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9월 13일 사형수 오휘웅
한 청년이 있었다. 1979년 9월 13일 그가 사형대에 올라갈 때 나이가 만 서른 넷이었으니 1974년 그와 한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가족 모두를 파괴해 버린 끔찍한 일이 있었을 때 그는 20대의 총각이었다. 그는 나무호랭객교, 즉 일련정종 불교회의 포교사였고, 사진으로 볼 때 꽤 준수하게 생긴 보통 청년이었다. 그런데 포교 활동 도중 한 여인을 만난 것이 그에게는 불행이었다. 여자의 증언에 따르면 청년은 그에게 '반장' 직위를 주고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둘 사이는 치정 관계로 발전했고 특히 여자는 그에게 매달릴만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는 좀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그를 열렬히 좋아하는 처녀도 있었고, 혼담도 무르익어 가는 상태였다. 더구나 여자는 애 둘의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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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974년의 해가 저물던 12월 30일 그 여자의 집에서 살인이 난다. 하나도 아니라 셋 씩이나 죽은 것이었다. 병약하여 아내의 불만을 샀던 남편과 그 아이 둘이 모두 수면제를 먹고 잠든 상태에서 목이 졸리고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강도 사건으로 위장하려 했지만 사실은 착착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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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수면제를 탄 것은 여자였고, 아이들을 잠재운 것도 그녀였다. 그녀는 범인으로 남자를 끌어들인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여 함께 살자 했고, 저것들만 없으면 당신과 행복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 조사에서 그녀는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저이가 죄값을 치른 뒤엔 함께 할 것"이라고까지 얘기한다. 경찰과 검찰에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던 남자는 모종의 심문(?) 끝에 자기 죄를 인정했지만 법정에서는 또 다시 부인한다.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여자의 태도가 돌변한다. 공범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남편과 자식들을 죽이면서까지 매달리고자 한 남자가 저 혼자만 빠져나가려는 데 대한 분노인지 알 길은 없으나 남자를 "악독한 자"로 지칭하며 사형에 처해 달라고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남자는 유력한 알리바이가 있었고 이에 대해 증인을 신청한다. 일련정종 지역회관의 사무장과 그 신도들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사건 당일 남자가 저격 7시 30∼40분 사이에 회관에 도착했다가 밤 8시 10∼20분 사이에 좌담회에 간다고 회관을 나갔다고 증언했다. 이는 사건 직전과 직후에 남자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뜻이다. 여자의 몸에는 피가 묻어 있었는데, 정작 칼을 휘둘렀다는 남자는 핏방울 하나 묻어 있지 않았고 태연하게 얘기 나누고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이 증인 신청 직후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여자가 그예 구치소 안에서 목을 매 버린 것이다. 용의자 중의 하나이자 가장 유력한 증인이자 목격자이기도 한 이가 일거에 사라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남자는 "이제는 빠져나갈 수 없게 됐다."고 내뱉았다고 한다. 이제 용의자는 세상에서 하나 뿐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본 여자 수용자들은 여자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술회했다.
" '남자 쪽은 변호사를 대고 증인이 2명이라 나는 불리하다'고 하면서 나를 증언해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낙심하고 있었으며, 죽기 30분전쯤에는 '누명쓰게 됐다'고 연거푸 네 번씩이나 말을 한 후 결국은 죽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여자는 아이들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며 아이들에게 새옷을 입혀 준 꿈을 꾸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범인은 남자라고 누차에 걸쳐 주장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진실해진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남자의 예감대로 재판은 진행된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한다. 일련정종의 독실한 신자이자 포교사였던 그는 기독교로 개종하면서까지 마지막 희망을 잡으려 애쓴다. 신이 있다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신에 대한 용서와 귀의를 종용하던 교화사와 부딪치기도 했다. (이 해프닝은 교도소에서의 교화 작업이 기독교와 천주교에 국한되어 있었던 현실 탓도 있을 것이지만) 1979년 9월 13일 마침내 사형 집행 명령이 떨어진다. 이 사건을 심층 취재했던 조갑제 기자의 역작 기사 <사형수 오휘웅> 중에서 사형 당일 일어났던 일을 옮겨 본다. - 남자의 이름이 오휘웅이다.
