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생각으로 호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LGBTQ+에 오픈되어 있는 나라이다.
물론 동성 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나라는 많이 있지만, 잠시 잠깐 겪어본 호주는 정말 one of the most LGBT Friendly countries가 맞다고 생각한다.
결혼이 아니더라도 호주에서는 둘의 관계만 진실하다면 LGBT 이민자에게도 영주권을 발급해 준다. 이렇게 관대하기 때문에 아마 세계에서 파트너 비자 (파트너를 통한 영주권)을 받는 것이 제일 비싸고 오래 걸리는 나라인 거 같기도.
성소수자의 연애와 결혼도 모두 가능한 이 나라는 Straight의 연애는 얼마나 더 개방적일까?(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Straight 칭하는 단어가 있는지 궁금. 이성애자?) 얼마 전 언급했던 리얼리티 쇼인 MAFS (Married at first sight)를 보면서 일반 여자 참여자가 "I want to have sex with him"이라고 지상파 방송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말을 하는 걸 보고 (물론 방송이긴 하지만) 역시 우리나라는 성에 관해서는 개방과는 먼 나라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는 내가 티비에 나가서 "오늘 밤엔 남편과 섹스를 하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단번에 네이버 검색 1위에 이름이 올라갈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도 점점 변하고 있지만 이미 변화가 완료된 나라로 이주해 오니 크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연애와 성문화에 꽤나 오픈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남녀가 사귀면서 전남친/전여친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 것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과거가 아예 없다면 모르겠지만 과거의 연애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사람들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의 연애는 과거의 연애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전 남친이 없었다면 내가 현재의 남친을 만날 수 있을까? 모든 과거에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다음의 연애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호주에 와서 처음 지냈던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영국에서 왔다는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호주에 왜 왔냐는 질문에 여자친구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 여자친구는 지금 살고 있는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을 했고 아마 조금 떨어져 있는 여자친구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자친구도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겠지)
J와 연애하고 조금 지나서 나는 전 여친과 여행을 가본적 있냐고 물어봤던 거 같다. (물론 우리는 친구로 시작한 사이라 대충 다 알고 있었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칠색 팔색을 하며 질문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그 뒤로도 왜 헤어졌는지, 무엇이 전 연애를 끝나게 했는지 나는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었다. 사실 남의 연애도 궁금한데 내 남자가 과거 무슨 이유 때문에 이전의 관계를 청산했는지 궁금한 건 당연하지 않은가? (나만 이상?)
J는 그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표준적인 마인드와 LGBT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물론 J는 짧은 해외 생활로 한국에서의 연애,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이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J는 호주에 와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남자들이나 같이 손잡고 피크닉을 하고 있는 노 신사 두 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고 성소수자들의 취향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물론 나도.
그런 J가 경악할 일이 그저께 있었다. 매주 수요일 러닝 클럽으로 달리기를 하러 간 게 3주가 되었다. 매번 달리기를 참여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이 중 한 사람이 인스타 팔로워 수가 많은 인플루언서이다. 남자친구와 매주 꽁냥꽁냥 귀엽게 와서 달리기를 하고 열성적으로 인스타그램을 한 탓에 나도 팔로우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보던 중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려 보였는데 결혼을 엄청 빨리한 거 같아 J에게 결혼사진을 보여줬더니 매일 같이 오는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아, 그럼 이혼을 하고 새 남자친구를 만나나 보다고 생각을 했다. 요즘 이혼이 뭐 흠이야..
J는 거기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혼도 하고 이혼도 했는데, SNS에 결혼사진도 그전 남편과 연애한 사진도 모두 지우지 않고 고대로 두었다는 것. 그리고 현 남친과의 사랑스러운 사진도 여전히 올리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뭐 결혼하고 이혼한 거 다 알고 만났을 텐데 굳이 그걸 다 지울 필요는 뭐야?라고 물었더니 그래도 이걸 그냥 다 놔두는 거냐며 한동안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 벽 타기를 시전했다. 그러더니 전 남편과 일적으로 여전히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J는 자기는 아직 멀었다며 맥주를 들이켰다. 전 남편과 일까지 같이 하는 건 나로써도 좀 충격이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을 넓고 편견은 없어야 하니까. (넓은 세상 편견 없는 세상!_권감각언니 너무 사랑해요ㅠㅠ)
그런 J는 오늘 또 한 번 자신을 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트너 비자 신청 시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한 서술을 하도록 되어있는데 동거 시작 날을 적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 나와있다. 우리처럼 동거를 안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길래, 그런 사람들은 별로 없겠지만 적지 말아야지라고 했더니 또다시 경악. 동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호주에서는 관계를 정의하는 단어가 많이 있다. Girl/boy friend, de facto partner, Spouse로 나뉘는 거 같은데 보통 연애를 하고 관계가 깊어지면 동거를 하고 더 깊어지면 de facto partner가 되며 그 뒤에 결혼을 한다. 미국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혼 전 동거를 하기도 하고 호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관계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 돈 다음으로 중요한 게 같이 살기 시작한 날짜인데 우리나라는 연애하며 1-2년 먼저 살아보고 결혼하겠다고 하면 아마 많은 부모님들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를 시연하실 것 같긴 하다. (이것도 바뀌고 있나요? 나 너무 시대 못 따라가는 것인가?)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매일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넒은 세상을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아마 우리나라도 많이 바뀌고 있겠지. 나만 해도 결혼 전 우린 둘 다 자취를 했던 터라 양쪽 집을 종종 오가면서 지냈다. 퇴근하고 밥을 같이 먹는 시간도 많아지고 결혼이 다가오면서는 양쪽 집에 월세 내고 사는 게 아깝기도 했다. 아마 우리 같은 커플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부모님께 오픈하면 이런저런 설명은 길어지고 그냥 말하지는 않고 지내는. (요즘 대학가에 가면 동거하는 대학생들이 아주 많다던데) 사실 부모님들도 곰곰이 생각해보시면 딸/아들이 밤새 친구들이랑 술집에서 술 먹고 노는 거보다 남자친구/여자친구네 집에서 자고 다음날 들어오는 게 더 안전하고, 혼자 여행을 가는 거보다 남자친구/여자친구와 여행을 가는 게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물론 그 남자친구/여자친구를 만나보시고 문제가 없는지 정도는 확인하셔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 딸/아들이 건강한 연애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남친/여친과 안전하게 있는 게 확인된다면 쿨하게 외박 혹은 여행은 보내주셔도 되지 않을까? (아들 가진 부모님들은 더더욱 신경을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바탕은 부모님의 역할이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박 못하게 한다고 걱정하시는 그걸 안 한다면 우리나라 모든 모텔은 망하게요"라는 말도 있으니까. 물론 J도 아직은 만약 딸이 남자친구와 외박을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감금이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한다. 그럴 거면 나는 딸이 아니라 그럼 다른 여자랑 외박을 못 하게 아들은 감금시켜야 한다고 대답하곤 하는데 나는 정말 만약 추후에 내 조카나 자식이 연애를 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고민/걱정을 나와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그들이 성 소수자라면 그것도 편견 없이 들어줄 수 있는 그리고 그런말을 해도 될 것 같은 어른으로 늙고싶다. 가장 중요한건 내가 들어줄 수 있다는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그 정도로 편하게 여기고 조언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것 같다. J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믿...?
다음 주에 러닝 클럽에 간다면 그 커플을 자세히 볼 것 같긴 하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멋져 아주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