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과 인랑 (18.10.21)

in #kr6 years ago

한동안 스팀잇에 대한 포스팅과 무료 영화 선물에 대한 포스팅을 제외하면 다른 포스팅은 거의 그만둔 상태로 방치 중입니다.

비록 이것이 제 개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원인을 찾아가면 결국 제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쓰려다 동정 표를 구하는 것 같아 그냥 본론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백종원 신드롬을 바라보는 소감'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그중 한 사람은 백종원 대표일 것입니다.
이미 성공한 외식 사업가와 인기 프로그램의 출연자라는 영역을 넘어서 외식 업계에선 그야말로 그의 손을 거치기만 해도 성공이 보장되는 상황이죠.

그가 외식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출연 중인 방송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방송에 나오면 해당 상권은 SNS에서 핫한 키워드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정 감사에까지 불려가서 위기의 자영업 시장을 위한 조언까지 한 상태죠.

국감장에서의 백 대표 발언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세상의 시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백종원 브랜드와 곱창 대란'

국감장에 선 백종원 "도태될 자영업자는 도태돼야"
'국정감사 출석' 백종원 "'골목식당' 출연 이유? 창업하지 말라는 취지"

한국에서 이미 '백종원'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입니다.
단순히 그가 자기 이름을 딴 외식업체의 대표여서가 아니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의미에서 본 것입니다.

저 같이 실패한 자영업자보다는 성공을 맛본 백 대표의 말이 백 번 옳겠죠.
하지만 저 발언들을 보고 있자니 서글프기도 하고 화도 납니다.

이미 제 예전 포스팅에서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자영업이라는 전쟁에 뛰어든 사람들이 전부 허황된 꿈과 욕망에 이끌린 것은 아닙니다.
자영업을 우습게 봤다?
물론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정보가 부족하고 준비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이렇게 다급하게 뛰어든 것이 '남들이 고기 다 잡아갈까 봐 조바심이 나서'가 아닙니다.

당장 이 일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백 대표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성공한 자영업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그조차 실패를 그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창업하지 말라 , 능력 없는 사람은 도태되어라라면서 왜 방송은 하는 겁니까?

저는 저 국정 감사를 보면서 한 편의 정치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만든 고용 불안과 실업 문제로 인해 발생한 자영업 대란을 그저 개인의 노력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 위한 것이죠.
그러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얼마든지 양심의 가책을 덜 수 있습니다.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해서 낭떠러지까지 몰린 사람들에게 '그건 너의 잘못이야'라고 말해야 '우리'라는 집단에게 면죄부가 주어집니다.

대중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서 맛있게 먹방 한 번 했다고 온 나라의 곱창이 동이 나는 현상이 과연 제대로 된 시장 문화라고 봐야 할까요?

SNS 없이는 못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소비란 '내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남에게 나라는 브랜드를 광고하는 행위'입니다.
결국 남들만큼 , 남들보다 더 나은 소비를 해야 한다는 거죠.
이것은 바로 소비라는 문화조차도 집단화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바로 자영업 대란의 진짜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게 대중의 잘못이라고 지적하면 왜라고 화를 내죠.
모든 자영업자가 다 돈을 잘 벌어야 된다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약육강식 , 그러면 복지는 왜 하는가?'

경쟁력이 없는 기업 혹은 자영업자는 모두 도태되어야 한다

그럼 복지는 왜 하는 걸까요?
같은 논리면 취업을 못 하는 건 순전히 내 스펙이 다른 경쟁자에 비해서 뒤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솔로인 것은 이성으로서의 내 매력이 부족할 뿐이죠.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 하고 연애를 못 하고 결혼을 못 하고 아이를 못 낳고
그 모든 문제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 탓일 뿐 사회 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늙어서 의지할 곳 없는 건 젊어서 준비 못 한 개인 문제이지 그걸 왜 나라가 책임집니까?

지금 이게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영업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곳에 취업해서 정년까지 다니고 퇴직하자마자 연금 받으며 걱정 없이 사는 인생을 못 사는 것이 개인의 노력 문제라는 것이죠.

