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에 대하여...

in #kr7 years ago

안녕하세요. @leejaesung 입니다.

이 포스팅의 주제는 가상화폐에 대하여입니다.

화폐의 역사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포스팅하는 내용들은 주관적인 내용입니다.
(그냥 쓸데없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조선시대 화폐의 역사

조선의 건국 이념인 성리학에서는 농업은 천하의 근본이 되는 산업이라고 하면서도 상업은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면서 중간에 농간을 부려 이익을 취하는 산업이라 하며 천하게 여겼다.
 
때문에 조정에서는 꾸준히 중농억상(重農抑商)정책을 펴서 시전(市廛)이나 보부상(負褓商)등은 철저히 국가 등록하에 움직여야 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이 화폐를 발행하고자 했던 목적은 화폐대용으로 사용되던 면포나 쌀이 중간 유통 과정에서 손실이 많았기 때문에  손실을 막고자 함이었지, 상업의 유통 발전과는 거리가  것이었다.
 
1401년,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조선시대 최초의 화폐인 '저화(楮貨)' 발행한다.
당시 조선은 원나라의 속국 시절 '교초(交褻)'라는 지폐를 사용하던 경험이 있었 때문이었다.
 
문제는 원나라와 같은 강력한 정부를 아닌 신생국 조선에서 발행했던 것이라 민간에서는 저화를 신뢰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저화의 가치는 폭락했고 사용을 꺼리자, 조정에서는 화폐대용으로 마포사용을 법으로 금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고 저화의 값을 1/20으로 떨어뜨려 보기도 했지만 결국 조정에서는 실행을 중단했다.
 
엽전이 처음 등장한 것도 저화를 보완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는 엽전  자체가 실물 가치를 어느 정도 보증하기 때문에 저화에 비해 신뢰를 얻을  있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1423년, '조선통보(朝鮮通寶)' 유통되기 사작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화폐 사용을 꺼려했다.
 결과 저화가 완전히 사라지고 동전마저 신뢰를 잃게 된다.
조정에서는 조선통보  푼에  1되로 책정한 교환비가 갈수록 떨어져 2 후인 1425년에는  1되를 사려면 3푼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백성들의 원성이 커지자, 세종은 뜻을 굽힐  밖에 없었다.
그리고 1426 면포의 화폐 사용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통보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져서 1427년에는  1되의 가격이 10푼을 넘게 됐다.
 
이쯤되니 돈의 제작가치가 명목가치보다 크게되어 아예 엽전에서 구리를 뽑아 파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조정에서도 만들수록 손해만 막심한 화폐의 발행을 중단할  밖에 없었다.
 
15세기 들어  100 동안 조선은 화폐 유통을 시켜보려고 노력한다.
태조는 '저화'라는 지폐를, 세종은 '조선통보'를, 세조와 성종은 번갈아 가며 저화와 엽전의 유통을 시도해 보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가장  원인은 화폐 사용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불신이었다.
여기에 조정에서 세금을 돈이 아닌 쌀, 면포, 특산물로만 받으려는 모순적인 체제도  몫했다.
그나마 태종  세액 납부를 저화로 일부 가능하게 하고, 녹봉도 저화로 지급하는 등의 노력을  봤으나 애초에 화폐 유통량이 적었던 탓에  효과는 미미했다.
 
중국은 3천년  주나라 시대 때부터 금속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었고, 송나라 때에는 세계 최초로 지폐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원나라 당시 무리한 교초의 남발로 화폐 경제가 크게 교란되기 시작하여 명나라 건국 초기 화폐에 대한 불신감으로 화폐 경제가 크게 붕괴했고 이후  100 가까이 물물교환에 의존하게 된다.
 
한편 일본에서는 8세기 나라시대 때부터 당나라 화폐를 본떠 화폐를 주조했으나 화폐의 수요에 비해 턱없이 적었던 구리 공급의 문제로 10세기까지 마포(삼베)가 화폐 대용으로 주로 사용되다가 11세기 이후로 자국에서 화폐 만드는 것을 중단하고 화폐의 전량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식으로 물량을 조절하였는데, 그렇더라도 일본의 화폐 졍제는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일상에서는 거래는 물론 세금 납부까지 화폐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16세기 들어 조선의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 화폐경제는 커다란 변혁을 맞게된다.
중국에서는 화폐 경제가 다시 정착하고 16세기 후반 일조편법이 시행되면서 은본위 경제가 확립된다.
 
