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넷플릭스 <블랙 미러 : 스트라이킹 바이퍼즈>(2019)
1. ‘롤플레잉’ 취향이십니까? - 이전엔 없었던 새로운 감각을 향한 상상력
<블랙미러 :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이하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 HER >(2013)를 떠올리게 된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사랑, 군중 속의 고독, 특정 소프트웨어를 통해 교감을 나눈다는 점이 여러모로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재만 놓고보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한데, 달콤한 신혼을 지나 권태기에 빠져버린 한 남자의 일탈을 다루는 영화 이야기 자체는 솔직히 크게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그래도 '블랙 미러'인데 이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전부라고?"
설마 그렇겠는가.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묘미는 내러티브에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감각을 묘사하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단지 가상현실 게임을 잘 묘사했기 때문일까? 아니.
가상현실에 접속해 그 감각으로 다른 세계를 누린다는 설정은 오히려 <매트릭스>(1999)나 <아바타>(2009)에서 더 훌륭하게 묘사된 적이 있다. 게다가 <매트릭스>가 가상세계 속에서의 복제된 자아, <아바타>가 현실세계 속의 복제된 자아를 묘사하고 있어 적어도 이 방면에서 가상과 현실을 통틀어 새로운 상상력을 펼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사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도 그랬다. 문제의 ‘칼(야히아 압둘 마틴)’, 그리고 그의 캐릭터인 록시트(폼 클레멘티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는 전설로 불러야할 영화, <매트릭스> *사진 : 다음 영화 <매트릭스>(1999)
먼저 <매트릭스>의 가상세계를 들여다보자.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에 접속하면 그는 매트릭스 속에서 그 자신인 ‘네오’ 그대로 분해 현실과 똑같은 자아와 생김새를 그대로 계승한다. 물론 매트릭스는 컴퓨터 코드에 불과하므로 가상현실 속 네오는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구현해낼 수 있는데, 어쨌거나 여기서 네오는 그 자신 본인의 감각 그대로를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아바타>의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는 어떤가. 가상세계라고 표현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역시 자신의 육체가 아닌 연결된 대상(나비족 아바타)의 육체로 감각을 느낀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제이크 설리가 다리 하나를 잃은 군인이라는 점이다.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신체를 지닌 아바타의 다리 감각을 그대로 느낀다는 설정에서 <아바타>는 ‘없는 감각에 대한 감각’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던져준다. 물론 제이크 설리가 다리를 잃었다고 해서 다리가 있었던 때의 감각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니고, 아바타를 통해 사라진 다리의 감각을 느낀다는 게 ‘없는 감각’을 느낀다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분명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 프로그램 덕분에 ‘나비족의 신체’를 감각하게 됐다. 즉, 그는 다리가 있고 없고를 떠나 '인간이 느낄 수 없는' 나비족 본연의 감각을 느끼게 됐다는 말이다.
<아바타>의 충격도 <매트릭스> 못지 않았다 *사진 : 다음 영화, <아바타>(2009)
인간이 이종(異種)과 연결돼 경험하지 못할 감각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영화를 떠나 현 인류에게도 꽤나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감각제한을 받고 있고, 주어진 감각으로만 세계를 보기 때문에 세계를 보는 관점도 그만큼 협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록 상상의 영역이긴 하지만 인간이 감각을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감각의 확장이라는 차원에서 앞에서 예시로 들었던 작품들과 같은 맥락을 따르지만 그 '확장'을 넘어 ‘감각의 변이’까지 시도하면서 고유한 특징을 얻게 된다.
모든 신체 감각이 구현된 VR 게임 속에서 남자가 여성 캐릭터를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사진 : 넷플릭스 <블랙 미러 : 스트라이킹 바이퍼즈>(2019)
남성인 ‘칼’이 여성 캐릭터 ‘록시트’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주어진 능력치로 경쟁하는 게임 속에서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록시트가 된 칼은 그 자신의 말투는 그대로 고수하지만 성적 쾌락을 느끼는 과정에서의 행동이나 모습은 여성의 감각을 온전히 따른다. 한 마디로 남자의 몸으로 여성의 오르가즘을 느껴보는 것이다.
