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에게 ‘전통과 현대문화가 복합 된’이라는 문장을 제시하였을 때 무엇이 현대이며 전통인지 확실한 대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개념을 생각할 찰나도 없이 우리는 이미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현대’의 개념을 ‘과거(=전통)’로 잊어 가고 있으며,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현상 속에서 더욱이 멋있는 것들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것들을 더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시간적 개념만 다를 뿐 전통과 현대문화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닐까.
쉽게 설명하자면 강남역 10번 출구 바로 앞의 뉴욕제과는 이제 찾을 수 없는 곳 이다. 이를 보지 못한 젊은 세대는 패션 브랜드명만으로 건물을 기억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을 보여주듯 과거는 더 먼 과거로 사라진 일례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원하는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가 복합 된 흐름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과거에 이어지는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와 같은 기대이다. 뉴욕제과 다음이 에잇 세컨즈 였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욕구. 이건 반대로도 요청 될 수 있다. 에잇 세컨즈 전에는 무엇이 있었대와 같은 과거를 보고 싶어 하는 심리와 같이.
이와 같이 과거를 확고히 지키고 있는 예가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어 가다보면 뭐하는 건물인지, 어찌 보면 우울해보일 수 있는 그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미술전시 포스터가 없었으면 미술관이라는 건물 성격을 모를 법한 공간이다. 그 이유를 따라가 보면 본래 조선 말 개화기 때에 재판소로 사용된 건물로 1920년대의 건축양식을 추구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옛 건물의 파사드(건축물의 정면, 앞면을 말하며, 건축 의장의 중심점이 되기도 한다. 고딕의 사원 등에 있어서는 그 파사드를 장식하여 위엄을 강조하고, 하나의 양식을 구성하고 있다. *참조:모발학 사전, 류은주 외, 2003. 5. 22., 광문각)만 그대로 보존한 채 신축한 건물로 앞의 전경에 감상하다가 공간 안으로 들어가 보면 신식 건물과 별다를 것이 없다. 중세 유럽 11세기에서 12세기에 발달한 그리스도 교 미술 중 하나인 로마네스크 양식을 사용하며 둥근아치형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는 후에 지어진 관공서의 전형이 되어 널리 보급 되었다. 이 때문에 동양속의 유럽을 보여주고 있어 재판소 이후 미술관이라는 성격을 가지게 된 것 자연스런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시공을 진행하였던 삼우설계는 미술관 로비에는 '현재의 벽'을 세워 보존된 '과거의 벽'에서 배면의 '미래의 벽'으로 시간의 흐름을 이어주었다. 재판소라는 장소는 어련 품한 기억 속으로 잊혀져, 그대로 미술관이라는 상징으로 관람객들에게 기억이 남고 있다. 외부에서는 근현대사를 잊지 못하게끔 역사적 상징에서 출발되어 내부로는 전시 관람에 중점을 두어 과거를 잠시 잊혀 두게 하는 이 파사드 장치. 서울시립미술관은 파사드의 보존으로서 근대 건축물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시민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로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은 분리하려고만 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와 현재는 우리의 주변에 자연스레 존재 하듯이 공존해야한다. 어떻게 과거를 유지하며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바꾸어버리자 하는 ‘함부로’의 결단력은 세심하고 오랜 생각 속에서 살아있는 문화를 만드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외벽만을 보고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앞으로만 나아가려는 현대인들의 모습일지도 않을까.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로 더더욱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 외관이 과거에 멈춰있을지라도 말이다. 결국 조화란 내가 과거의 외관을 감상하고 현대라는 그 장소에 서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