"1979년 9월 13일, 드디어 그날이 오휘웅씨에게 찾아왔다. 오씨가 연출조에 이끌려 구치감을 나섰을 때, 그를 맞은 당시 교무계장 황정남씨에 따르면, 오씨는 당황하지 않고 중심을 딱 잡고 있더란 것이다. 사형장까지 난 길 양쪽에 서 있는 낯익은 구치소 직원들을 보고는 '감사합니다' '나 먼저 갑니다'고 일일이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은 오씨가 '아주 양순하게 가줄' 것이라고 믿고 안도했었다고 한다. 사형수가 구치감을 나설 때의 태도를 보면 그가 어떻게 죽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씨는 강도살인범 전광국씨 등 일곱 명의 사형수 가운데 세번째로 집행장에 끌려 왔다. 앞의 두 사람이 처형될 동안, 오씨는 감방에서 불안 속에서 기도를 올리면서 '혹시 내 차례가 아닌가'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렸을 것이다. 오씨가 사형집행장 마루 위 돗자리에 앉혀진 것은 오전 11시 반쯤이었다. 인정신문 뒤 집행관이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따라 지금 이 자리에서 사형을 집행합니다. 유언이 있으면 하십시오'라고 하자 오씨는 모든 사형수가 그러듯 잠시 멈칫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사형에 대비해온 사람도 유언을 하라고 할 때 죽음을 더욱 실감하게 되고, 집행의 순서를 모르고 형장에 나오기 때문에 갑자기 할말이 떠오르지 않아 으레 멈칫한다고 한다. 오씨도 입에서 침이 마른 듯 머뭇머뭇하다가 어렵게 입을 멨다. 처음 몇 마디는 떨렸으나 곧 당당하게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꿇어앉아 합장기도 하는 자세였다.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도 아십니다'
'하느님, 천당 가게 해주십시오. 저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느님도 알고 계십니다. 저의 유언을 가족에게 꼭 전하여 제가 죽은 뒤에라도 이 원한을 풀어주도록 해주십시오. 여기·검사·판사도 나와 있지만 (필자주 : 판사는 집행장에 안 나옴) 정신 바짝 차려서 저와 같이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도록 해주십시오. 이런 엉터리 재판 집어치십시오! 저는 기독교인으로 죽습니다.'
대강 이런 취지의 말 끝에 오씨는 저주를 남겼다.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위증한 사람들과 고문수사한 사람들과 오판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는 가슴 서늘한 이야기였다. 오씨가 이 저주를 할 때는 자제력을 잃은 듯 흥분했었다고 한다. 형장에 있었던 사람들 중엔 소름이 끼치더라고 실토한 이도 있었다.
오씨는 그뒤의 집례에 양순하게 응했고, 집행에도 의연하게 따라주어, 사형집행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을 빌면 '편안하게 잘 갔다'고 한다. 오씨가 밧줄에 매달려 있는 동안 집행 참여자들은 건물 바깥느티나무 밑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했다. 서울구치소 보안과장이 참여 검사에게 물었다.
'영감님, 오판 아닙니까?' 검사는 교무계장에게 '억울하다고 죽는 사형수가 많습니까?' 하고 물었다. 계장은 '아니오. 나로선 처음입니다'고 했다. 보안과장이 '상담할 때도 그랬어?' 하고 다시 물었다. 계장은 '그걸 모르셨어요? 오휘웅이는 안죽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검사는 이때 말없이 땅만 내려다보더라는 것이다. "
그가 정말로 범인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담당 형사들은 지금도 그가 범인이라고 믿고 있다고 하며, 판사는 조갑제 기자에게 "사건의 일부를 본 사람과 전부를 들여다본 사람의 차이"를 얘기하며 오휘웅을 무죄로 몰아간 기자를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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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사형 폐지론자가 아니다. 사형이라는 극형의 존재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죽어 마땅한 이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강제하는 것은 때로는 정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휘웅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면 그 생각이 좀 흔들린다. 정말로 그가 억울하게 죽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나라가 조사하고 나라가 판결하여 무고한 한 생명을 거둔 것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으며 무슨 수로 보상할 수 있으며, 오휘웅이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신과 사후를 믿는 자로서 그는 그 범죄의 유무에 따라 처분을 받았으리라 믿지만, 만약 그가 무죄였다면 과연 그를 일찍 신에게 보낸 이들은 신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하여야 하며, 어떤 처분을 받게 될까. 1979년 9월 13일 오휘웅은 이런 엉터리 재판 걷어치우라고 외치며 목이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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