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못할 것, 벗어나지 못할 너 @Redsign

in #kr7 years ago

깜깜한 밤.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 아래. 새벽 2시가 지나가는 시간, 지나가는 사람이라곤 없어 한기만 감도는 공원에 마주보고 선 그녀와 그가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서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눈, 볼, 할 것 없이 온통 붉었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그녀는 지쳤다는 듯 닦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가로등 빛이 닿는 곳을 벗어나 깜깜한 시야 속, 그의 표정은 입가는 웃고 있지만 눈은 옷고 있지 않은 괴상한 모양새였다. 사이에 가로등 하나를 두고 선 그들은 서로 닿지 못하는 평행선 상에 선 듯 서로의 사이에 간격을 유지한 채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날 사랑해?"

그녀가 먼저 정적을 깼다. 그녀의 날이 선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들렸다.

"좋아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마치 반사적인 듯 질문에 대답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지 않았다.

"날 사랑하냐고 물었어."

짜증스럽게, 그것보다 더한 감정으로 미간을 구기는 그녀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조금 북받쳐 올랐다.

"좋을 대로 생각해."

마찬가지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한 그는 가로등 옆의 벤치에 앉았다. 그의 대답은 귀찮은 듯, 또는 귀찮지 않은 듯 알 수 없게 들렸다.

"와서 앉아."

그가 손을 뻗었다.

"네 옆에 앉기 싫어."
"그래봤자 어차피 나중이 되면 결국 내 곁으로 오게 될텐데."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은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아 잡아당겼다. 강제로 그의 품에 안긴 그녀는 마치 닿으면 안 될 것이 몸에 닿은 것처럼 그의 품을 밀어냈다. 그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내 몸에 손 대지 마!"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세차게 가격했다. 피부가 찢어지는 것만 같은 마찰음이 공원의 적막함을 일그러트렸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흘러 떨어졌다. 그를 핏줄이 선 눈으로 노려보는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맞은 뺨에 손바닥을 댄 그는 입가의 웃음기가 가신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서슬퍼런 그의 눈빛에 그녀는 주춤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하하하하하!"

그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눈가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짙어진 채로 입꼬리만 끌어올리고서 고개를 숙이고 웃는 그의 모습은 이상함을 넘어 소름이 돋도록 공포스럽게 보였다. 그의 웃음소리가 공원 전체에 넓게, 크게 울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못 박힌 것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질려갔다.

"꽤 귀여워."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 그의 그림자가 그녀를 뒤덮었다. 그가 그녀를 향해 한 발을 내딛자 그녀는 뒤로 네다섯걸음을 물러났다. 그녀의 겁먹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해, 그녀에게 충분히 겁을 주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의 시선에 옭아매인 것처럼 그녀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지질 못했다. 그녀의 몸이 아까 전보다 더욱 세차게 부들부들 떨렸다.

"오, 오지 마."

두려움에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싱긋 웃었다.

"넌 내게 언제나 널 사랑해달라 말하지."

그의 손이 그녀의 턱과 목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숨이 헉하며 넘어갔다. 그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에 바짝 가까워졌다. 그의 손가락이 점점 그녀의 목으로 내려갔다. 힘이 조금씩 실리기 시작하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다가오면 피해."
"끄윽, 하, 우으윽"
"날 제대로 밀어내지도 못할 거면 겁 먹은 고양이마냥 바짝 곤두서서는."

그녀의 얼굴이 숨이 넘어갈 듯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다. 그의 손등에 그녀의 손톱이 깊게 박혔다. 작은 호선의 상처들이 붉은 피와 함께 생겨났다.

"꽤 귀여워."

그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그리곤 기괴하게 비틀어졌다.

"소용 없을 거 뻔히 알면서도 바락바락 대드는 꼴이 귀여워서 봐줄 수가 없어."
"학, 끅... 살ㄹ... 컥!"

점점 힘이 빠지는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점점 초점이 흐려져 갔다. 그것을 보며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살려줄게."

그는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던 손을 풀었다. 그녀의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 무너졌다. 바닥에 엎드려 쓰러진 그녀는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침이 그녀의 입에서 덩어리져 토해내졌다. 그는 선 그 자리에서 그것을 지켜보다 다리를 구부려 앉아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다. 몸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간 그녀의 고개와 상체가 고통스럽게 그의 손에 들렸다.

"앞으로도 어디 계속 그렇게 해봐."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는 그의 눈에 그녀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슬픔과 불안, 공포와 두려움 등이 집약된 표정. 그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호선으로 휘며 웃었다.

"좋아해."

그의 심장이 고요히 째깍거렸다.


부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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