일본의 경우 16세기 초, 조선의 채광기술이 전수되어 은광의 발굴이 활발해졌고 16세기 후반에는 유럽을 통해 '수은아말감법'이라는 획기적인  생산법이 전수된다.
이후 막대한 은을 보유한 일본은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유럽의 신문물을 도입할  있게 되었고 막부는 막대한 재정수입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여전히 복지부동이었다.
이럴  임진왜란이 발발했는데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군사들은 은화를 가지고 물건을 사려고 했지만 은화를  본적이 없던 조선인들에게 물건의 매매란 불가능했다.
 
때문에 굶주린 명나라 군사들은 조선인들을 약탈하기도 하고 조선 정부에 화폐의 유통을 요구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전쟁 중에 화폐 유통이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전쟁을 통해 조선은 은의 유통을 경험할  있었고 전쟁이 끝나자, 조정에서는 본격적으로 화폐 유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17세기 초, 조선은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하게 된다.
대동법은 중간 과정에서 공납가가 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대동미'라는 규정된 쌀만 거둬 그것을 공인에게 주어 왕실과 조정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대동미를 직접 들고 다니면서 물건을 사려하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이쯤 해서 화폐의 제조에 대한 논의가 불거진다.
결국 1625년, 엽전 60만개를 주조하고 한양 육조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집해 음식점을  음식점에 들리고 싶은 사람들은 먼저 호조에서 물품을 돈으로 바꿔 가도록 했다.
 
하지만 문제가 터졌다.
엽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엽전의 부족은 전적으로 구리의 부족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호란이 터져 화폐주조 사업은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하자, 다시 화폐주조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이를 위해 김육(金堉)은 청나라에 가서 청나라  15만문을 사와 평안도 일대에 뿌렸는데 누구도 선뜻 엽전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김육이 제시한 사업은 국고만 축낸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에서는 17세기 중엽까지도 화폐가 유통되지 못한다.
하지만 실패를 거듭하긴 했어도 조선 정부는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화폐를 유통시키고 싶었다.
그리하여 1678년, 숙종은 허적(許積)의 건의를 받아들여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유통시키게 된다.
예전의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엽전의 안전성을 보증 받을  있도록  조치였다.
 
그런 신중함 때문이었을까?
신기하게도 엽전이 유통되기 사작했다.
고려 성종 이후  700년을 노력한 끝에 드디어 조선에서 성공적으로 엽전 유통이 안착하게  것이었다.
 
그렇다면  17세기 후반이었을까?
이무렵 조선에는 이양법이 널리 보급되어 농업 생산성이 급격히 증가하게 됐고, 여기에 담배, 인삼  상품작물의 재배도 크게 증가했다.
 
생산성이 늘어나자, 잉여생산물을 팔려는 이들이 생겨났고 상품작물의 수요가 늘어나자 이들을 사고 팔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됐다.
이때 발행된 상평통보는 휴대하기 좋은 교환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16세기 이후 은을 캐기 시작한 일본이 17세기 후반이 되면 은이 고갈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은을 대체할 물건으로 구리가 등장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당시 조선에는 구리가 은보다 많아지게 된다.
 
상평통보를  도입하던 초기에는 운영 면에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1695년, 100 명이 넘는 아사자가 발생한 을병대기근  정부는 백성 구휼로 초래한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상평통보를 마구 찍어냈는데,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닥쳤고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조정은 뒤늦게나마 이런 폐단을 알아차리고 1698 상평통보의 주조를 전면 금지하게 된다.
그리고 33 동안 통화 발행을  했으니,  사이에 화페의 부족현상은 상당했고 반대로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18세기  그렇게 엽전 가치가 오르다 보니 상평통보를 재산 축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고, 이런 현상은 19세기 초까지 이어지게 되어 화폐를 찍어내도 꽁꽁 챙여놓는 탓에 제대로 유통되는 양이 적었다.
 
18세기 전황 현상에는 재산 축적 용도 외에 일본에서의 구리 수입이 줄어든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주조된 상평통보들은 윤나히 구리 함유량이 적었고 아연 등으로 원가 절검을 노렸기 때문에 엽전이 쉽게 부스러지고 닳았다.
 
하지만 19세기 중엽, 동남아의 구리 광산이 개발되자 국제적으로 구리 값이 내려가기 시작했고 중국과 일본을 통해 다량의 구리가 반입되었기 때문에 다시 조선 정부는 풍부하게 상평통보를 찍어낼  있었고 이후로는  이상 전황현상을 찾아볼  없었다.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무너진 것을 목격한 흥선대원군은 군대를 만들고  왕권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다.
 
