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2018)>
0. 가는 길 심심한데 네 이야기나 한번 듣지
'사후세계라는 건 존재하는가?'
기원전 이집트왕조 시대 때부터 이어져오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질문이다.
아쉽게도 과학적으로도, 미신적으로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답할 수가 없다.
이유야 간단하지 않은가. "설령 있다고 한들, 가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짓고 넘어가자.
영화 「코코」(이하 「코코」)는 이 '사후세계'를 다루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간다" 같은 무시무시한 얘기보다는, 멕시코의 고유 명절 '죽은 자의 날'을 소재로 하여 죽은 사람들이 이승으로 내려와 후손들이 차려놓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보내는 날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엄숙하고 경건하기보다는 '핼러윈'에 가까운 분위기에서 펼쳐진다.
따지고 보면 '핼러윈'도 10월 말로 기간이 겹칠 뿐더러, 기원도 비슷하긴 하지만.
<죽은 뒤에 기다리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웹툰 「죽음에 관하여」 中)>
1. 잡아라. 기회가 있을 때
「코코」의 초반부는 '기회를 잡아라'를 유독 강조한다.
가족 중 한 명이 음악에 미쳐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음악 자체를 혐오하게 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미구엘(국내 자막 기준. 실제로 들어보면 '미겔'이다)은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소년이다.
세계적인 뮤지션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국내 자막 기준. 실제 발음으로는 '에르네스또 데 라 끄루쓰' 정도 된다)를 동경하고, 그의 비디오를 몰래 보면서 직접 어설프게나마 만든 기타로 델라 쿠르즈의 노래를 연주하고 따라 부른다.
그리고 '죽은 자의 날'에 광장에서 자신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뽐내 뮤지션으로서의 재능을 모두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물론 가족들이 이걸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고, 결국 수제 기타는 미구엘이 보는 앞에서 박살이 나고 만다.
어렸을 때 만화책 같은 걸 부모님께서 손수 북북 찢어주셨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움찔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미 이런 장면을 작년 이맘때에 본 디즈니의 「모아나」를 통해 익숙해졌기 때문에 딱히 주인공이 가엾거나 불쌍해보이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손주의 수제 기타를 직접 땅바닥에 내리치는 장면을 보며, 이미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쟤 마지막에 뮤지션 되겠네."
픽사도 그렇고 디즈니도 그렇고 "현실은 시궁창이야" 같은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어른들에게는 아직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를 심어주는 게 그들의 역할이니까.
근데 할머니. 잘 생각해 보세요.
손주가 기타를 직접 수제로 만들고 그걸 직접 치기까지 하는데, 이거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서 사업 상품으로 잘만 굴리면 대박날 거 같지 않아요?
가업 직종을 바꾸셔야 할 것 같아요. 신발 가게에서 기타 가게로.
1-2. 기회를 잡으랬지 사람을 잡으라고는 안 했다
나 쿠죠 죠타로는…… 흔히 말하는 불량배의 딱지를 달고 있지. (중략) 하지만 이런 나 같은 놈에게도, 구역질 나는 '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악'이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약자를 이용하고 짓밟는 너같은 놈을 두고 하는 말이다!!
─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 中
「코코」는 과거의 작품 「업(UP)」에서도 다루었던 주제, 즉 '자신의 꿈을 이루겠답시고 다른 사람을 짓밟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피력한다.
미구엘이 그렇게 동경해 마지않던 델라 쿠르즈는, 자신의 동업 파트너를 독살하고 모든 음악적 업적을 가로채버린 비열한 악당이었던 것이다.
이미 현실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지 않던가. 토x스 에xx이었던가?
픽사는 '동경하던 사람이 실은 시커먼 뒷면을 감추고 있던 악당'이라는 소재를 다시 한 번 사용했다.
어찌 보면 예전 작품에 대한 오마주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혹시, 지금 주위에도 자기 자신의 꿈을 위해 남을 망설임 없이 짓밟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가?
그게 자신이라면 오늘부터라도 당장 고치자.
2. 사람이 '완전히 죽는' 순간이란?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 깊숙히 총알이 박혔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 수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 만화 「원피스」 中
일본 만화 「원피스」 (이하 「원피스」)에서 명대사를 꼽으라고 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장면이 있다.
실력은 돌팔이여도 사람을 치료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진심인 의사 히루루크가, 모든 의료 서비스를 장악하고 포악한 통치를 일삼는 와포루를 향해 내지르는 대사다.
"나의 뜻을 이어갈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잊히지 않고 계속 살아있을 것이며, 내 뜻 또한 이루어지리라"라는 의미를 담은 이 대사는 「원피스」에서도 두고두고 등장하는, 만화의 메인 스토리를 관통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코코」 역시 '죽어서 잊힌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미구엘이 델라 쿠르즈의 이름을 들먹이며 "이 사람이 내 고조부였어요!"라고 소리를 꽥꽥 지르는데, 가족들이 이에 대해 아무도 반박을 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정작 후반부에 밝혀진 바로는, 고조부는 델라 쿠르즈가 아니라 같이 다니던 망자 '헥터(국내 자막 기준. 실제로 들어보면 '엑또르'에 가깝다)'였음에도 말이다.
누구 하나 "그 사람은 네 고조부가 아니야!"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없다.
미구엘의 가족들은 자기 조상인 헥터를 아예 이름조차도 불러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다른 말로 기수열외.
호적에서 파 버린 셈이다.
가족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벌이다.
지금 떠나가지만
기억해줘
내 사랑 변하지 않아
우린 함께 한다는 걸 언제까지나
널 다시 안을 때까지
기억해줘
눈을 감고 이 음악을 들어봐
우리 사랑을 기억해줘
─ 「코코」 OST <Remember Me(기억해줘) 윤종신 ver.> 中
아이러니하게도 헥터가 남긴 노래의 제목은 'Remember Me(기억해줘)'다.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항상 너를 사랑할 테니 너도 나를 기억해줘'라는 가사를 품고 있는 이 노래가 작중에서 인기곡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원피스」가 "내가 죽어도 내 뜻을 이어갈 사람은 존재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설파했다면, 「코코」는 "내가 죽더라도 부디 나를 잊지 말아줘요"라는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원피스」는 이성에, 「코코」는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고나 할까.
유명인도, 위인도 아니라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코코」는 그 대상으로 '그 사람의 가족'을 지목하고 있다.
3. 마무리 - 진정한 '영생'을 위해
「코코」에서는 죽어서도 영혼으로 남아 계속 사후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델라 크루즈 또한 유명인사로서 잊히지 않으며 계속 살아가고 있었고, 엔딩 부분에선 헥터 역시 잊히지 않고 계속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또 사후세계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물론 매국노 이완용마냥 악행을 저질러 계속 기억되어 영생을 하는 자도 있기는 하겠다만, 아마 죽은 뒤에도 좋은 꼴은 못 보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계속 기억되어 죽어서도 영생하는 것.
1992년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도 다루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나는 계속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p.s
작중 등장하는 개 이름 '단테'는, 저승을 여행하는 이야기 「신곡」을 작곡한 단테 알리기에리에서 따 왔다고 한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빨간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하는데, 마침 미구엘도 빨간 후드티를 입고 저승을 여행한다.
아마 「신곡」이 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짱짱맨 태그에 답이 늦어지고 있네요^^
즐거운 스티밋!
감사합니다 :-)
죽는다와 잊힌다.
무섭지만 언젠가 맞이해야할 일이기에 두렵지 않은 주제입니다.
역시 원피스는 대작입니다ㅋㅋㅋ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Lovely panting
thanks 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