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두 얼굴과 마주치다

in #kr7 years ago

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다녀왔다. 이 짧은 여행은 내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중국은 어떤 나라이며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고민의 출발 지점을 새겨놓기 위해 글을 쓴다.

#1.
2017년 9월 베이징의 한 거리. 과일을 파는 노점상이 손님에게 뭔가가 적힌 종이를 보여준다. 종이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사각형이 미로처럼 배열된 QR코드가 있다. 과일 한 봉지를 산 손님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촬영해 값을 치른다. 대형마트나 도심의 상점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지의 자판기와 뒷골목의 노점상까지, 돈을 내야하는 모든 상황에 중국 상인들은 QR코드를 들이민다. 현금 없이는 살아도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도시. 우리가 미처 가보지 못한 미래가 베이징에 도래했다.

#2.
44만 제곱미터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천안문 광장. 마오의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부터 그의 시신이 누워있는 기념당까지, 광장에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수십 개의 가로등이 솟아있다. 그런데 가로등에 달려 있는 건 전구만이 아니다. 가로등 기둥마다 7~8개의 폐쇄회로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카메라는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며 광장 구석구석을 살핀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들이 모인 곳엔 어김없이 공안이 접근해 무슨 목적으로 모였는지를 묻는다. 투표도, 시위도 없는 도시. 베이징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주장했던 ‘역사의 종언’은 아직 오지 않았다.

5박 6일의 짧은 일정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자금성의 화려함도, 만리장성의 웅장함도 아닌 위의 두 가지 장면이었다. 이른바 ‘인터넷 플러스’는 13억 인구가 떠받치는 튼튼한 소비시장을 바탕으로 빠르게 인민의 삶에 스며들고 있다. 위챗(WeChat, 微信), 알리바바(Alibaba, 阿里巴巴), 샤오미(Xiaomi, 小米) 같은 이름들은 대륙을 벗어나 세계 투자자와 소비자들에게도 친숙해졌다. 주문을 받아 생산만 했던 공장이 어느덧 혁신의 최전선에 나선 모양새다.

2014년 나스닥에 상장됐고 중국 내 인터넷 쇼핑몰 시장의 56.3%를 차지하고 있는 징동(京东, JD.COM) 역시 물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있는 335개 창고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 고객이 주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을 미리 입고시킨다. 창고 내 상품 배치는 물론 10만 명에 이르는 배송원의 이동경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해 중국 어디든 하루 만에 배송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드론을 이용한 배송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중국의 미디어 업계에도 인터넷 플러스의 파도가 들이쳤다. 중국의 3대 매체인 경제일보(經濟日報) 본사 1층엔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여기엔 경제일보의 최신 기사와 함께 여러 소셜미디어의 주요 이슈, 검색 데이터, 기사의 인용 횟수 등이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올해 초 40억 원을 들여 구축한 시스템이다. 기사의 유통 역시 지면에만 의존하지 않고 위챗과 웨이보(微博, Microblog), 그리고 자체 개발 앱 등 모두 30여 개의 플랫폼을 이용한다. 신문과 방송, 통신의 경계가 무너지고 오직 손바닥 크기의 모바일에서 경쟁하는 미디어 시장의 변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며 한국의 미디어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양국의 미디어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거기까지였다.

“언론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정칭둥(鄭慶東) 경제일보 부총편집인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어떤 자유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며 “저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13억 인구의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또 “제약 없는 자유는 재앙”이며 “경제발전 없는 자유도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언론 자유의 범위는 공산당의 지도를 거스르지 않는 곳까지라는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한 말인지, 어딘가에 함께 앉아있었을지 모를 공산당원의 감시를 염두에 둔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대다수 중국인들은 이 체제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아니, 제기할 수 없다)

지난 2013년 시진핑은 당 주요 간부들에게 7가지 위험 요소를 주의하라는 경고를 담은 9호 문건을 전달했다. 시진핑은 이 문건에서 주의해야 할 체제 전복 기류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인권 등 보편적 가치, 언론 자유, 시민 사회, 시민의 권리, 당의 역사적 과오, 엘리트 자산가, 사법 독립. 정 부총편집인의 말대로 ‘13억 인구의 통합’을 위해서라면 시민 사회도, 열린 미디어도, 직접 선거도,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도 중국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천안문 광장의 CCTV 카메라는 단지 광장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혁신 기업과 거대 소비시장을 지닌 자본주의 중국과 통제와 감시가 일상화한 공산당 독재 전체주의 중국은 그렇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의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경제는 앞으로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는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위챗이라는, 타오바오라는, JD 닷컴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고는 중국 시장에 상륙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차이나 머니를 앞세운 중국 자본주의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생존마저 위태로워질 것이다. 동시에 중국 공산당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산업 전략은 물론 제대로 된 외교/통일 전략도 수립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촛불집회로 최고 권력자를 탄핵시킨 나라와 국경을 맞대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일본은 백년의 원수지만 중국은 천년의 원수”라고 욕을 해도 중국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 남한보다는 왕조국가 북한의 편에 설 것이다.

작은 도시국가라 해도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하물며 13억 인구의 대국을 깊이 알겠다고 한다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쳐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으로 뒤늦게나마 중국의 두 얼굴과 마주쳤다. 사드 문제를 계기로 한중관계가 전환기를 맞이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 야누스적인 얼굴은 더욱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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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란 나라가 대국이면서도,
그렇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거 보면,
잘 통제만 된다면 절제된 공산주의가 국가개발에는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

저도 통제가 가져다주는 장점이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공산주의가 과연 절제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네요. 어쨌든 지금까지의 중국 공산당은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북의 김정은이 독재를 할지언정 중국을 배워 그들의 인민이 배를 굶는 일만큼은 해결해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봅니다.

단지 인생은 짧고 체제는 길다는 게 문제겠죠 ㅎㅎ

유기적인 대처와 높은 청렴성만 갖추어진다면 국가의 체제가 중요할까요? 우리도 왕정제로 돌아가더라도 세종이나 영정조가 재림한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편협적으로만 중국을 보려고 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리고
변화되어가는 걸 통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심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잘 보고 가요

중국의 변화를 읽어야 하는건 우리 세대 한국인들에겐 숙명이나 다름없죠. 감사합니다

중국은 아직도 성장하는 나라라서 무섭습니다.
인적자원이 이렇게나 중요한건데 우리나라는 산아제한부터 왜이리 선진국인척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인구를 바탕으로 모두가 뛰어드는 시장 하지만 중앙통제가 되는 시장이지요...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

거대한 노동력과 시장을 가졌다는게...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장점이더군요. 어쨌든 중국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의 시장이다..라고 믿고 전략을 짜야겠죠..^^?

1%시장만 점유해도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아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