국가가 돈이 부족할  메울  있는 방법은 크게  가지가 있는데, 외국에서 차관을 빌려오던지, 화폐를 발행해서 주조차익을 챙기던지 하는 것이다.
 
이때 조선은 당백전(當百錢)이라는 고액의 화폐를 찍었다.
일명 땡전이라 불렸던 당백전의 1개는 당시 주류 화폐였던 상평통보의 100 가치와 동등했다.
 
하지만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당시 조선은 화폐의 명목가치를 실물가치로 인식하던 시절이라 상평통보의 5 실물가치 밖에 안되는 당백전이 100배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당백전은 심한 인플레이션만 초래하고  가치를 이정 받지도 못한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20  고종은 왕실의 사치 등으로 인해 발생한 만성적 적자를 해소하고 개항 자금, 신식군대 창설비 등의 마련을 위해 당오전(當五錢)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또한 실패하게 된다.
당오전은 상평통보의 2~3배의 실물가치를 지녔는데, 백성들은 이것을 5배로 인정하자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당오전은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일부에서만 통용될 뿐이었다.
그리고 10 뒤인 1892년에는 백동화(白銅貨)가 만들어진다.
구멍이 뚫리지 않은 주화였다.
 
하지만 이것도 실패한다.
당시 조선은 당백전, 당오전 등의 발행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일본화폐를  선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화폐는 가치가 안정되어 있었고 휴대하기도 편리하고 가벼웠다.
 
결국 대한제국 정부는 또다시 실패를 인정하고 1905 일본 재정고문이 추진한 화폐정리사업을 통해 유통되었던 백동화를 포함한 모든 조선의 화폐를 회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모든 화폐의 회수조치와 달리 상평통보만은 그대로 유통시켰다.

[출처] 조선시대 화폐의 역사|작성자 woo19wcc
(http://blog.naver.com/moowon0112/221012060153)

라고 좋은글을 인용하여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가상화폐에 비롯하자면..

가장 큰 원인은 화폐 사용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불신이었다.

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상 화폐 또한, 가상화폐 사용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불신으로 시작하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값어치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안정적인 가격과 더 떨어지지 않는 지지선으로 화폐의 가치가 지켜지고 있지요.
이로써, 결국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는 화폐로서 불신은 사라지고,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점은 한가지 있습니다. 화폐의 인플레이션 입니다.
화폐의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를 하락시키게 됩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화폐의 발행량이 많을 수록 인플레이션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 등과 같은 코인은 발행량이 정해져있지만,
정해져 있지 않은 코인들도 있습니다. (이더리움)

저는 이더리움을 가상화폐의 화폐역할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비트코인과 같은)
이더리움은 애초에, 가상화폐를 이용한 기술적인 부분으로 통신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코인입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으로, 투자목적, 개발목적 등으로 가격이 오른 것은 사실이나,
이 코인은 발행량에 제한이 없으며, 매 해마다 채굴되는 양이 있기 때문에 (난이도 때문 어려워지긴 하지만)
결국에는 화폐의 소비보다는 증가율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갖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이더리움은 투자용 목적을 가진 코인, 그리고 dapp 와 같은 앱이나 다른 곳에서 사용하기 편리한 코인이 되는 정도 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비탈릭도 너무 높은 가치를 띄고 있지 않나 이야기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이더리움이 비트코인의 가치를 박살내버린다면, 그것은 가상화폐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 이더리움은 한국인이 주도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면 필요한 것은, 화폐의 소모성입니다.
화폐가 채굴될 수록, 다른 쪽에서는 화폐가 소모 되어야지만 하지만...
화폐 자체의 소모성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비트코인은 과도한 소모라고 이야기를 하긴 합니다만)

그래서 지금 이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난이도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하지만, 이 난이도라 불리우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결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해결방안이라 생각들지 않습니다)

화폐의 투명성과 그 미래가치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는 누구의 돈도 아니므로 절대적으로 시중의 물가를 정확히 반영하고 투명하게 관리되야하지만

사실상 정확한 통계와 개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상화폐만큼은 다릅니다.
투명하고, 공개적이며, 누구나 접근 가능하지요.

즉, 부패같은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요와 공급은 채굴자와 소비자에 의하여
또 한 채굴은 개발자에 의하여, 로드 맵에 의하여, 계획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 화폐는 기존 화폐와는 다른 미래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허나, 비트코인은 결국 총 발행량이 결정되어 있으며, 발행량이 모두 끝나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되는가....

