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악마는 지옥에서 보인다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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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악마들은 지옥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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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터지고 부산과 동래의 저항을 격파한 일본군은 그야말로 사람 없는 들을 가듯 서울길을 내달렸다. 상주에서 이일이 패퇴하고 충주에서 신립의 군대가 전멸한 뒤로는 조선에는 일본군을 막아낼 어떤 물리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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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을 방어하고 싶어도 금군(禁軍:궁궐 호위병)까지 신립에게 딸려 보낸 마당에 창을 들 병사조차 없었다. 임금은 피난을 가야 했다. 적어도 왕국에서 왕이 적에게 잡히면 그 나라는 끝장이 나는 것이다. 신립이 전사한 충주에서 서울은 250리, 일본군은 바짝 행군하면 며칠 만에 한양에 들이닥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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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피난, 즉 몽진은 한때 금기 단어였다. 도성을 버리면 그걸로 끝이라고 울부짖는 사람도 많았고 종친들도 줄을 지어 통곡했다. 싸우기도 전에 도망부터 가느냐고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 그리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들 중에 온 가족을 미리 피난시킨 이들도 꽤 됐다는 유쾌하지 않은 사실만 빼면 꽤 비장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온 조선이 철벽처럼 우러르던 신립의 군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은 한양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 피난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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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채비도 갖추지 않은 어가가 출발했다. 위엄은 고사하고 모양새도 엉망인 피난길이었다. 너희들은 도망가고 우리들은 앉아서 죽으라는 말이냐며 분노한 백성들은 궁궐에 난입하여 불을 질렀다. 임금까지 밥을 쫄쫄 굶고 임진강 건너 동파역에 이르렀을 때 파주 목사와 장단 부사가 임금에게 먹일 수랏상을 준비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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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굶주림에 눈이 뒤집힌 어가 호송인원들이 먼저 수랏상에 달라붙어 싹싹 긁어먹었다. 파주목사와 장단부사가 악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충 상황이 끝나자 배부른 쪽도, 열 받은 쪽도 사색이 됐다. 임금 먹을 밥을 먹어치운 놈들도, 지키지 못한 놈들도 무사할 리 없었다. 다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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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판을 거치고서야 어가는 개성에 도착한다. 더운 밥 먹고 구들장에 등을 좀 지지자 또 소란이 시작됐다. “이 몽진을 누가 기획했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에 말 좀 한다는 자들이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비난은 영의정 이산해에게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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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해를 목 베어 죽여라.” 영의정으로 앉아서 임금 소매 붙잡고 몽진 갑시다 앞장서서 주창했으니 그 죄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사헌부와 사간원 모두 이마를 싸매고 덤볐고 이산해를 죽여야 한다고 합창했다. 그 시간에도 일본군은 임진강 너머 한양으로 밀려들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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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대응도 한심했다. 사실 잽싸게 피난 가고 싶은 마음이야 자기가 더했고 이산해는 거기에 장단을 맞춘 것 뿐이었다. 그러면 그렇게 말을 하든가, 엉뚱한 사람을 끌어들인다. “피난 가는 날 나를 말리지 못한 게 어디 영의정 뿐인가 좌의정 유성룡은 그럼 어쩌라고? 같은 죄인인데 왜 그 사람은 말 안해?” 유성룡을 물귀신으로 끌어들여 이산해를 보호하겠다는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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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해를 파직한 뒤 유성룡이 영의정이 됐지만 유성룡 역시 날아간다. 이산해를 치려면 유성룡도 쳐야 한다는 억지 때문이었다. 이산해가 귀양을 가자 또 유성룡도 귀양 보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에 유능한 행정가, 명나라 사람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수완의 유성룡이 전쟁 중인 조선 조정을 떠나야 할 판. 여기서 이항복 등이 나서서 도대체 이렇게 사람 다 내치고 누가 전쟁할 거냐고 주변을 설득해서 겨우 귀양은 면한다. 그런데 유성룡이 파직된 건 5월 3일이었는데 이미 5월 2일 일본군은 한양을 점령하고 있다. 