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13)를 시작으로 <어느 가족>(18)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작들만 보고, 줄곧 그를 설명적인 감독이라 생각해왔다. 또 어떤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영화인지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점이 조금은 유치하다고 생각해왔다. 영화는 소설과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역시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대사에 메시지를 꾹꾹 눌러담는 그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올 여름 <어느 가족> 개봉 때 잠자고 있던 수많은 국내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팬들이 일어나 붐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국내에서 올해 개봉한 예술 영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안다. 주변에서도 이 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관람 후 찬사를 쏟아내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관람 후 아쉽다는 평을 내는 이도 많이 보였지만, 어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시기였다.
(출처: 영화 <어느 가족>)
그래서 문득 그의 세계를 더 탐구해보고 싶어졌다. (탐구해본 적이 없다고도 할 수 있으니 ‘더’라는 부사를 빼야 할지도.) 내가 몰랐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매력이 있을까. 있다면 무얼까. 답을 찾기 위해 보지 않았던 그의 과거 작품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영화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중에 가장 좋다고 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11)부터.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고 영화가 너무 좋아서 곧바로 겸손 모드에 들어갔다. 설명적이지도 유치하지도 않았다. 만든 사람을 의식하게 되는 영화에 회의적이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필름 메이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감동이 배가 되었다. 스토리 라인도 훌륭하고 연출은 자연스럽고 조화로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설명적인 감독이라 단정했던 것을 반성하며 본 다음 영화는 <걸어도 걸어도>(08). <~ 기적>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최근작들보다 좋게 느꼈다.
(출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리고 그의 데뷔작인 <환상의 빛>(95)을 봤는데, 그땐 거의 충격을 받았다. 미학적으로 최근작들과 결이 다르다고 느꼈다. 이어 본 두 번째 작품 <원더풀 라이프>(98)와 세 번째 작품 <아무도 모른다>(04)까지 함께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설명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설명적인 것과 완전히 ‘반대’였다. 인물의 마음을 추상적으로 그려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정서와 감정을 여행하게 하거나, 인물을 그저 따라다니지만 이미지를 차근히 쌓아 종국엔 그 정서와 감정을 이해하게 하거나… 구체적인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하나의 장면 혹은 하나의 대사에 메시지를 주입하지 않고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 공통됐으며 최근작들과는 달랐다.
“가능하면 영화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표현해보고 싶다. 문장에서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식의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현재 영화는, ‘전제’ 조건으로 존재하던 ‘작은 영화관 문화’가 위기에 처하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는 거대한 오락시설에서 ‘소비’되는 여흥으로 변질되도록 강요당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에 위 같은 생각이 담겨 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초기 작품들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표현하고 있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기준으로 점점 보는 이들의 상상력이 끼어들 빈 공간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도 결국 영화가 오락거리로 변질된 문화에 굴복된 것일까. 혹여 그런 것일지라도 가끔은 굴하지 않고 <환상의 빛> 같은 영화도 다시 만들어주면 좋겠다.
(출처: 영화 <환상의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