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하나둘>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일본 총리가 자신의 수호령을 만나게 되면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파벌 구조에 휘둘려왔던 소심한 총리는 죽음을 앞두고 뜻을 세운다. 일본 사회 전체의 원전을 완전 폐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기성 정치권과 원전 마피아의 저항은 총리라는 위상을 뒤흔들 만큼 거셌다. 마침내 그는 인생 최후의 결단을 내리려 후쿠시마로 향한다. 마지막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현실 정치와 사후 세계를 뒤섞어놓은 묘한 장르의 작품인데, 사건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아무튼 재미있다. 강력 추천한다.
2017년 여름 한국 사회를 보면서 이 작품을 떠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19일 “원전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입에서 ‘탈원전 선언’이 나온 것에 전율이 일었다. 대선 기간에 문재인 후보 자문위원 중 ‘친원전 인사’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기에 이날 선언은 더욱 놀라웠다.
길은 험할 것이다. 이미 울산 지방의회 의원들이 원전 중단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고 나섰다. 정부 관료와 산업계의 저항도 상상 이상일 것이다. 원전 지역마다 극심한 주민 갈등이 쌓여왔음을 생각하면 장애물은 도처에서 솟아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날, 일부 보수 언론은 일본 정부가 에너지 비용 상승 등을 이유로 탈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탈원전은 어쩌면 비현실적인 꿈이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을 보고 어떤 정치인과 관료는 이렇게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희가 과연 전기를 아껴 쓸 수 있을까? 전기료 상승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곧 한여름이 닥치면 여기저기 전력 수급 문제가 불거질 텐데? 여론은 또 뒤집어질 거야. 그게 너희, 아니 우리의 한계야.”
탈원전은 그래서 거대한 꿈이다. 근대화 이래 우리 사회 전체가 경제 논리에서 ‘다른 선택’을 한 적은 없다. 안전이 시대의 화두라지만, 돈 앞에 번번이 무너져왔다. 대참사를 겪은 일본조차 사후 세계를 등장시킨 예술작품으로 겨우 논의의 물꼬를 트는 지경이다. ‘거대한 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믿게 하는 수밖에 없다. 나뿐 아니라 내 이웃도, ‘비용’과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믿음이 자라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탈원전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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