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저작권 인식이 늦은 까닭에 대한 소고

in #kr6 years ago

이 글은 kmooc.kr의 생활속의 표절과 저작권이란 강좌에서 논의하고 있는 '한국에서 저작권 인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어진 까닭'에 대해 적은 글을 다시 정리 한 글입니다.

한국에서 저작권 인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어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작물은 문화적 소산으로서 공유재산이라는 인식과 보호보다 전파에 더 관심

'술이부작(述而不作)'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그저 있는 것을 옮겨 적었을 뿐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란 것은 없다는 말이지요. 공자가 자신의 주장이 정통파이고, 사이비처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한 말입니다. 숨은 뜻은 '니들이 정통을 알어?' 뭐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전 저작권 이야기가 나오면 늘 이 글귀를 떠올립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서양식 표현과는 사뭇 다른 의도로 나온 표현이지만, 한편으론 표현 그 자체로만 보면 매우 공통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공자는 정통을 중요시 했기에 새롭게 만들고 지어낸 것인 '창작'을 어찌보면 긍정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는 뜻도 되겠습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강조한 사람이고 보면 충분히 그러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전통하에서 창작물은 옛 것을 바탕으로 한 사회 전체의 유산이었으며 그 창작물은 보호보다 사회에 얼마나 어떻게 전파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었을 겁니다.

저작물은 지식인의 의무라는 인식과 사회적 보상

지식인 또는 선비들은 사회의 철학과 사상을 발달시키는 것이 업이었던 사람들입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사회에서 가장 존중받는 일을 하던 사람이 지식인이었습니다.

대접받는 존재로서 그 저작물을 통해 보호받을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 맞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일에 스스로 직업적 윤리를 강화해왔을 것이고, 그러한 윤리에 어긋나는 것에 대한 도덕률이 지배했을 것입니다.

저작물을 통한 권리의 확보보다 의무의 성실한 이행을 어려서부터 강요받고, '소학'같은 책을 통해 강조받아 왔다면, 권리를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고 사회적으로 여기지 않았을까요?

저잣거리의 장사치처럼 권리를 주장하고 값을 매겨서 거래한다는 것에 대한 혐오가 저작물 생산자인 지식인에게 요구된 역할과 사회적 위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허생전이나 호질 같은 조선후기 소설에서는 그 허위의식을 경계하라고 하지만, 전통적으로 저작물을 생산하던 이들이 사회에서 존중받고 권리에 기대어서 거래를 한다는 것을 백안시 하던 전통에서 보면 저작권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지식인에 대한 고상함을 변질시키고 사회적인 존경을 버리는 것이라고 보던 시각에서 논의도 어렵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저작물에 대한 인식차이

아주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묘한 속담(?)이 있습니다. 바로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라는 표현인데요.
역시 사회적으로는 사회적으로 공유해야할 문화적 자산인 지적재산을 보호하고 독점하며 이를 장사치처럼 거래할 대상으로 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문(文)은 숭상할 대상이지, 거래할 대상으로 보는 순간 숭상할 무엇이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마치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도를 도라고 부르면 더이상 늘 도라고 불러온 그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저작물의 사회적 가치가 사라지고 교환적 가치만 남게 되어 숭상하고 사회적으로 존중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보았을 것 같습니다.

무형의 가치에 대한 인식 결여

교환과 거래는 눈에 보이는 유형물에 한해서만 가능한 것이지, 무형물에 대해서 교환할 가치의 대상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아예 상상도 못한 것이지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양한 교환가치로서의 고민이 있었어야 할텐데, 고민을 할 여지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식해야 존재하는 데 말이죠.

인쇄술이 지향한 바의 차이와 문자 및 인쇄방식의 차이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을 통해 저작권이 발달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인쇄술의 쓰임새, 인쇄방식 등은 앞섰다는 것 이외에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기에는 많이 달랐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알파벳에 기초한 당시 유럽의 인쇄는 알파벳 활자만 있으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필사시대에 비해서), 그 내용을 자유로이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휴대도 우리 팔만대장경에 비하면 간편했을 겁니다.

우리는 인쇄를 처음했다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한자에 기본한 판본을 갖고 있기에, 경판 자체를 휴대하기도 어렵고 개인들이 출판에 활용하기에는 매우 어려웠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차원에서 인쇄를 진행하고, 인쇄대상도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저작물의 대량생산이 쉽지 않은 인쇄 구조를 고려하면(유럽은 알파벳이면 충분한데, 당시 주류인 저작물이 한무으로 되어 있어서 각 책마다 인쇄할 글자를 휴대하려면... 찾아서 넣고 빼기도 어렵죠), 저작물의 확산에 인쇄술이 크게 기여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개인에 의한 다양한 창작물이 대중에게 대량으로 유통되어야 창작자에 대한 보호와 같은 생각을 저변에서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시장을 형성 하기에는 쉽지 않은 역사적 경제적 전통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론

지식인의 존중에 따른 저작권의 불필요성과 그에 따른 권리에 대한 천시하는 분위기, 인쇄술의 발전 방향의 차이에 따라 창작자의 저작물을 대량으로 유통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경제적 구조 등에서 저작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어려웠던 점 등이 저작권 의식이 다른나라에 비해 늦었던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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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정말 이런 역사적 배경이 지적재산권에 둔감한 문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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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지적재산권을 맘껏 사회가 누렸는지도 모릅니다. 창작자 보호는 매우 중요한데, 창작자 보호가 외려 다른 자유로운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을 수도 있어서요. 창작자 보호를 반드시 저작권으로만 보호해야 하는 지는 좀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댓글에 외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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