앞서 살펴봤던 <매트릭스>나 <아바타>처럼 가상현실을 통한 자기복제는 그야말로 자신의 감각을 복제, 확장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자기복제가 그 자신의 감각이 아닌, 자아의 연속성만을 가진 채 완전한 타자의 감각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답을 내놓으면서 인간 감각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가져보는 것’과 ‘남자가 여자가 되어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개념이듯 말이다.
이 같은 특징은 영화적 해석에서도 그대로 ‘용인’된다. 처음 대니와 칼이 가상공간에서 가상의 캐릭터로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저 남자인 랜스(루디 린)과 여자인 록시트가 키스하는 장면을 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두 명의 남자, 대니와 칼이 서로에게 키스를 퍼붓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같은 ‘용인’은 예컨대 <인셉션>(2010)에서 임스가 브라우닝과 여자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나지만, 그것이 그저 ‘탈’을 빌린 것이라면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칼은 록시트라는 존재 내부의 여성성과 감각까지 모두 빌린 것이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라는 제목 그대로 욕망을 상징하는 뱀, 욕망의 경계를 파괴하고 감각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게임도 그렇지 않은가. 피 터지는 혈투만을 생각하고 게임을 한다면 영원히 격투만 즐기게 되겠지만 그 자유도를 이용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므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는 단순히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감각의 프레임을 탈피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메시지까지 함께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이번 <블랙 미러> 시리즈는 '어떤 청사진'을 내포하고 있다 *사진 : 넷플릭스 <블랙 미러 : 스트라이킹 바이퍼즈>(2019)
2.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미래 이정표
이번 <블랙 미러> 시리즈는 이전과는 달리 넷플릭스의 야심찬 미래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더 이목을 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슬리더린' 편에서는 기술문명의 어두운 단면을 조명하는 블랙 미러 시리즈의 고유한 개성을 그대로 가져오지만, 처음과 끝을 맡고 있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와 '레이첼, 잭, 애슐리 투'에서는 뇌 작동방식에 대한 연구, 그리고 뇌의 특정 영역을 조작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조명하면서 시종일관 그것의 가능성을 엿보는 모양새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즈>만 해도 그렇다. 만약 그게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롤플레잉’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가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에 등장하는 VR 기기로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다가 실제로 그 장면 속에 뛰어들어 그 장면 속의 캐릭터들과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떨지. 또 그 과정에서 우리의 선택에 의해 영화의 결말이 달라진다면 어떨지. 앞서 선보였던 인터랙티브 내러티브 영화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가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안에서 구현됐다고 가정해보면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을까? 더구나 우리가 꼭 남자라고해서 남자를, 여자라고 해서 여자를 선택할 필요도 없고 ‘북극곰’이나 심지어 ‘에일리언’까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영화 속에서 역할을 하나 정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형식의 새로운 ‘롤플레잉 무비’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영화라는 매체의 등장 이후 뚜렷하게 더 이상의 진전이 없던 영상 콘텐츠 산업에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그것은 과연 게임일까, 아니면 하나의 영상 작품일까. 지금도 VR과 4K에 이르는 해상도, 그리고 이를 전송 및 구현할 5G 시대가 열리면서 보다 역동적인 콘텐츠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현재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콘텐츠가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롤플레잉 무비’ 같은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창조해 그 영역의 압도적인 선두주자가 된다면, 게임과 영화, 현대인의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는 두 가지 요소를 자신의 전유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최근 넷플릭스가 SF 미스테리물 <기묘한 이야기>시리즈를 모바일 게임으로 확장한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흐름인 것 같다. 단순한 IP 확장 개념 같지만 실상은 더 근본적인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대니와 아내가 ‘롤플레잉 연애’를 즐기는 것, 그리고 게임을 주 소재로 삼았다는 것, 항상 넷플릭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그 상징성이나 대표성이 크다는 점에서 보면 이런 점들이 마냥 뜬구름 같은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블랙 미러 : 시즌5>는 일종의 미래 넷플릭스 '백서'내지는 청사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모든 일들이 구현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간에, OTT 서비스의 선두주자를 달리는 기업의 '예측'을 본다는 측면에서도 이 시리즈는 충분히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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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AA
안그래도 블랙미러 보려고 했었는데... 리뷰를 보니 더 보고싶어지네요 ㅎㅎ
그 상상력을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하나씩 다 봐야겠어요
네 아주 재밌다고는 할 수 없지만 꽤나 흥미진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