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가호는 본가에서 불쑥 찾아온 작은 숙부, 팽련휘(彭練揮)와 마주하며 두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예? 마교라구요?”
갑자기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그래. 이번에 그놈들의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해서 강호는 지금 난리가 났다.”
마교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무거웠다. 그랬기에 팽가호도 본인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놈들이 움직이는데 정도맹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럼 뭐 하고 있는데요?”
팽련휘는 슬쩍 웃었다.
“맹주가 검황기(劍皇旗)를 꺼내 들었다. 아주 작정을 했지.”
“검황기를요?”
“그래. 대략 십 년 만에 나타난 셈이다.”
검황기.
현재 정도맹의 맹주인 태극검황 백무량이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권력.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검황기였다. 검황기가 나타나면 정도맹의 소속 문파들은 모두 맹주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이다.
십 년을 주기로 딱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물건이기에 함부로 쓸 수는 없었지만 모든 문파가 수평적 관계인 정도맹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이 검황기였다.
“덕분에 본가에서도 나를 포함한 선발대 백오십 명이 정도맹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는 가는 도중에 네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들른 것이고.”
팽가호는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시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숙부님.”
“왜?”
“저도 거기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저 실력 많이 늘었어요. 이제 칼이 가야 될 길이 보인다니까요?”
“고작 그 실력으로 널 거기 데려가 달라고?”
“예.”
팽련휘는 조카의 여전한 뻔뻔스러움에 혀를 내두르며 손사래를 쳤다.
“아서라. 아직 여물지도 못한 놈 데려갔다가 내가 무슨 쌍욕을 먹으라고. 그리고 널 데려가면 형님이 가만히 계실 것 같으냐? 그 자리에서 내가 아주 떡이 되도록 맞을 거다. 아무리 형님이 가주라지만 이 나이에 내가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먼지 나게 맞아야 되겠냐?”
“어라? 아버지도 거기에 와요? 왜요?”
“그럼? 이렇게 큰일에 가주가 빠지리?”
팽련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묻자 팽가호의 얼굴에 절망감이 떠올랐다.
“젠장, 가주면 가문을 지켜야죠. 왜 이렇게 쓸데없이 돌아다니신담.”
“이놈아, 설마 본가에 집 지킬 사람이 없을까 보냐. 그리고 이번 일은 가문의 사활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형님도 나오실 수밖에 없으셨을 거다.”
팽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사활이 걸려요? 마교가 위치상 본가를 직접적으로 치진 못하잖아요?”
팽련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전신 감각을 최대한 열어 주변을 살펴본 후 근방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 다음 은밀하게 입을 열었다.
“이것은 극비 사항이라 말하기가 조금 그렇다만 너는 알고 있는 게 아무래도 좋을 것 같구나.”
팽가호는 눈을 반짝였다. 본능적으로 지금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입을 여는 팽가호도 자연스럽게 은밀하게 속삭이게 되었다.
“뭐, 돈 되는 물건이라도 나왔나 보죠?”
“돈으로는 감히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지.”
“뭔데요?”
“월인도법(月刃刀法).”
“예에?”
“쉿! 조용히 해라. 소문나면 곤란해진다.”
팽가호는 정말 놀랐다.
눈이 휘둥그렇게 뜨여질 정도로…….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서, 설마 그 도마 악중패의 월인도법이요?”
“그래. 마교 놈들이 아마도 그걸 구하려고 십만대산에서 기어 나와 있는 모양이다. 감히 정도맹의 영역까지 무단으로 침입해 온 것을 보면 이 정보는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확실히 월인도법이면…… 그놈들이 눈이 뒤집혀서 갑자기 미친 짓을 해도 이해될 만한 물건이네요.”
월인도법.
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라 불렸던 도마(刀魔) 악중패의 독문무공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악중패는 전설로만 전해진다는 신입(神入)의 경지에 들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실로 어마어마한 고수였다.
‘게다가…….’
팽가호는 생각에 잠겼다.
도마 악중패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그 혼자서 당시 정파의 상징이자 연합체였던 무림맹을 괴멸시켰기 때문이다.
과거 무림맹주이자 정파의 최고수.
화경의 고수였던 신승(神僧) 무호대사.
소림사 출신의 그가 도마 악중패의 칼질 단 세 번을 받아 내지 못하고 세로로 쪼개졌던 사실은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일로 인해 구파일방만의 연합체였던 무림맹이 무너지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힘을 합쳐 새롭게 정도맹을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단 한 사람 때문에 강호의 모든 판도와 질서가 바뀌었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칼을 주 무기로 쓰는 하북팽가로서는 악중패의 그런 압도적인 도법은 분명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만큼 탐나는 물건이었다. 팽련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가는 너무 오랫동안 초절정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솔직한 말로 슬슬 고비지.”
“그렇긴 하죠.”
