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채식주의자. 한강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평범한 아내였던 '영혜' 는 어느 날 생육을 먹는 꿈을 꾸게 된 후, 고기를 기피하게 된다. 그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집에 있는 고기와 관련된 것들을 모조리 버리고, 심지어는 남편에게서 고기 냄새가 난다며 잠자리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혜의 꿈은 점점 심화된다. 고기를 먹는 것에서 누군가를 살해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갈수록 이상해지는 영혜가, 눈에 띄는 행동을 싫어하는 남편은 영 못마땅하기만 하다.
여러분들은 ‘채식주의자’ 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위주로 하는 사람이 많아 그리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허나 영혜의 상황은 다릅니다. 고기를 기피하는 영혜를 남편과 그녀의 가족들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영혜를 비정상으로 보게 됩니다. 자꾸만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드는 주변 사람들, 영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모두들 앞에서 자해를 시도한 영혜는 병원으로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게 되고 결국 남편마저 그녀를 버리고 맙니다.
영혜의 행동은 과연 비정상적인 행동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영혜는 그저 고기를 멀리하려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이 그녀에게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던 행위는 ‘폭력’이 되었고, 결국 그녀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택한 행위는, 모순적이게도 ‘자기폭력’입니다. 심지어 소설의 후반부에는 ‘나무’가 될 것이라며 어떠한 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런 영혜를 바라보는 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혜의 언니, 인혜입니다.
자꾸만 나무가 되고 싶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 하는 동생, 그런 영혜를 돌보지 않는 가족들, 사건을 저지르고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그렇지만 인혜는 책임감 하나로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을 끝까지 돌보려고 합니다. 정상의 범주에 자신을 집어넣고서 버티는 인혜의 모습은 마치 책을 읽는 ‘독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살면서 얼마나 평범하게 사려고 노력을 할까요?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가고자, 자신의 모습을 망가뜨려서 억지로 ‘정상’이라는 곳에 집어넣은 적이 있지는 않나요? 어쩌면 비정상적인 길을 선택하는 ‘채식주의자’들을 보며 그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낸 적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그리고 ‘채식주의자’ 가 될 수도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길이, 언젠가 자신이 선택한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책 내용 중, 생략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책을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 길지는 않으니 꼭 한 번 시간을 내셔서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채식주의자인 저도 이 책을 봤습니다.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도 조금은 이해가 되고요.ㅎ
제가 한국에서 채식한다고 했을 때 사실 주변에선 오히려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채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잖아요. 근데 소설에서는 너무 극단적으로 채식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처럼 보게 만들어버리죠. 소설이다보니 극적 상황을 연출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아쉽긴 했습니다. ^^;
저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채식주의자에 빗대어 표현해서 좀 더 책을 몰입하여 읽을 수 있어 좋았는데, 확실히 극단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죠. 책은 역시 읽는 사람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주는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