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친분은 없지만내가 아는 사람 중 "저 사람 참 공부 열심히 하네." 하고 말할 만한 사람이 몇 있다. 소설가 장정일, 트레이더 김동조,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진득하게 허공을 응시하면 몇 사람 더 꼽을 수 있겠지만 관두겠다. 이 글을 쓰게끔 계기를 제공한 사람이 있으니 한 명은 더 언급해야겠다. 『이것이 공부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삶은 왜 의미 있는가』 『중간착취자의 나라』 등의 책을 집필한 이한 변호사이다. 이분도 그야말로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이다.그리고 장그래 닮았다.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튀어 오르기도 하지만 자발적인 공부이고 그것의 과실을 공유 받는 나로선 고마운 일이다. 이한 변호사의 페이스북에 방문했다가 그가 리처드 도킨스를 소환하며 쓴 글을 읽었다. 글의 요지는 도킨스가 유신론을 박살내기 위해 쓴 책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에서 낙천주의라는 그의 망상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한이 말한 낙천주의란 삶의 부정적 요소와 대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 요소가 부정적 요소를 압도한다는 관점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존재하는 일 자체가 행운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낙천주의이다.나는 내가 이 세상에 온 사건을 두고 행운이란 말로 과장하지 않는다. 흔히 드는 예가 있다. 생식 세포의 개수를 헤아리며 수정受精은 곧 행운이다라고 설파하는 일 말이다. 눈과 귀를 열고 세상을 돌아보라. 분명 어떤 면은 행운·행복으로 칠해져 있다. 그러나 어떤 면은 불운·불행으로 점철돼 있다. 이처럼 세상은 다면적이다. 나는 태어났다는 것이 곧 행운·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보아 온 바로는사람은 관성에 의해, 우연에 기대 후대를 남긴다. 필연은 산파가 아니다. 분쟁 지역에서 고통 받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無였다면 고통이 없다는 느낌조차 지각할 수 없었으리라. (사실 인간의 언어로 무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무에서 멀어지는 기분이다.) 전쟁의 횡포에 죽어 나간 아이에게 그래도 태어나서 삶을 맛보았잖니라며 다정히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무無는 아니었잖니라는 말을 덧붙이며······.탄생에서 성스러움을 들어내는 말만 잔뜩 써 놓았다. 이 글을 불편해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우연히 태어났음을 강조하는 일이 행복하게 살겠다는 나의 목적을 훼방하진 않는다. 기왕 세상에 온 김에 나도 신나고 재밌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려고 애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다 무無가 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지만 앞서 도킨스가 나왔으니 종교에 대해서도 조금만 떠들겠다. 나는 불가지론에 발을 걸친 무신론자이다. 본래 견결한 무신론자였으나 불가지론이라는 단서를 두게 되었다. 몸소 겪지 않은 세계에 대해 철저히 단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내게는 신이 없다. 나는 종교(뿐만 아니라 철학까지)를 역사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세상에 진리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분이 있다면
시시하지만내가 답을 드리겠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진리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김명남 옮김, 문학동네, 2012)라는 것뿐이다. 내가 간주하는 진리의 범주에는 종교·신이 없다. 그렇다고 종교를 등한시하진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이 본인의 저서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박중서 옮김, 청미래, 2011)에서 밝혔듯그랬던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종교는 잘만 활용하면 효용가치가 뛰어난 훌륭한 도구다. 배타적이지 않으며 인권을 수호하는 종교인들을 존경하고 존중한다.내가 아는 진리는 내가 죽는 것뿐이라고 썼다. 그렇다고 이 주장에 의존해 선·악을 구분하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진 않는다. 예컨대 광개토대왕은 위인인가 악인인가를 묻는 것은 나태한 질문이라고 본다. 철인인 양 뒷짐 쥔 채 과거 사례만 족족 들먹이는 행동을 싫어한다. 먼 옛날의 인간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지금보다 악했을 것이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인간은 인권이란 가치를 만들고 발전시켜 왔다(이도 진화의 단면일까). 인권이 침해되는 일들이 시시로 일어나지만 과거보다 나아졌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타인의 인권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명령을 진리는 아닐지라도 (정당방위 등 변수가 있겠지만) 준진리의 지위에는 올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 힘찬 하루 보내요!
고맙습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기왕 사는거 즐겁게 살고싶습니다. 보팅/팔로우 하고갑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철학, 종교, 죽음 등등등등 아무 것도 필요 없죠. 중요한 건 알짜배기들을 뽑아내서 어떻게 내 삶에 유용하게 쓰느냐죠. 어떻게 해야만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게 젤 중요하죠. 그러다 보니 사랑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습죠 ^^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지요.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런 질문을 스스로한테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흠~
지금 해보고 있는데..바로 "행운이야. 끝" 이렇게 답이 나오네요.
너무 단순한것 같은데... 제가 제가 그러네요.
저도 나 태어나지 말 걸 그랬어, 하는 심정으로 쓴 글은 아니에요. ㅎㅎ 곧바로 행운이라고 하셨다니 (힘든 일이 아예 없을 수 없으나) 잘살고 계신 것 같아요. ^^
단순하게 철은 좀 덜든체로 살라고 하는데 앞으로는 잘 모르겠네요.
시간이 더 흐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ohnamu님은 잘살고 계신 거 같아요(우기기!). 그리고 삶에 모범답안은 없는 듯해요. 그냥 자기 가치관·철학에
아이고 거창하다따라서 하루하루를 잘 살려고 생각은 하는데 어려운 일이죠.철학 (정신과 생각)을 갖고 산다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인것 같아요. 완전요~
네, 저 역시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하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