초절정고수.
즉, 화경의 고수는 가문의 성세를 좌우할 정도로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엄청났다.
“이번에 본가에서 악중패의 무공을 수습할 수만 있다면 가문의 다음 대 고수들 중에서 반드시 화경의 고수가 나올 수 있을 게다.”
“후후. 절 믿으세요, 숙부님. 제가 곧 화경의 고수가 되어 가문의 부흥을 일궈 내 드리지요.”
“응? 네가?”
“예, 제가.”
팽가호는 스스로의 가슴을 손으로 탁치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팽련휘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누가 봐도 억지로 만든 듯한 인조적인 웃음을 입가에 그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팽가호는 숙부의 책 읽는 듯한 어색한 말투에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숙부님, 저 팽가호예요. 절 못 믿으세요?”
‘너 같으면 믿겠냐?’
사실 하북팽가 내부에서도 둘째인 팽가호보다 첫째인 팽효천(彭曉天)에게 더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억지로 쑤셔 넣으며 팽련호가 웃었다. 그로서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난 이만 가 보마. 오랜만에 건강한 모습을 보니 좋았다.”
끝내 ‘믿는다’라는 말을 해 주지 않은 작은 숙부님이 야속했지만 팽가호는 일어서서 나가는 팽련호를 끝까지 배웅했다. 그리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쏜살같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급하게 짐을 쌌다.
“사나이로 태어나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데려가 주지 않겠다면 혼자 가면 그만이다. 격전의 장소에 아버지가 온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눈에 안 뜨이면 된다. 말로만 듣던 마교와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데 이런 촌구석에서 죽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팽가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곳 유기학당에 한 명 더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구나.”
“예.”
“거기 앉거라.”
초류향은 조기천 선생이 마련해 준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기천 선생의 성격 그대로의 방이었다. 검박한 느낌이라고 할까? 가구도 그다지 없었고, 정말로 필요한 물건들만 딱딱 놓여 있었다. 그랬기에 언뜻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를 보자고 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조기천 선생은 말을 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것을 제의할 때는 역시 이렇게 난감했다. 그리고 그는 성격상 이런 난감한 제의는 남에게 평생에 몇 번 해 보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 왠지 그런 느낌이 가득했다. 조기천 선생은 결국 결단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눈앞의 이 똘망똘망해 보이는 소년. 오늘 일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데면데면한 사이가 될 것이 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오늘 분명 일이 있었고, 그것은 평소 모든 일에 무덤덤한 성격의 조기천의 마음에도 작은 파랑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유현국의 일그러진 모습은 왠지 모르게 엄청 통쾌하지 않았던가.
“내 정식 제자가 되어 보지 않겠느냐?”
“……정식 제자요?”
“그래. 산법에 너처럼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는 아이는 내 평생에 처음이다. 어떠하냐?”
초류향은 고민했다.
사실 슬슬 책으로 익힐 수 있는 산법 공부는 더 이상 없었다. 이건 그림 속의 노인이 강제로 주입시켜 준 지식 때문인 것도 이유겠지만 평소에 줄기차게 공부해 왔던 것이 더 컸다. 책에 있는 죽은 지식은 더 이상 초류향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그림 속의 노인에게 배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 노인의 말에 의하면 아직 지닌바 능력이 부족해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 조기천 선생에게 배운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랬기에 고민인 것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행운들이 연달아 찾아오는 것에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한 생각이겠지?’
초류향은 이런저런 쓸데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조기천 선생을 응시했다. 그리고 슬며시 웃었다.
“부족한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마치고 초류향은 곧장 조기천 선생에게 구배지례(九拜之禮, 스승에게 아홉 번 절을 하고 예의를 갖춤)를 올렸다.
조기천 선생은 그답지 않게 눈가를 가늘게 떨며 초류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 먼저 누군가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 본 적이 없었다. 혼인이라든가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에 의해 정해져 있던 혼담과 누군가가 정해 준 안전한 길을 달려왔을 뿐이다.
평생을 돌이켜 누군가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해 본 적도 없었고, 다른 누군가가 접근해 와 준 적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산법에 미쳐서 그것에 파묻혀 살았기에 가족을 돌보지 못했지만 스스로는 매우 행복했다.
‘이런 것인가?’
남에게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은 성격 때문일까?
누군가가 이렇게 기대에 찬 얼굴로 자신을 바라봐 준다는 게 이토록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니.
“스승님이 저를 받아 주셨으니 부족한 제자는 앞으로 열심히 배움을 청하겠습니다.”
조기천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렸다.
어쩌면 자신은 정말 대단한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인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까지는 별반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녀석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지금 네 수준을 보았을 때 너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쳐 줄 것은 사실 그다지 많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네가 지금보다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이 스승을 찾아오너라.”
“예, 스승님.”
