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나봐

in #kr6 years ago
  1. 가을이 오긴 오나보다. 하늘색 스카프를 맨 아가씨와 긴 팔 셔츠를 잘 다려입은 친구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걸을 때마다 스치는 손끝이 곧 맞닿겠다고 내일의 날씨는 맑음 예보가 떴다.

  2. 속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으면 술버릇이 고약해지더라. 잠꼬대가, 혼잣말이, 비겁한 생각이, 비열한 변명이, 비굴한 회피가, 부정한 상상이 술 힘을 빌어 불쑥 나오더라. 그러고 나면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자신이라고, 참 보잘 것 없고 허약한 게 자아라는 거라고 인정하게 되더라. 전생이 기억에 남지 않고 다음 생에 나더라도 이생이 떠오르지 않게 한 건 참 현명한 신의 판단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3. 그래도 술안주는 잘 얻어먹고 다녔으니 몸은 챙긴 셈이다. 이제 정신만 챙기면 된다고 술이 술이 마술이 주문을 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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