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 리뷰

in #kr7 years ago (edited)

<비폭력대화>, 마셜 B. 로젠버그, 2011. (261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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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비폭력(nonviolence)은 마하트마 간디의 사상으로 대표되는 비폭력주의에서 기원한다. 비폭력의 핵심은 연민(compassion)이다. 자신과 타인에게 연민의 감정으로 관계 맺고 소통하는 방법이 비폭력대화다. 이는 대화법이면서 동시에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이 책의 직접적인 목적은 비폭력대화 방식으로 인지적 교정을 이뤄내는 것이다.

비폭력대화는 네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1. 관찰: 판단을 섞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관찰한다.
  2. 느낌: 관찰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한다.
  3. 욕구: 그 느낌을 불러 온 근본적인 욕구가 무엇인지 찾는다.
  4. 부탁: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부탁한다.

“너는 요즘 나에게 무관심해. 도대체 왜 그래?”

위의 말을 비폭력대화 방식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네가 이번 주에 전화를 안 했어. (관찰)
그래서 나는 외로워. (느낌)
나는 너와 함께 있으면서 연결된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그래. (욕구)
이틀에 한 번씩은 전화를 해 줬으면 좋겠어. (부탁)”

이러한 형식에 맞춰서 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거나, 상대방에게 공감하거나, 감사 혹은 분노를 표현할 수도 있다. 비폭력대화에 성공한다면 나를 자책하지 않고 갈등 상황에서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며,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처세술이라기보다는 의식을 평화롭게 다듬는 기술에 가깝다.

  • 비폭력대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자기계발서의 전통적 주제인 자존감에 신경을 쓰면서도 ‘책임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비폭력대화의 네 단계 중 세 번째 단계인 ‘욕구’에서는 내 행동의 원인이 상대방이 아니라 나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예컨대 “너가 늦어서 화가 났어”라는 말을 “나는 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화가 났어”라고 고치는 것이다. 단순히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감정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이로울 때가 많다.

  • 비폭력대화는 단순히 생각을 다른 형식으로 치환하는 것이 아니다. 비폭력대화 형식으로 말하려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에 비폭력대화 형식으로 반응할 때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감정은 무엇일까?’, ‘어떤 욕구 때문에 그 감정이 들었을까?’ 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상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공감 능력이 키워진다. 따라서 비폭력대화는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련법이기도 하다.

  •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자기계발서로서 가지는 한계도 뚜렷하다. 책에 열거된 예를 읽다 보면 과연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무엇일지 의문이 든다. 아무런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과연 아름다울까? 그런 세계가 구현된다면 마찰이 없는 컴퓨터 그래픽처럼 오히려 비인간적이지 않을까? 책의 어떤 대목은 끔찍할 정도로 비폭력적이다. 비폭력대화를 배운 한 여자가 자신을 강간하려는 낯선 사람에게도 공감을 시도했다는 일화가 나왔다.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따라했다가는 참사를 당할 것이다.

  • 책임감을 강조하는 태도는 좋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폭력과 부정의는 엄연히 존재하고 때로는 정당한 분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저자는 비폭력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 처신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입장에서 비폭력대화가 근본적 처방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저자가 해결했다는 갈등이 인종차별, 파업, 갱단의 폭력 등으로 심각하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문제해결과정은 구체성이 없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정도의 도입부를 서술하고서, 그리고는 갈등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출처도, 수치도, 프로세스도 없다.

  •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소개된 대화의 내용을 보면 답답한 감정이 생긴다. 저자는 상대방이 뭐라고 대답하건 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이어나간다. 내가 상대방이었다면 속이 터졌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어색한 표현들도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자신만의 방법으로 녹여내야 한다.

  • 많은 예시를 통해 비폭력대화가 문제를 해결했으며, 비폭력대화를 접한 뒤로 사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한다. 막연하고 피상적으로 성과가 묘사되지만 수 없이 반복해서 숫자로 밀어붙인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상찬은 쉽게 독자를 감화시키지만, 쉽게 악성 추종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타인을 대할 때 이 책을 접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후자는 계몽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 말이다.

  • 결국 이 책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자존감 지키기, 갈등을 피해 주장을 전달하기 같은 ‘정통’ 미국식 자기계발서의 정수를 짚는다. 왜 이런 내용이 그렇게도 많은 책에서 강조되는가? 진실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그런 상투적인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느냐다. 저자는 비폭력대화라는 4단계 사고방식을 정리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비폭력대화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전통적인 메시지를 이끌어낸다. 체계적이고,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핵심 문장을 간추리고 사례와 연습문제를 곁들이는 책의 구성 역시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자기계발서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비폭력대화는 책으로 끝나지 않았다. NVC center라는 이름의 기관이 설립되었고, 6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교육, 상담, 갈등 중재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구글에 ‘비폭력대화’를 검색하면 한국 nvc 센터 웹사이트와 pdf 요약문을 포함한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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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하지만 보팅 하고 갑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이 책 너무 좋아요! 저도 추천! 위 사이트 보고 왔는데, 북스팀하시는 분들 볼 수 있어서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