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부두 (Le Quai Des Brumes, Port Of Shadows)

in #kr6 years ago

안개 낀 부두 (Le Quai Des Brumes)

감독 : 마르셀 까르네
출연 : 장 가방, 미켈 시몬
개봉 : 프랑스 1938

안개 낀 부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명배우 ‘장 가방(Jean Gabin)’의 대표작이며, 시적 리얼리즘의 대표적 감독인 ‘마르셀 카르네(Marcel Carné)’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제목처럼 안개 속에서 시작한다. 어두운 밤 자욱한 안개를 밝히는 낡은 트럭, 그 속에는 삐두룸하게 군모를 쓴 주인공 장이 피곤한 얼굴로 앉아 있다. 트럭 운전기사와 장은 초면처럼 보이는데, 그 속에는 얕은 어색함과 타인에 대한 낯선 친숙함이 공존하고 있다.
앞은 보이지 않고, 피곤하고 더럽고, 초면이지만 친숙하기도 한 그 것은 미묘한 어색함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의 특성은 트럭 내에서의 공간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부랑자, 건달, 가난한 화가, 술주정뱅이, 화려한 과거조차 희미한 사람들. 그들은 모두 같은 공간을 점유하지만 언제나 초면일 뿐이다. 그들 사이에는 그 어떠한 미래도, 기약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은 인간,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어떠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돕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알 수 없는 친숙함을 느낀다. 그 상대에게 투영된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적 리얼리즘이란 이러한 친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영화가 아닐까? 공감할 수 있는 처지들, 나와 다를 바 없는 인생. 그렇지만 그 속에는 나와 다른 격렬함과 환상이 내포되어 있다. 다른 시적 리얼리즘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안개 낀 부두」는 서민들, 흔히 막장이라 부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분위기는 그리 무겁지 않다. 인물들은 곤궁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지만 영화는 그들의 곤궁하고 버거운 삶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저 그 삶이라는 것을 아름답게 미화시킬 뿐이다. 마치 더러운 부둣가를 안개로 가리듯이, 회색빛 도회지를 순백의 눈송이로 가리듯이 말이다.

그것은 인물들이 힘겨운 삶에도 불구하고 삶을 모욕하거나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속물적이기보다는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그들은 언제나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자유를 갈망하며, 사랑에 함몰된다. 부랑자 청년이 자신의 꿈은 깨끗하고 새하얀 이불보에서 잠을 자는 것을 꿈꾸듯이 그들의 꿈은 소박하지만 결코 추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은 미화된다. 아무리 낡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더라고, 막막한 인생들이라도 그들의 삶은 결코 더럽지도 천박하지도 않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지는 것은 바로 시와 같은 대사들이다. 등장인물들은 긴 대사를 내뱉는데 그것은 마치 일상적이 대화를 한다는 것 보다는 한 편의 시를 낭송하는 듯하다. 그들이 긴 대사를 내뱉을 때면 언제나 시선은 허공으로 향하고 읊조리듯이 대사를 말한다. 그것은 마치 인물들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게 한다. 거기다 그들의 대사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대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흠뻑 취하기 만든다. 그럴 때면 영화 속 상황은 단지 아름다운 대사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와 같아 보이기도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가 얼마나 대사에 얼마나 공들였는지를 알 수 있고,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의 힘이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영화의 재미를 가중시키고 아름답게 꾸미는 요소는 많은데 먼저 다소 밋밋한 이야기 구성에 비해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꼽을 수 있다. 주연을 비롯하여 그 속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며 매력을 뽐내는데, 필자가 느끼기에 그것은 그림을 좋아하는 선장과 같은 엑스트라 급의 인물들조차 매력적이었고 살아있다고 느꼈다. 시나리오의 내용은 아주 전형적이고 별다를 것 없는 진부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있고 또 극 속에서 자신의 삶을 내비치는 덕분에 영화는 다채로워질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언제나 하얀 이불보를 잠을 자고 싶은 꿈을 가진 주정뱅이는 사실 마음만 먹으면 잘 능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 놈에 술 때문에 호텔 앞에서 술로 방 값을 탕진해버린다거나, 좀도둑질을 일하러간다며 자부심에 가득 차 말하는 것 등은 주정뱅이를 단순히 인생의 낙오자로 낙인찍기 보다는 그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게 만든다. 그 외에도 언제나 우수에 차서 결국 자살해버리는 화가, 언제나 파나마에 대한 자랑을 꺼내놓는 늙은이, 잔인한 마피아인 척하지만 결국 동네 양아치 수준인 루시안 등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여 단순히 비난의 화살을 날릴 수 없게 만든다.

「안개 낀 부두」에 나오는 인물들의 연기나 상황은 어설프지만 또 그것이 그 나름의 매력이 된 듯하다. 어설픈 상황과 연기는 탐미적인 대사와 대비되어 영화를 전체적으로 해학적이고 가볍게 만든다. 그것이 인물들의 처해있는 상황을 단순히 비참하고 참람하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미화시킨다. 또한 그들의 어설픈 연기는 그들의 어설픈 삶과도 같이 비유되어 우리네의 아이러니하고 어설픈 일상을 드러내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우연적이고 어설프며 약간 해학적인 삶은 우리에게 그저 그 자체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을 드러낸다. 영화의 마지막에 하얀 이불보 속에서 잠드는 주정뱅이와 돌아가는 강아지의 모습은 그러한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실재에 대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리얼리즘으로서 시적 리얼리즘은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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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도 좋아합니다. 장 가방 출연한 지하실의 멜로디나 페페 르 모코도 좋아하죠.

지하실의 멜로디는 못 보았지만, 망향 또한 저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시적 리얼리즘 작품들은 그 특유의 문학적 매력이 좋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