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실력 증명
꽤 오래전에 겪었던 에피소드 한 토막...
십여 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경기도 어딘가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주제는 “인터넷 쇼핑몰 창업”이었다.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하루 종일 진행하는 강좌였는데 나는 오후 두 시부터 네 시까지 마지막 시간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옥션, 지마켓과 같은 오픈마켓 입점에 대해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가능한 한 강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다. 기회가 되면 수강생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강의를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 점검을 한다. 슬라이드 자료를 준비했다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도 해야 한다.
그날도 그런 생각으로 일찌감치 출발했다.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지도를 미리 출력해서 들고 서둘러서 갔다.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의 담당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금 어디세요?”
“주차장인데요.”
“다행이다. 지금 바로 강의실로 와주세요.”
“네? 아직 강의 시작하려면 삼십분 넘게 남았는데요?”
내 시간 바로 앞 강의는 “성공사례”였단다. 강사는 성공한 젊은 농부!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며 수확물을 인터넷으로 팔고 있는데 연간 몇 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성공 경험담을 들려주는 한 시간짜리 강의였다고 했다.
문제는 이 분이 너무 심각하게 강의를 못 한다는 것.
긴장을 해서 목소리는 떨리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 들리지도 않고... 넓은 강당에 모인 몇 백 명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단다. 결국 삼십분도 채우지 못하고 강의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고 했다.
강당 앞에 도착하니 담당 직원이 울상인 얼굴로 말한다.
“지금 난리 났어요. 어떻게든 수습을 좀 해주세요.”
강당에 들어섰다.
소위 망해버린 강의 바로 뒤에서 수습을 하며 강의를 해야 한다. 만일 나마저 실패를 하게 되면 그날 강의는 말 그대로 끝장나버리는 것.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고, 나에게 호감, 또는 호기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제아무리 강의를 잘 한다고 해도 저들은 나에게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강단에 올라섰다.
인사는 뒤로 미루고 컴퓨터 세팅을 먼저 했다. USB에 담아둔 파워포인트 자료를 열어서 슬라이드 쇼 준비를 했다.
USB를 꺼내며 보니 가방 안에 아침에 찾아둔 명함 세 통이 눈에 띈다. 당시에는 프리랜서로 강의를 하고 있어서 명함을 만들어 쓰고 있었는데, 며칠 전 명함을 주문했었고, 마침 그날 오전에 명함을 찾아들고 강의를 하러 갔었다.
최대한 천천히 강의 준비를 하다 보니 강단에 선지 오 분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준비만 하고 있었다. 입구 쪽을 보니 담당 직원은 잔뜩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애타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마이크를 들고 서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마지못해 치는 박수소리가 사그라지고 나서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처참하게 끝나버린 앞 시간 때문에 예정보다 삼십분이나 더 오래 강의를 해야 하는, 게다가 앞 시간의 성공사례보다 백배는 더 재미없을 ”오픈마켓 활용“을 강의하게 된 김정한입니다.”
약간의 웃음소리, 아직은 별 반응이 없다.
나는 가방에서 명함 세 통을 꺼내어 앞에 늘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보통 이런 강의를 하게 되면 저에게 명함을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그래서 강의 의뢰를 받고 제일 먼저 확인한 게 명함입니다. 마침 거의 다 떨어졌더군요. 새로 명함을 주문해서 오늘 아침에 찾아왔습니다.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원래 명함은 서로 얼굴 보고 건네 드려야 하는데, 아마 여러분 중에는 제 명함 한 장 받고 싶기는 하지만 명함 달라고 손 내밀기 쑥스러워 포기하시는 분이 분명 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명함을 입구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제게 명함 받고 싶은 분들께서는 부담 없이 말씀해주시고, 말 걸기 귀찮으신 분들은 데스크에서 한 장씩 집어 가셔도 됩니다.“
이렇게 시작한 강의는 마지막 끝날 때 제법 큰 박수소리를 들으며 마무리 지었다. 울상이던 담당 직원이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넨 음료수도 제법 맛있었다.
간혹 실무 경험이 풍부한 강사들을 만나게 된다. 취업과 연관되거나 기술 관련 강의에서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강사들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현장 경험, 실력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히 높다.
하지만 이런 분들이 진행하는 강의는 보통 평균치 이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딱 하나, 강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실력이 있고 강의 능력까지 뛰어난 강사라면 당연히 인기 강의가 되어 수강생이 미어터진다. 하지만 현장 경험이 뛰어난 분들은 미처 강의 능력을 배양할 시간이 없다. 바쁘게 현업에서 종사하는 와중에 강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 실무 능력이 뛰어난 분이 강의마저 잘 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전문 강사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냥 현장에서 가장 실력 뛰어난 사람 데려다가 강의를 시키면 되지.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실력 있는 사람은 강사로 성공하지 못한다. 그 실력으로 일을 해야지, 왜 강의를 해?”
반대로, 특정 분야를 꾸준히 강의하면서 유명해지고 난 뒤 전혀 다른 분야의 강의에 도전하는 강사... 성공적으로 강의 분야를 넓혀 나가거나 바꾸는 경우는 종종 본다.
이유가 뭘까?
강의는 단지 특정 분야에 대한 실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수강생과의 교감을 비롯해서 쉽게 설명하는 능력과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 능력까지 강의 자체에 대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강의 분야에 대한 빼어난 실력까지 겸하고 있다면 금상첨화이겠고...
마치 손님을 위해서가 아닌 사장의 취향을 위해서 일하는것이 더 인정받는다는 느낌일까요...ㅎㅎ 어떻게 보면 영업과도 같내요 관계라든가..
ㅎㅎ...
맞는 말씀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물건을 팔기 위한 영업사원과, 강의 콘텐츠를 파는 강사는 기본적으로 같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