조기천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다. 제자는 이미 산법의 계산식이나 수식들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것은 제자의 계산 실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계산식과 수식들을 정말 이가 갈릴 정도로 풀어 봐야 저 정도의 실력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아이에게 무엇을 더 가르쳐 줘야 할까?
어떤 식으로 이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조기천 선생의 얼굴이 한껏 진지해졌다. 생각해 보니 너무 무턱대고 스스로의 만족감에 의해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기천은 혼자서 스스로의 성급함을 자책했다.
잠시 고민해 보던 조기천은 문득 황실에서 자신이 해 왔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것들이 떠오르자 조기천 선생은 밝은 얼굴이 되었다. 처음에는 산법과 그다지 관련이 없는 줄 알았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산법 공부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너에게 이제부터 숙제를 내주겠다.”
숙제?
초류향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스승님은 제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확실에 가깝게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주는 숙제다. 아무래도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래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자, 열심히 한번 해 보겠습니다.”
조기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산법과 상관이 없어 보여도 분명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니 심력을 쏟아 보거라.”
조기천 선생은 말을 마치고 곧장 종이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리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이것은…….”
조기천 선생은 종이에 그리던 것을 마무리 지은 후 뭔가 기대감을 담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겠느냐?”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초류향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숫자들이 매우 유기적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을 정확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무언가를 안에 가두고 있는 느낌입니다.”
조기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엄청 놀라고 있었다. 확실히 그가 받은 제자의 능력은 뛰어났다. 자신도 과거 처음에 이러한 것을 보았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혀 몰라보았지 않은가?
그런데 제자는 달랐다. 저것이 분명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어떤 곳에서 사용되는지도 모름이 분명한데 정확하게 그 요체를 짚어 내고 있었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진법(陳法)이라 부르는 것이다.”
“진법이요?”
“그래. 그것을 내가 수열과 수식으로 풀어 놓은 것뿐이지.”
조기천은 종이를 탁자에 올려놓은 다음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황실에서 나는 산학자로서 맡은 업무 외에 다른 한 가지 일을 겸하고 있었다.”
말을 하며 탁자 위에 놓인 종이를 초류향을 향해 밀어내며 말했다.
“황실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진법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지. 당대에 나 말고 마땅히 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했었던 것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조기천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막상 이렇게 뛰어난 제자를 받아 놓고 가르칠 것이 하나도 없을 뻔했다.
게다가 사실 조기천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황실에 있는 진법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에 내로라하는 최고의 진법가들이 우르르 모여서 머리를 쥐어짜고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황실에 있는 진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혼자만의 힘으로 유지하고 보수했다는 걸 고려하면 조기천 역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이것을 뚫어 보거라. 그것이 내가 오늘 너에게 내주는 첫 번째 숙제다.”
초류향은 아까부터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스승이 내주는 숙제가 쉽지 않을 것임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
진법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한데 그것을 이렇게 숫자로 풀어서 나열할 수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초류향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누가 뭐라 해도 초류향은 이런 쪽에 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해답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
“알겠습니다.”
초류향은 스승에게 읍을 한 후 곧장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스승님이 보여 준 진법은 언뜻 봤을 때 무척 단순하고 쉬워 보였다. 하지만 계속 들여다보니 머리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어려웠다.
그래서 흥분되었다. 아직도 산법에는 자신이 모르는 분야가 많다는 것이 숨길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 숙소에 도착해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다음 종이를 펼쳐 들었다. 초류향은 그것을 바라보며 두뇌를 미칠 듯이 굴렸다.
초류향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진법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냥 지나가는 풍문으로 ‘그러한 것이 있다’라는 정도만 들었을 뿐이다. 그랬기에 처음 수식으로 진법이라는 것을 접했을 때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전혀 다른 세상의 숫자 배열이었다.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풀어 쓴다는 것은 어쩌면 초류향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온전한 형태의 진법.
이런 숫자 배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진법을 눈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만약 이것이 진법의 형태로 눈앞에 존재했다면 초류향으로서도 어떻게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종이는 진법이면서 진법이 아닌 것이 그려져 있었다. 복잡한 수식들이 어지럽게 꼬여서 하나의 그림처럼 만들어져 있는 상태. 초류향은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은 진법이 아니라 그저 산법의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그렇게 마음먹자 심장이 미칠 듯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진법이라는 ‘어떤 것.’ 그것을 이런 식으로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그림 속에 있던 노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몰랐다. 진법이 가능하다면 분명 다른 것들도 이렇게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그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천천히 하나씩. 조급해하지 말고.’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좁고 가는 호흡은 시야와 생각을 좁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은 깊은 생각과 넓은 시야가 필요했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초류향은 안경을 고쳐 썼다.
진법이든 다른 무언가든, 이렇게 수식으로 쓰여 있다면 초류향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산법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니 이것도 그다지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괴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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