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인 2월 23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블록체인과 예술을 결합한 ‘포에버 로즈 프로젝트(Forever rose)’ 설명 기자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기자 간담회에 갔다가 멘붕하며 발제를 했다가 고치고, 수정하고, 데스크에게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멘붕에 빠지고, 결과적으론 14일 보도했던 내용에 대해 [뉴스A/S]도 쓰는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작권 시장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야마로 기사를 만들었다가 기자 간담회 뒤 급수습했습니다. 아직은 디지털 원본에 대한 내용을 코인에 못 담는다고요.
☞(14일 보도) 암호화폐 결합한 디지털 사진작품, 원본 10억 원에 팔려(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1466)
☞(23일 보도) [뉴스A/S] 암호화폐 결합한 사진작품 '포에버 로즈', 사실은...(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1532)
포에버 로즈는 사진 작가 케빈 아보쉬(Kevin Abosch)와 모바일 생방송 플랫폼, 업라이브의 제작사 아시아 이노베이션즈 그룹(이하 AIG)이 협력해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작가는 장미 사진을 찍고 AIG는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맞게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ROSE 코인을 단 1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통해 코인을 구입하겠다는 사람을 모집했고, 10개 집단(혹은 개인)이 나타나 14일 바이낸스에서 100만 달러에 판매하는데 성공합니다. 각 코인은 0.1코인씩 투자자에게 지분이 생겼고요.
팩트는 단순합니다. 그러나 모든 기사가 그렇듯, 팩트만 나열하면 재미도 없고 관심도 안 갖습니다. 저 사건이 갖는 의미와 앞으로 가능성에 함께 알려주는 것이 제대로 된 뉴스일 겁니다. 보도자료를 정독하다가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두 문장이었습니다.
우선 보도자료의 제목인 ‘세계 첫 블록체인 결합 디지털사진작품 100만달러에 팔렸다’입니다. <블록체인 결합 디지털 사진>이란 단어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새로운 용도였지요.
그 다음은 요약 소제목이었지요.
<블록체인으로 원본 보증과 함께 다수 입찰자 공동 구매 가능성 확보> 라는 문장이 말입니다.
블록체인에 관심이 조금 있고 지식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가 상당히 중요한 사건임을 알게될 거였습니다. 이 자료를 보고, 저는 그동안 디지털 사진 원본은 원본으로써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이 어려웠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사진 저작권 판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료 배포 측에서는 ‘100만 달러 판매’를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저는 이 프로젝트의 가능성에 주목을 했고, 14일 당일에 그런 야마로 기사를 썼습니다.
게다가 23일에 작가 본인과 앤디 티엔 AIG CEO가 기자 간담회를 한다고 하니, 꼭 참석해서 궁금한 점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었죠.
- 사진 원본을 코인에 담아 원본 보증을 하면 그동안 문제가 많았던 디지털 파일 시장에서 큰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이 기술에 대해 특허를 내거나, 본격 서비스로 만드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 1개 사진에 해당하는 코인을 발행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가. 보도 사진의 경우 수많은 사진이 동시 다발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나. 등등.
당연히 기자간담회에 데스크에게 보고를 할 때도 이런 일을 할 것이고, 이런 내용이 있고, 이런 야마로 기사를 쓰겠다고 보고를 했지요.
그리고 당일,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작가와 CEO의 ‘코인에 원본을 담지는 않았다’는 한 마디에 말입니다. 아니 원본 증명을 할 수 있다더니, 이게 무슨 말이랍니까.
요는 블록체인 기술은 이제 막 등장한 신 기술이기 때문에 코인에 담기에는 사진 원본의 용량이 너무 크다는 거였습니다. 원본을 코인에 얹는 게 아니면 대체 원본 증명을 어떻게 하나요???
기자 간담회 참석 후, 이 프로젝트는 사진의 원본 증명 같은 게 아니라 ‘크립토아트’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고,
이런 예술 행위도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ROSE 코인을 구입한 사람들은 해당 작품에 대한 저작권도, 사용권도 없지만 이런 코인을 ‘소유’하는데 가치를 부여했다는 겁니다. 사진은 모두가 홈페이지(http://www.foreverrose.io/#/)를 통해 감상할 수 있지만 이 사진과 함께 발행한
코인의 고유 주소 또한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애초에 저런 의도라고 이야기했다면 전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일 단신 처리하고 끝냈을 거예요. 일단 전 예술 쪽 기사를 주로 쓰는 사람도 아니고, 과학과 기술 면에서 블록체인의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당일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대부분 기자들도 비슷했을 거예요. 발표 당일도 아니고 일주일이 넘는 다음에 진행하는 기자 간담회에서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갔을 겁니다. 앞으로 계획이라던지요.
(물론 AIG의 아시아 사업 계획이나 기프토의 방향 등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긴 했습니다)
이 결과를 갖고 데스크와 대화를 하는 것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저작권 기술이 반영된 것도 아닌 코인이 왜 100만 달러에 팔렸냐에 질문에 담당 기자는 ‘크립토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같은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뉴스A/S] 같은 추가 보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여러 블록체인 기술 투자 업체나 투자자들이 암호화폐=투기 라는 이미지를 벗기기 위해 참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와 AIG 측은 수익금 전액은 어린이 무료 코딩교육 단체에 전액 기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블록체인으로 발생한 수익을 자선 단체에 기부함으로써 이미지 쇄신을 한 것이죠.
블록체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도 맞습니다. 항상 IT 와 연결시키려 했지 누가 예술과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어요.
수집가들의 희귀 코인 수집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케빈 아보쉬는 “같은 형태의 코인은 얼마든지 만들 수있지만, 예술가로써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필름이 있어도 사진 인쇄는 더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도 비슷할 겁니다.
어찌됐든, 이 프로젝트가 성공이든 아니든 보도하는 제 입장에서는 거대한 미끼를 물었고, 낚시질을 당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급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