남들은 이야기 합니다. 발행량이 끝나면, 하락하게 될 것이다.

저는 하락하게 될 지 언정, 가상화폐가 끝이 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 이유는 비트코인이 발행이 끝나더라도, 그 가치는 유효할 것이며-
유효하지 않게 되더라도, 다른 코인 (라이트 코인 or 대시 코인) 등으로 그, 가치(자본)는 이동할 것이라
생각 됩니다.

그리고, 발행량이 끝났다고 해서, 가치가 죽는 다는 것은 아직 모르지만.
이번에 진행하는 테조스 코인을 유심히 지켜보면 알 수도 있을 듯 싶습니다.
(물론 PoS)

PoS의 미래가치는 존재할까..?
PoS에 의하면, 많은 코인을 보유할 수록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PoS를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 계층이 PoS 코인의 퍼센트를 많이 보유하게 된다면,
그 어떤 누가 그 PoS코인을 사려고 할까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릴텐데...
라는 걱정을 해봅니다.

걱정이 많은데 가상화폐는 왜 상승세를 탈까?

러시아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최근에 인도도 그렇고,
많은 국가에서 가상화폐에 대해서 호전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리플 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http://m.kban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721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상화폐는 누구나 참여가 가능합니다.
가상화폐는 전 세계 어디서나 구매하고 판매할 수 있습니다.

즉, 화폐를 인터넷으로 사고 팔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해외로 달러를 송금하려면, 연간 몇천 달러만 되어도. 1만이였던가(?)
국세청에 자동 신고 됩니다. 1회 2000달러 이상만 되도 사유를 같이 작성해야 되고요.

왜 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국 내 화폐로 다른 나라 화폐를 사려하기 때문이죠.
자국 화폐의 가치를 지키기 위함(?)

하지만, 가상화폐는 전 세계 어떤 화폐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신고X)
(안 되는 경우도 있음, 인도는 이번에 합법화 했음)

그렇다는건, 전 세계에 있는 화폐들이 가상화폐로 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상화폐의 가치는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버는 사람과 잃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적은 원화를 넣어서, 많은 원화로 나온다는 것은 전 세계 화폐가 굴러가는 가상화폐 시장에서
그만큼 돈을 많이 가져왔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100달러 투자, 그리고 10000달러로 가져왔다는 것은
99900달러를 가상화폐에서 벌어왔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뜻은 화폐 전쟁이라는 의미이지요...

즉, 벌어서 온 사람은 잃은 사람들에게서 돈을 벌어 왔고,
결국 그 돈은 전 세계 화폐에서 벌어왔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기에, 많은 국가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가상 화폐에서 우위를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규제 제한 해제 등)

안 좋은 의미로는 중국과 같이 검은 돈을 세탁하여, 달러화 시키는 그런 쪽으로 될 수도 있지만,
좋은 의미로는 외화를 벌어 올 수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달러 = 금 = 엔화 = 원화 = 비트코인

전 세계적으로 범용된 가상화폐를 더 많이 벌어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가상화폐를 통한 화폐전쟁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에서 가상화폐를 인정하고,
자국 내 화폐를 가상화폐와 시키려는 움직임도 볼 수 있습니다.

안정적인 화폐라고 볼 수는 없는 가상 화폐이지만
이미 안정적을 떠나서 하나의 가치를 형성하게 된 화폐이지 않나 싶습니다.

더욱 더 기술적으로 발전하며, 용이하게 개발되어가는 가상 화폐의 미래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포스팅할때 글 쓰는 재주가 없다보니.. 이러한 저러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정리하지 못하면서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쓰면서, 조금 씩 발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html tag가 아닌, 마크다운으로 간단하게 태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요 ' _')

Sort:  
이 태그를 사용했을때.. 넘어가버리네요 ' _' 줄바꿈 옵션 못주려나요
 ~ _~

pre 태그 말고 다른 걸 찾아봐야겠어요.. 흠흠 . _ .

가상화폐는 늘 불안한 해킹의 대상이라 생각했습니다. 블록체인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니 오히려 그반대란 생각이 드네요. 번성했으면 좋겠습니다.

해킹은 매우 어렵지요.. 하지만, 해킹이 불가능 한것은 아닙니다.
https://steemit.com/kr/@leejaesung/minor-coin-caution-xby-coin

51% 공격의 사례가 존재합니다. 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정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주제로 글 작성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