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say.3 I fucking love you
영화 :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감독 : 마틴 스콜세지
"다들 키미 벨져 알죠?"
(알죠, 알죠!)
"퍽유!"
"그렇겠죠. 그래도 키미가 스트랜튼의 창립 멤버였단 사실은 대부분 몰랐을 겁니다."
"다들 키미를 만나봤겠지만, 요즘 흔히 보기 힘든 정말 아름답고 세련된 여자죠....... 3천 달러짜리 아르마니 슈츠에, 신형 벤츠를 몰면서 추운 겨울엔 바하마, 더운 여름엔 햄튼에서 보내는 여자예요."
"하지만, 옛날의 키미는 달랐죠"
"내가 전에 만났던 키미는, 항상 돈에 찌들리고 8살짜리 아들을 힘들게 키우는 싱글맘이었어요. 집세는 석 달이나 밀려있었는데....... 일자릴 찾아서 내게 왔을 때 그녀가 5천 달러 가불을 요청하더군요. 아들 학비가 없다면서 말이죠......."
"그때 내가 어떻게 했지? 말해봐 키미."
".......2만 5천 달러짜리 수표를 주셨어요."
"그때 왜 그랬는지 알아?"
"당신을 믿었기 때문이야."
"(중략) 진짜 존나 사랑해요 조던. 졸라 사랑한다구요."
"나도 사랑해! 나도 졸라 사랑한다구!"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약쟁이에 섹스 중독자. 멍청한 인간들을 등 처먹는 인간쓰레기. ‘스트랜든 오크몬드’의 주인인 조던에게 딱 어울리는 수식어 아닐까.
그런데 이 거침없는 야생 늑대 같은 남자에게 눈물을 머금고 ‘존나 사랑한다구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조던의 말마따나 3000달러짜리 아르마니 슈트에 계절에 맞춰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는 잘나가는 여자가 말이다.
서로가 호시탐탐 이용하기 위해, 혹은 도구를 만들거나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현장이 비일비재한 게 세상이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기는커녕 우는 사람이 방심한 사이 소지품을 빼앗아가는 세상. 어느 시대, 어느 땅에서도 반복되는 인간들의 추악한 본성이 적당한 이데올로기와 테제를 찾아 그럴싸한 탈을 쓰는 세상 속에서 누가 주변인들에게 그토록 깊은 감명과 진심어린 존경을 끌어낼 수 있는가?
뭐, 어쩌면 과도한 미화일지도 모르겠다. 미화라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너무 고마워서 욕을 섞어가면서까지 고맙다고 하는 사람을, FBI가 쳐들어와도 나를 위해 주먹을 날리는 사람을 둘 수 있는지, 혹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는 있을지 그 질문이 중요한 것이니까.
조던이 보여준 건 단지 돈만이 아니다. 분명 키미는 창업멤버라고 했다. 스트랜든 오클랜드는 조잡한 낡은 자동차 정비소에서 시작했다. 돈냄새를 맡는 능력이 뛰어나다곤 하지만 그 자신도 돈 한 푼이 아쉬운 창업 시기에, 한 사람의 가능성만을 믿고 2만 5천 달러를 빌려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가치만 믿고 자신의 일부를 과감히 떼 줄 수 있다는 것. 비록 조던이 비인간적인 탈을 쓰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행동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걸지도 모른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나갈 수 있었지만 그는 ‘일자무식’인 인간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엿보고 기꺼이 동료가 됐으며, ‘방세가 밀려 절절매던 싱글맘’에게 거액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더 울프 오브 스트리트>를 보면서 그에게 비인간성보다는 인간성을 느끼고 있었다면, 바로 그런 점 때문은 아닐까?
착해보이려 허울뿐인 빈말과 약속을 남발하는 위선자보다는 고약하단 소릴 들을지언정 꼭 필요한 말과 행동을 하는 속물이 더 낫다. 하물며 자기만 못한 사람을 보고도 내면의 가치를 끄집어낼 줄 아는 사람이면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신의가 종잇장처럼 가벼운 이 시대에 어차피 성인군자가 되어 존경받을 만한 위인이 될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내 사람들이라도 울려 'i fucking love you' 소리는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