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멸종
나는 멸종을 경험했다. 내 의식의 멸종을 스마트폰을 통해 경험했다. 문명이 스스로 발전하여 나에게 강제했던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그래서 회귀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농업혁명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지난해 아주 강렬하게 했었다. 물론 한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 인간이 상상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멸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농업혁명 때로 가면 망한 것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귀농해도 행복과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다.
'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 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차라리 멸종을 향해 가는 것이 행복을 되찾는 길일 것 같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고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스스로 상상하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데 있었다고 한다면, 현재 인류. 즉 사피엔스 DNA를 조금이라도 포함하고 있는 사람은 상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상상하는 능력을 모두가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 상상력을 이루어 내는 사람은 몇몇일까? 그 상상력으로 멸종의 길을 가는 사람은 몇몇이나 될까?
나는 사피엔스와 많이 닮아 있다. 스스로 속박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유롭게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목적을 만들고 스스로 그 목적에 속박되어 노예가 된다. 이유는 없다. DNA에 그렇게 쓰여있나 보다. 내가 만든 정책, 원칙 등에 속박되어 가고 상상을 하면 할수록 그 속박을 강하게 만든다. 결국 나는 그 속박 때문에 죽을 것이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래서 의미를 찾아야 했다. 이 속박에 의미를 부여하고 멸종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야 다음 세대도 나처럼 다음 세대를 멸종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믿었다. 사실은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돌아갈 길이 없다. 신화를 믿어 보자.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