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컬한 신체 아픔이 있다. 어떤 걸 원하지만 도덕적으로 그걸 바라면 안될 때, 대신 신체가 아픈 것이다. 그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증상이라고 한다. 사랑하면 안될 사람을 사랑할 경우 아픈 경우도 그 중 하나다. 그 사람을 원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건 부도덕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의식적으로는 그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욕동은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겉으로 표현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신체적 아픔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증상이란 게 [해석]에 기반한다. 그런데 그 해석이 [사후]해석이다. 즉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런 일은 부도덕했다고 나중에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 그리고 부도덕했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나중에 그 일이 있다고 기억+상상하며, 그 일은 부도덕했다고 판단한다.
그런 사후 해석이 잠재되어 있다가 유사한 사건이 있을 때 증상으로 발현된다. 즉 예전과 비슷한 이성의 관계가 있을 때, 그건 부도덕한 것이라는 해석 필터링이 있다. 그리고 그 의식필터에 막힌 욕동은 증상으로 표현된다. 몸이 아픈 증상. 그래서 이성의 관계에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아프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체적으로 아픈 것들은 욕동의 증상일 수 있다. 문명 속에서 자연의 욕동은 그대로 발현되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숨겨져야 한다. 게다가 억압되어야 한다. 그런 문명 속 불만은 터져 나오게 되기 마련이다. 마치 최근 정치 뉴스가 막장 드라마 뉴스가 된 것처럼. 기축통화 초자아의 억압에 암호화폐의 욕동이 터져 나온 것처럼.
증상은 사후해석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걸 해소하는 것 역시 해석에 달려 있다. 욕동을 승화시키는 더 큰 프레임의 해석.
내 마음의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 그의 포스트에 대한 내 가장 친한 친구 감사합니다, 나는 아체 인도네시아 출신이 게시물과 통찰력을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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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hhhh
lol
욕동과 인간은 역시 땔수없는 한몸이네요. 짭.
네~ 인간 문명은 욕동에 기반하니깐요. 인간은 이미 자연이 아니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