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7년 봄에 작성한 것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2016년 1월 “4차 산업혁명의 이해(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를 주제로 한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가 열렸습니다. 그 날 이후 국내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신문기사, TV뉴스, 출판물, 학술논문 등이 대량으로 생산되었지요. 얼마나 많이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는가 하면, 2016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는 신문 지면기사만 약 9,922건이 작성되었고, 방송에서도 ‘4차 산업혁명’ 관련 뉴스를 약 1,086건 정도 보도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국내 출판시장에는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하는 경제·경영 분야 단행본이 약 35권 이상 출간되었고, DBPia 논문검색을 통해 볼 때 2016년 중반부터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정책, 법률, 교육 등에 관련된 인문·사회과학 분야 학술논문도 증가합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2017)의 조사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네이버 검색량 역시 2015년 평균 대비 1년 만에 약 175배 증가하여, 공중의 관심도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국내 정보통신(ICT) 정책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먼저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6년 5월 10개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지능정보사회 민관합동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같은 해 9월에는 ‘지능정보사회추진단’이 출범했으며, 12월에는 ‘지능정보사회 추진 민관합동 컨퍼런스’를 거쳐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을 발표합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4차산업혁명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라 '대통령직속4차산업혁명위원회'가 꾸려져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국가전략과 부처별 정책을 만들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연구·개발하거나 전 산업에 걸친 '지능화'를 추진하는 모든 일을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http://www.4th-ir.go.kr).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조직과 대책이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ICT정책이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4차 산업혁명 논의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대중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책 아이디어로서도 영향력을 갖기 시작한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기까지만 해도 4차 산업혁명 논의가 중요한 정책 담론으로서 영향력을 계속해 행사할 수 있을지, 아니면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처럼 속 빈 말잔치에 불과한 것인지를 의심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4차 산업혁명은 대통령후보 토론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4차 산업혁명 요소 기술과 관련이 있는 스타트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현재는 대통령직속 위원회가 꾸려져 있는 상태로 '4차 산업혁명'이 현재 한국의 중요한 정책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대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신문과 방송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는 방식이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므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과정일까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과정일까요? 아니면 1970년대부터 형성된 정보자본주의의 심화된 버전일까요?
이 글의 목적과 분석대상
이 글에서는 2016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작성된 주요 신문 칼럼의 비판적 독해를 통해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의미 체계를 분석하려고 합니다. 먼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칼럼들이 어떤 어휘, 문장, 사건 등을 선택하여 배치하고 있는지, 이 같은 배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논리를 구성하는지, 또한 이와 같은 선택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단어, 문장, 사건은 무엇인지를 분석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에 관한 텍스트가 생산하는 의미와 그것의 효과가 무엇인지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또한 칼럼 텍스트들 간의 주제 및 입장 차이를 살펴보고, 초기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장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검토함으로써 오늘날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지배와 불평등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저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개별 텍스트의 내용보다는 텍스트의 형식과 텍스트 간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의미체계 분석은 신문 칼럼과 같은 대중매체 텍스트가 기술과 사회, 기계와 인간, 개인과 국가 그리고 국가 간 관계 등을 특정한 방식으로 틀짓는 방식에 착안합니다. 예컨대,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의 감소라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며 주류 정책이 내놓는 방안들, 즉 ‘노동유연화’, ‘기업가정신’ 교육, ‘평생교육시스템’ 구축 등이 어떻게 도출되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위기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회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비판적 담론 분석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대중매체 텍스트 중에서도 학술논문이나 정책보고서 등 다른 형태의 텍스트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대중적 파급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신문 기명 칼럼을 분석 대상으로 삼습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기사의 수가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한 2016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작성된 지면기사 중에서 작성자의 이름과 소속이 명시된 기명 칼럼기사 텍스트를 분석대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정보화진흥원(2017)에 의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사설 및 칼럼기사의 양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된, 매일경제, 전자신문, 한국경제, 서울경제, 중앙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지면 기사에 한하여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제목과 본문에 포함하고 있는 칼럼기사 127건을 1차 검토했습니다.
1차 검토 과정에서 칼럼기사를 몇 가지 원칙에 따라 선별하여 질적 분석이 가능한 수준으로 한정하였습니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을 글의 핵심 주제로 삼고 있는 텍스트를 선택했습니다. 즉 제목과 본문에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고 있더라도 4차 산업혁명 자체를 주제로 삼는 텍스트가 아닌 경우 분석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둘째, 한국정보화진흥원(2017)에서 실시한 「4차 산업혁명 담론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의 ‘4차 산업혁명 단어중요도 분석’ 및 ‘빈출단어 분석’ 결과를 참고하여, 1)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교육, 2) 일자리의 불확실성, 3) 기업, 기술, 정부, 세계, 산업, 경제 등 거시적 담론 구성 용어, 4)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기술 관련 논의가 포함된 기사를 선택했습니다. 셋째로 대다수 칼럼기사와는 다른 용어법이나 주장을 채택하고 있는 텍스트를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비주류’ 주장을 분석 대상에 포함하여 전체 논의의 장을 조망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최종적으로 이 논문에서 분석·인용하게 된 칼럼기사는 총 20편입니다.
<인용문헌>
한국정보화진흥원. (2017). 「4차 산업혁명 담론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한국정보화진흥원 Hot Issue Report 2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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