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더와 GNU에 대한 약간 긴 글

in #kr7 years ago (edited)

블렌더 (Blender 3D)



블렌더의 위용.jpg

제가 메인 도구로 사용하는 블렌더는 오픈소스(Open source) 진영의 3D 프로그램입니다. 아마 오픈소스 프로젝트 중에 가장 성공적인 그래픽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네요. 위의 이미지에서도 보이듯이 영상을 제작하기 위한 모든 기능을 믹서기로 갈아 넣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블렌더...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들과 디자이너들이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있어서 발전시키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업데이트 주기가 굉장히 빠르고 새로 나오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근 몇 년 만에 일반 상용 프로그램 못지않은 성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칸 아카데미에 있는 픽사의 그래픽 강의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3D를 시작하고 싶으면 블렌더로 시작하세요.'

블렌더는 아래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http://www.blender.org

GNU 프로젝트


유럽에서는 예술 대학교 커리큘럼에 블렌더가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대학은 취업 사관 학교 느낌이다 보니 상용 프로그램 위주로 커리큘럼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토데스크, 어도비 같은 회사의 독점 소프트웨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소프트웨어 철학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프로그램이 대단히 좋은 프로그램인 것은 알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최후의 보류라고 하는 대학교에서 독점 소프트웨어의 사용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죠. 블렌더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처음 컴퓨터 그래픽을 시작했을 때는 프로그램 비용이 굉장히 비쌌습니다. 블렌더가 전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3D 맥스 같은 프로그램은 몇 천만 원을 호가하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그들의 원천 기술보다 뛰어난 그래픽 라이브러리(OpenGL, OpenCL)들이 오픈소스[1] 진영에서 나오자 더이상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없는 상황이 왔습니다. 리차드 스톨먼의 GNU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소프트웨어 가격은 여전히 높고 기술의 발전은 더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체 주의를 경고한 조지 오엘과 리처드 스톨먼

스톨먼이 GNU 프로젝트를 구상했을 때는 컴퓨터 산업이 발전하고 있던 초창기였습니다.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특정 회사에 들어가 코드 독점권을 주장하자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이죠. 소프트웨어는 복사와 수정이 쉽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제품과는 다른 개념으로 바라봐야 하며 그러한 속성은 독점보다는 협동으로 더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소프트웨어의 독점권을 주장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하게 되며 프로그래머들은 서로를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할 대상으로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그것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컴퓨터를 남들보다 일찍 접한 이들은 이 도구가 미래에 어떤 힘을 발휘할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1983년 ~ 1985년까지 스톨먼은 독점권을 주장하는 프로그램과 같은 기능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해 독점을 막는 데 노력했습니다. 누군가 문서 편집기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하면 그와 똑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산업계에서는 스톨먼을 싫어했지만 거대한 흐름을 개인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컴퓨터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스톨먼 보다 깊게 이해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스톨먼 같은 활동을 하는 프로그래머를 해커Hacker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에는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컴퓨터 전문가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스톨먼은 GNU를 지지하는 해커들과 함께 1985년 GNU 선언문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조지 오엘이 국가 체제에 대한 전체주의를 경고했다면, 스톨먼은 미래의 새로운 권력이 될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체주의를 경고했던 것이죠.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의 ‘Free’는 ‘자유’와 ‘무료’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은 자유에 관한 것이지 무료, 공짜와 같은 가격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명시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글에서는 자유와 무료가 다른 단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의미에 맞게 ‘자유’라는 번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거나 이익이 남지 않는데 단순히 재미있어서 만든다는 순수한 동기와 전혀 모르는 타인을 동료로 바라보며 상호 협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GNU와 오픈소스[1] 진영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리눅스 커널, 인터넷을 돌아가게 하는 기술, 각종 라이브러리와 응용 프로그램, GIT, 블록체인, 위키백과 등등 그냥 재미있을 거 같아서 전 세계 프로그래머들이 참여한 기술들이 세상을 바꿔 놨고 산업의 흐름을 교체했습니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개인적 만족과 명예뿐인데도 말이죠. GNU에 참여하는 개발자들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차드 스톨먼의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독점 소프트웨어의 횡포에 아까운 시간과 비용을 낭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천만 원 짜리 포토샵, 월정액 익스플로러, 더딘 업데이트, 개발이 중지된 워드프레스 등등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겠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액티브X 정책에 국가 전체가 좌지우지 되는 한국 상황을 보더라도 독점 기술이 얼마나 위험하며 우리의 일상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블렌더를 제작하고 있는, 또 GNU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1] GNU 프로젝트는 엄격한 '자유'를 요구 했기 때문에 기업들의 참여가 더뎠습니다. 익스플로러 독점에 밀린 넷스케이프가 망하면서 브라우저 소스를 공개하기로 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오픈소스' 입니다. 원저작자의 권리도 지키면서 다른 참여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명시한 것이죠. 모질라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이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몇 십 년 뒤 파이어폭스와 크롬이라는 자식을 낳아 익스플로러를 사라지게 만들었으니 역사의 아이너리네요.

