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버그 부부 사형 선고

in #kr6 years ago

1951년 4월 5일 로젠버그 부부 사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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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온갖 공을 들여서 원자폭탄을 개발한 단 4년 후 1949년 8월에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핵폭탄 독점 시대는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스스로 써먹은 무기의 위력을 익히 아는 미국은 놀랄 수 밖에 없었고 소련의 정보 수집 능력에 경악한다. 사실 소련의 정보망은 꽤 무섭긴 했다. 아인슈타인도 KGB 애인을 두었다고 하고, 미국의 맨하탄 계획 (원자폭탄 개발 계획)은 고스란히 소련에 전달되고 있었다. 포츠담 회담에서 원폭 실험에 성공했음을 자랑스럽게 전달하는 트루먼 앞에서도 스탈린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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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동맹국은 빠르게 불구대천의 원수가 돼 갔다. 그 무서움을 바탕으로 등장한 것이 1950년 2월의 매카시였다. 밑도 끝도 없이 내 손에 205명의 국무성 내 공산주의자 명단이 있노라는 그의 부르짖음은 미국 사회를 패닉으로 몰아간다. 결국은 그 자신 패가망신했지만 매카시 쇼크는 컸고 지금도 간간이 그에 빙의된 인간들이 극동의 한 나라에 자주 출몰하곤 한다.

그 와중에 맨하탄 계획에 관여했던 영국의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가 체포되어 소련에 기밀을 누설한 것을 자백한다. 발칵 뒤집힌 미국정부가 그 공범으로 체포한 사람 가운데 그린그래스 중사라는 군인이 있었고 이 사람이 로젠버그 부인, 에셀 로센버그의 동생이다. 그린그래스는 자신의 기밀 누설 통로가 누나와 매형 부부였다고 증언하고 로젠버그 부부는 체포된다.

그린그래스는 후일 자신과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 누나 부부를 끌어들였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건 그의 증언이 거의 유일한 근거로 받아들여지는 가운데 로젠버그는 반역자로서 재판을 받게 된다. 1950년 6.25가 터진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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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보도 못한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미군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상황이라 그랬을까. 로젠버그 부부에 대한 재판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된다. 1951년 4월 5일 재판장 카우프만 판사의 판결은 황당할 정도로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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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고인들의 행동이 살인보다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러시아에 기밀을 넘겨 줌으로써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야기시켰고 (증거는?) 5만명의 희생을 낳았다. (너희들 때문에 5만 명이 죽었다?) 고로 사형을 선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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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버그 부부는 끝까지 자신들이 무죄임을 주장한다. 서로의 목숨보다도 자신들의 무죄함이 더 소중하다고 여겼고, 어떤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피카소와 샤르트르, 심지어 교황 피우스 12세까지 로젠버그 부부의 사면을 청원하지만 백만불짜리 미소의 소유자라 불리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끝내 그들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두 달 뒤 그들은 전기의자에서 그들의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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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연은 오래도록 미국의 양심의 목구멍에 박힌 가시였다. 그런데 냉전이 끝난 뒤 러시아측의 기밀 문서가 해제되면서 로젠버그가 실제로 간첩 행위를 했음을 드러내는 기록이 공개되었다. 로젠버그 부부가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두 아들은 부모의 누명을 벗기려고 평생 노력해 왔지만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부모의 무죄보다는 유죄를 증명할 근거가 점점 불어났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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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버그 부부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한국전쟁의 포화가 부른 광기 속에 죽어갔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정말 간첩으로서 소련의 핵폭탄 개발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면 더욱 그렇다 만약 소련이 원폭 개발에 실패했더라면 그래서 미국의 핵독점이 지속되었다면 , 미국은 맥아더가 목놓아 소원했듯이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원자폭탄 서너 개를 떨어뜨리는 데에 그리 큰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한국은 지상최대의 방사능 천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반대의 시각도 존재한다. 이즈음 소련으로 흘러들어간 핵폭탄 제조 비밀 때문에 소련이 자신감을 얻었고 줄기차게 남침을 요청해 온 김일성과 박헌영의 요구를 일관되게 거절해 왔던 노선에서 벗어나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허락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시각이 맞다면 또 한국에 재앙을 불러들인 이들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로젠버그 부부가 사실상 간첩이었다고 해도 그 죽음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젠버그 부부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빈약한 증거와 심증만으로 평범한 시민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수십 년 뒤에 나온 증거가 그들이 받은 부당한 형벌을 합리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간인 학살을 저질러 놓고 그 민간인들 사이에 빨갱이가 끼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자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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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건 보는관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수있을지도요.
비슷한 상황으로 아프간에서 미군들이 적군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을 직접적인 위협도 아니며 불쌍하다는 이유로 놓아주었더니 적들에게 미군의 위치가 노출되어 분대가 전멸하는 사건이 있었죠.
분명 그들이 무고한 아이들일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최선의 판단이었겠지만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죠.
결국 모든일은 결과론적이라는 겁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기위해서는 더 높은 확률에 베팅을 하는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거죠.
결국 그들은 실질적 미국의 위협이었으나 철두철미한 간첩이었고 미국도 약간은 비이성적이지만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방향으로 베팅을 한겁니다.
만약 간첩들로 인해 미국이 무너졌다면...? 모든일에 기분좋은사람만 있을순 없는거죠.

그렇다고 (증거없는) 사형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프간의 미군들도 그렇다면 그 아이들을 잡아두면 되지 그렇다고 죽여야 하는 건 아니고요.

결과론에 앞서서.... 증거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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