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Cartier)의 크러시드(Crushed) 핑크 골드
비정상적인 힘을 받은 듯 찌그러진 시계, 그렇지만 이것은 고장 난 것이 아니다. 핸즈는 지끄러진(Crash) 다이얼 위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짧고, 무브먼트는 다이얼의 굴곡을 따라서 길게 펼쳐져 있다. 이 시계는 까르띠에가 초현실주의자들의 주제를 어떻게 다이얼 위에 표현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살바도르 달리
이 시계는 스페인 초현실주의자 예술가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의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을 상기시킨다. 까르띠에의 크러시 라인은 시계가 언제나 좌-우 대칭이고, 형태적으로 모난 곳이 없어야 한다는 불문율에 감히 의문을 던진다. 그렇지만 찌그러진 다이얼 위에서도 시간은 흐른다는 형식은 유지하고 있어서, 달리의 그림 속 녹아내리는 시간이나 늘어진 시계 속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묘사를 계승한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세계가 어떻게 현실로 구현될 수 있는가를 보는 것 같다.
시스루 다이얼에 겹쳐지지 않게 사선으로 자른 가죽 밴드와 로마자 인덱스를 스켈레톤 무브먼트의 브릿지로 활용한 것 또한 영리하다. 이것은 앙드레 브로통(Andre Breton)이 말한 것 같이, “이미지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라는 기조를 계승하고 있으며 우리가 고급 시계에 대해 판에 박힌 사고를 하고 있지 않는가를 묻는다.
팔미지아니(Parmigiani) 오발 판토그래프(Ovale Pantographe)
팔미지아니(Parmigiani)의 오발 판토그래프(Ovale Pantographe)는 까르띠에와 구현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초현실주의적 시간을 다룬다. 이 시계는 팔미지아니가 19세기 영국의 워치 메이커인 바르동&스테드먼(Pardon&Stedmann)의 가변형 핸즈(telescopic hands)를 복원하며 얻은 노하우로 만들었다.
시곗바늘은 계란형의 다이얼을 돌면서 그 길이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 팔미지아니는 형태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계란형으로 고정된 케이스에 가변형 시곗바늘을 올린다. 이것은 두껍고 관절 마디가 많은 모양 때문에 실제 사용엔 가독성이 떨어진다. 가독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굳이 사장된 기술을 부활시키고 팔이 늘어나는 시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팔미지아니가 계란형 케이스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시계는 오로지 심미성과 상상력 위에 올라간 작업이다.
오발 판토그래프는 필요에 의해 늘어나는 팔을 가진 로봇 형사처럼, 상상하는 대로 시곗바늘의 길이를 조정한다. 편견을 깨고 상상과 미지의 세계를 재현하는 것. 까르띠에의 크러시드 케이스가 정지한 시점으로 초현실주의를 표현했다면, 팔미지아니의 오발 판토그래프는 흐르는 초현실주의다. 두 작업은 오늘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만 점의 시계와 다르다. 이것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시계이며, 무의식의 구현체로서 의미를 갖는다.
비아니 할터(Vianney Halter)의 안티구아(Antiqua)
비아니 할터(Vianney Halter)는 독립 시계 제작자다. 그가 만든 안티구아(Antiqua)는 거대 함정의 창문이나 비행체의 리벳을 닮았다. 이것은 이미 과거가 된 미래(Past-Future)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양식상으로는 스팀펑크(Steampunk) 디자인을 계승한다.
스팀펑크는 SF 장르 중 하나로 20세기에 21세기의 오버 테크놀로지 미래를 상상하면서 그려지는 디자인이다. 이는 과장된 리벳, 용도를 알 수 없는 파이프, 과장된 움직임을 보이는 기계 구동 등을 찬미한다. 이것은 19세기부터 많은 미래학자들이 상상하던 것으로, 21세기 모습은 리벳이 많은 철판 더미로 봉합된 기계 문명사회였다. 필자도 마찬가지여서, 어릴 적 필자가 그린 상상화 속에서 인류는 거대 유리 돔 속에서 심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고, 리벳이 둘러진 비행체는 하늘과 우주를 날았다.
스팀펑크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펑크 록 음악 장르의 미래적 사운드에도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현재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리벳 디자인은 공기 저항에 쉽게 망가지고, 돔형 창문은 다른 신물질에 비해 압력에 약해 탐사에 적합하지 않다. 다만, 스팀펑크는 (과학적으로는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이미 21세기에 도착해버린 우리의 오판을 애정 하는 행위에 가깝다. 이것은 미학적으로는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예술 경계의 확장이나 사상적으로 미술계에 영향을 준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스팀펑크 디자인은 사조(-ism)로서 가장 근대 문명과 가깝고 지금도 우리를 지나고 있다. 때문에 스팀펑크는 향수를 느끼기도 좋고, 미래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미키 일레타(Miki Eleta)의 타임버너(Timeburner)
최근 시계 업계에서는 스팀펑크 스타일 디자인에 계승이 없는 듯했다. 그러다가 2016년 바젤월드에서 탁상시계 제작 장인인 미키 일레타(Miki Eleta)와 마크 제니(Mark Jenni)가 타임 버너(Time burner)라는 시계를 발표한다.
타임버너는 레트로그레이드로 시간을 표시하고 엔진 모양의 피스톤으로 분을 표시하는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이 시계는 커봐야 1cm 내외인 밸런스 휠에 비해 구동축이 과장되게 크다. 분침 구동부는 구형 산소 발생기의 압력 눈금계처럼 날카롭다. 케이스는 정체 모를 엔진의 냉각 기관처럼 표면적을 키웠다.
당장 스팀펑크 시계라고 검색해보면 등장하는 디자인은 많다.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도 저렴해서 20만 원 내외로 스팀펑크 시계를 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에 대고 스팀펑크를 말하기엔 어딘가 엉성하다. 그 이유는 저가 스팀펑크 시계는 다이얼이나 케이스 모양만 스팀펑크일 뿐, 구동계는 쿼츠나 옛날 무브먼트 메커니즘을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비아니 할터의 안티구아나 미키 일레타의 타임 버너는 구동계의 변이나 캐링 암을 직접 설계한다. 이들은 스팀펑크의 오버 엔지니어링 정신을 계승한다. 가독성보다는 기계 문명 자체를 찬미한다. 타임버너를 보고 있으면, 기계식 시계의 심장이 세포 분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이얼까지 전이된 것 같다. 스팀펑크는 정밀 공학과 신소재 공학, 세련된 디자인 사이에서 다른 차원의 길을 걷는 고유한 장르 예술이다.
이제 시계 디자인은 동시대 예술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마지막 시즌에서 우리는 점점 더 괴기해지고 도발적인 시계 디자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다음 시즌에 계속..
두번째 파란줄무늬 시계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