이과 감성 묻어나는 글이었네요. 이송합니다. @soc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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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걸 다 할 수 있는 블렌더란게 있다니!!! +0+

유튜브에 한글 튜토리얼도 많으니까 조금씩 보고 배우면 독학도 가능합니다! ㅋㅋ
어차피 한국에는 가르쳐 주는 기관도 없어서 저도 독학 했습니다.

블렌더 좋아하시는 분은 정말 좋아하시던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ㅎㅎ

단축키 외우는 것 때문에 입문은 조금 힘들지만 쓰다 보면
기능이 너무 편해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다시 돌아가기 힘듭니다. ㅎㅎ

오픈소스 개발자들은 재단을 만들거나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오픈소스의 문제 해결과 같은 기술지원에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블렌더 같은 경우는 애드온마다 라이센스가 달라서 개인 개발자들이 애드온 마켓에서 유료로 파는 경우도 있지만 블렌더 자체는 비영리 재단에 GNU-GPL 라이센스로 관리하기 때문에 수익사업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모금과 후원이 더 활발하죠. 언리얼을 만든 에픽 게임즈와 스팀을 만든 벨브사가 최대 후원자고 일반 시민들도 후원이 많습니다. ㅋㅋ

@홍보해

감사합니다 ㅎㅎ

와.. 이런게 있었군요 :D
GNU is Not Unix...

소프트웨어 역사도 보면 참 재미있더라구요.
애플이나 픽사 이야기도 다음에 올려볼께요 ㅎㅎ

오... 애플 이야기가 솔깃합니다! 어쩌다보니 안드로이드를 써본 적이 없어요... ㅋㅋ 제 생활은 모두 애플 제품을 중심으로...

저도 한때 사과 농장을 일궜던 사람으로 지금은 대부분 처분했지만 핸드폰은 늘 아이폰입니다. 아이폰이 가장 좋더라구요. ㅎㅎ iOS나 안드로이드 모두 오픈소스 커널에서 시작되어 개발된 것이라 오픈소스에 빚을 지고 있죠. ㅎㅎ

오! 사과농장 선배님이셨군요! WWDC = 새벽에 치킨 먹는 날 인 저로썬 애플 이야기가 더욱 기대됩니다... ㅋㅋㅋ +_+

모찌@socoban님 안녕하세요. 입니다. @julianpark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왠지 맞춤법이 마음에 걸려서 틀린 건 모두 수정했습니다. ㅋㅋㅋ

아우 큰걸 배워 갑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힘든 일이지만 소프트웨어 세계에서는 가능했다는게 놀랍더라구요.
덕분에 저도 좋은 프로그램을 사용중입니다. ㅎㅎ

그런게 있었군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3D를 할 줄 알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ㅠㅠㅠㅠ

압축하면 80mb 밖에 안하지만(?) 굉장히 기능도 많고 품질도 우수한 툴이에요.
나중에 3D를 배우고 싶으실 때 찾아보시면 좋을거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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