영의정과 좌의정이 동시에 날아간 조정은 부랴부랴 짐을 싸서 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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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이나 재앙을 맞아서 가장 저주스러운 부류는 그 난리통에 이득을 보려는 것들이다. 작게는 매점매석으로 돈 벌어 보려는 잡것들로부터 크게는 지옥이 된 나라에서 악귀들과 싸울 생각은 않고 누가 악귀를 불러왔는가 책임론을 설파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고 증대시키려는 놈들이다. 진짜 악마는 역시 지옥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바로 선조 임금 같은 자들이며, 일본군이 코 앞에 닥쳤는데 누구를 죽여라 마라에 더 기승을 부리던 놈들이며, 난데없이 ‘의료 사회주의’ 운운하며 골병 들어가며 바이러스와 싸움 중인 사람들 등짝에 빨갱이 딱지를 붙인 중앙일보나 의사협회 돌팔이들이며, 그저 큰일났고 이게 다 정부 탓이라며 공포 분위기 조성에만 급급한 나쁜 언론들, 그리고 미통당 부류의 수구꼴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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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이 위기는 기회다. 다른 사람들이 죽건 고통 받건 관심이 없다. 한동안 누리던 권력의 곳간 열쇠를 빼앗긴 지금, 어떻게든 그 곳간 열쇠를 털어올 궁리 뿐이다. 그러자면 지금 곳간지기들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어야 하며, 다가서는 위기에 앞서 그 위기를 가져온 놈들이 그들이라고 악을 써서 주장하는 게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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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오든지 말든지 피난 주장했다고 영의정은 때려 죽여야 하고, 영의정만 처벌할 수 없으니 좌의정도 처벌받아야 하고, 그리 하옵소서 아니되옵니다 하는 가운데 일본군은 콧노래 부르며 한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누구 책임이라고 팔뚝질하던 것들은 고스란히 평양으로 도망갔다. 상것들이야 죽든지 말든지 나는 임금 눈에 들면 되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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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악하기까지 하다. 미통당이라고 일컬어지는 저 수구 세력들은 정말로 일말의 양심도 없다. 이런 지경에 옥중서신까지 내 가며 (고생했다. 그 대가리에서 맞춤법도 맞고 비문도 없는 글이 나오다니) 삽질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까지 겹쳐지니 절로 욕설 교향곡이 창작된다. 나쁜 놈들. 일본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 들렸을 때 조선 조정이 처음 한 일은 일본이 안쳐들어온다고 주장한 김성일을 잡으려 보낸 것이었다. 그때 김성일을 옹호한 이 중 한 사람이별안간 세자가 된 광해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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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보리는 흔한 곡식입니다. 그러나 흉년에는 보리 한 되로도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성한, <임진왜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이고 뭔가 해 보려는 사람들은 눈에 핏발이 서고, 다들 합심해서 위기를 대처해도 모자란 판에, 자기 쌀 바라고 보리 싹을 짓밟는 사람들이 있다. 재앙과 싸우려하지 않고 그 재앙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저 개.새.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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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런 참혹한 난장판을 지켜보던 한 의관이 시를 남겼다. 작자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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催隊集站慨色起 최대집참개색기
무리를 재촉하매 저마다 우두커니 서 분노의 빛 일으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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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殃日堡衰塞棄 중앙일보쇠색기
버거운 재앙의 날, 요새들은 쇠락하고 변방은 버려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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餓渴統地底多苛 아갈통지저다가
배고픔에 목마름 합쳐지니 땅 아래까지 가혹함 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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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火紊衛乃乞離 광화문위내걸리
미친 불 어지러우매 호위병마저 이내 떠나기를 구걸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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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의 시가 제일 속 시원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은 돌아온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기울어진 것 같네요. 특히 언론지형은.

아우, 진짜!! 소리가 절로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