골목상권으로 보죠.

백 대표의 손을 거친 곳은 엄청난 대박을 맛보았습니다.
그럼 주변의 다른 상권은 어떻게 될까요?
방송에서 새로운 신규 수요를 창출한 것이 아닌 이상 기존 상권에서 수요가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간단하게는 전국의 모든 상권이 백 대표의 손을 거치면 어떻게 될까요?
상향 평준화가 되어서 모든 식당들의 퀄리티가 백 대표가 칭찬할 수준이 되면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사는 세상이 올까요?

답은 뻔하지 않습니까?

심각한 불황의 이면에는 소비의 집단화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유명하고 잘 나가는 브랜드만 찾으니 '이름 빨'이 없거나 '입소문'을 타지 못하면 성공을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요즘은 이것이 더 심화되었죠.
오픈마켓 , 가격비교 서비스 , 소셜커머스 , 배달대행 , 여기에 이제는 먹방 같은 SNS가 더해진 것일 뿐입니다.
과거에는 블로그가 수단이었지만 블로그의 영향력이 지금과 같진 않았죠.
이제 유튜브나 방송에서 이슈가 되지 못하면 뒤처지고 맙니다.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지만 인터넷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시장에 가져왔습니다.

이것을 그저 개인의 노력 문제로 치부해 버리면 복지도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부터 개인이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복지입니다.
지금은 시장에도 이러한 '복지'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백종원과 황교익'

대한민국 사람들이 얼마나 집단화되어 있고 한 쪽에 쏠려 있는지는 백종원 VS 황교익이라는 대립 관계로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백종원 대표에 대한 황교익 씨의 지적이 타당하다거나 논리적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백종원 대표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집단 여론으로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최근 논란이 된 쟁점 중 하나가 바로 백종원 대표가 선호하는 단 맛입니다.
대중의 취향이 그쪽에 가깝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정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교적 방송 초기에는 이 단 맛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습니다.
와이프가 백종원 대표의 레시피를 보고 배우더니 집 밥맛이 죄다 식당 밥맛같이 변해 버렸다는 소리도 농담으로 할 수 있었죠.
만약 지금 같은 분위기였다면 네가 맛을 아냐면서 '맛알못'으로 돌을 맞았을 겁니다.

이러한 집단화는 정권이 거듭될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손쉽게 표를 얻는 방법으로 집단 VS 집단이라는 대립구도를 내세우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 현상이 단순히 정치를 넘어서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너무 깊숙이 파고 들어서 개인이라는 가치를 억압하는 데 있습니다.

지난여름 한국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인랑'에 대한 한일 간의 온도 차이에 고스란히 이 문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인랑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상평'

한국에서는 완전히 망한 것도 모자라 온갖 욕은 다 들었던 '인랑'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게 서비스 중입니다.
넷플릭스 버전은 극장 상영 본과는 다른 편집을 거쳤다고 하는데 상영시간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내용이 크게 차이가 나는 수준은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여름 '인랑'에 대한 포스팅을 연재하다가 중단되었는데 당시에도 밝혔지만 단순히 흥행 실패와 혹독한 비평이 영화 자체만의 문제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번역) 넷플릭스 '인랑' 공개, 일본인 관객 반응

"ただ、昨今韓国映画でトレンドになってる民主化前後映画の文脈でケルベロスサーガを取り込んでいたのは素直になるほど!と思ったし

「1987」で元気に反政府デモをやってたカン・ドンウォンが特機隊員なのも面白かった。どちらかというと韓国人狼は「タクシー運転手」とかに近い映画だと思う

ほんとこれは押井守の呪いだと思うんだけど、韓国人狼には明らかに「犬」要素が足りてない気がするんだよな……

上位の存在である組織、そしてその下で餌を投げられては芸をするしかない犬。その隙間に挟まってしまった赤頭巾と人の皮を被った獣……

人狼はそういう話だった気がするんだけど、韓国人狼は出てくる人たちがちゃんと全員人間だったんですよね。だからより健全なんだけど、こう、難しいですよね

다만, 최근 한국영화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민주화 전후 영화의 문맥으로 케르베로스 사가를 넣고 있던 것은 솔직히 과연! 이라고 생각했고,

