상 때문에 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많다. 그런데 피부과는 실습도 선택과목이고 진료의 접근법을 상세히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물론 내가 공부를 안 해서일 확률이 높지만 나같은 학생도 일반의로서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게 하는게 학교의 목표다.

요셉의원 느낀점(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