"1987"에서 건전하게 반정부 데모를 하고 있었던 강동원이 특기대원인 것도 재미있었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한국 인랑은 '택시운전사'에 비슷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정말 이건 오시이 마모루의 저주라고 생각하지만, 한국 인랑에서는 확실히 "개"에 대한 요소는 부족한 느낌이네...…

위에 존재하는 조직, 그리고 그 아래에서 먹이를 받아먹고 재주를 부릴 수 밖에 없는 개. 그 틈에 끼어버린 붉은두건과 사람의 가죽을 쓴 짐승...…

인랑(※원작)은 그런 이야기의 느낌이었는데, 한국 인랑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확실히 모두 인간이었네요. 그래서 보다 건전하긴 하지만, 흠, 어렵군요."


영화에 대한 평 중에서 제 의견과 가장 가까운 평입니다.
원작과 한국판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개'에서 '인간' , 즉 개인으로 시선이 바뀐 부분입니다.
그 부분이 바로 엔딩이 달라진 이유이자 김지운 감독님이 이 영화를 통해 한국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정작 일본인들은 다 알아들은 것 같은 분위기인데 왜 유독 한국에서는 엄격하고 혹독한 평을 들었을까요?
막상 일본에서 호의적인 반응이 쏟아지니 지금 한국에선 일본 애들이 구린 자기들 영화만 보다가 이걸 보니 만족을 하는구나라는 자위나 하고 있군요.

한국 관객들 말대로 일본 영화 수준이 낮아진 건 일본 영화 관객 수준이 문제라면 그 '수준 낮은' 관객도 다 이해하는 영화를 왜 '수준 높은' 한국 관객들은 이해를 못 하는 걸까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일본 관객 중 그 누구도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친일파' , '난민충' , '살인자의 누나'로 보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일본 관객들이 우리 사회의 이슈에 대해서까지 다 알고 이해하기는 힘들죠.
하지만 주연 배우들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시각이 과연 얼마나 합리적인지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집단의 문제로 돌려 버리기에 거기에는 개인이 존재할 자리 따위는 없습니다.
이전 정권에 반대해서 인권을 이야기하던 배우가 국민적 스타에서 정치 이슈 발언 하나로 '대역죄인'이 되는 나라입니다.
나라는 사람과는 상관없이 내 조상이 누구였는지에 따라 평가받습니다.
내 가족 중에 범죄자라도 있으면 공인으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물론 저 내용들은 다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한 개인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옳은 사회일까요?

원작은 개인이 조직에 희생당하는 일본 사회를 반영한 작품입니다.
긴 세월이 지나 리메이크 되면서 김지운 감독님은 일본처럼 집단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 개인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 집단에서 벗어나는 엔딩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원작과 '다른' 영화이지 , '틀린'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남과 다름을 선택하는 것은 곧 틀린 인생을 의미합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죠.
고작 영화 하나 재미있다고 말한 것뿐인데 온갖 쌍욕은 각오해야 하는 게 한국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은 스스로 '틀리다'라고 인정할 때까지 공격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집단화되어 있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영화가 정작 한국에서는 집단화로 인해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김지운 감독님이 참 사회를 보는 시각이 정확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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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공감합니다 ...

  • 특히, 먹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회는 절대로 바람직 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을 먹었느냐 보다는 왜 먹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비싼 음식을 즐겼다는 것도 나름대로는 중요하겠지만, 어떤 가치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밥을 먹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없는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깊이 공감합니다.
요즘은 어딜가나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는게 유행인데 정작 누구와 어떤 추억을 쌓는지는 뒷전인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남은 저녁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하시는 일을 뜻하는대로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간 우리나라의 문화가 집단을 강조하고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집단은 옳고 일탈하는 개인은 그르다고 배워왔잖아요..실패는 집단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 개인의 노력부족으로 치부하고..앞으로 달라져야 할텐데.. 어렵네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속한 집단만 바뀌었을 뿐 인식은 그대로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