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칠월칠석. 일본에서는 타나바타라고 하는 축제날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면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 내 소원은 이미 저번 주 카마쿠라에서 써서 달았다. 닥터와 맺어지게 해주세요.
난 이미 닥터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가 잠수 탄 후 긴 페북 메세지를 써서 보내고 페북 친구를 끊었다.
그래도 난 그에게 연락이 오길 기다린다. 타나바타니까. 기적이 일어나는 날이니까. 어제는 팀 회식이 있었다. 다들 닥터와 내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듣고 날 놀리느라 신났었다. 해변에 이름이랑 하트를 써서 도망간거야. 넌 이 사람을 만난 적이나 있었니? 처음부터 결혼이야기 꺼내는 사람을 믿은게 잘못이야. 넌 얼굴이 남자한테 속을 것처럼 생겼어. 나이 어린 여자애부터 이혼한 비서아줌마에다가 아저씨들까지. 그들은 나를 위해 말을 하는거라고 하지만 그냥 남의 일을 씹는건 재미있고 본인들의 일은 전혀 입밖에 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기념으로 디즈니의 When You Wish Upon a Star를 들었다. 와 진짜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든다. 무슨 소원이든 지나치지 않다는데. 그리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운명의 여신이 소원을 이루어지게 한단다. 또 소원은 갑자기 이루어진다고. 정말 취향저격이다. 약간 재즈풍인 노래를 듣다보니 갑자기 크리스마스가 생각이 났다. 내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꿈은 사랑하는 사람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연인끼리 호텔에서 보내는 그런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집에서 트리 장식을 함께 달고 선물을 서로 주고받고 밥을 같이 해 먹는 그런 따뜻한 크리스마스. 닥터와 미국에서 같이 보내는 그런 크리스마스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지금도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차를 몰고 미국슈퍼에 가서 잔뜩 장을 보고 노래를 틀면서 집에 가서 요리를 하고. 피아노가 있으면 피아노도 치고. 영화를 보다가 잠드는 그런 행복한 날.
아직 내 마음에서 그를 밀어내고 싶지 않다. 다들 회식에서 날 병신 취급했지만 잠깐이나마 나에게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해 준 그를 마음속에 당분간 간직하고 있겠다. 문득 Drop Box에서 옛날 사진을 찾다가 4년전 내가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 장난처럼 이런 사람이 내 남편감이야! 라고 저장했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의 남자는 백인이지만 이 사진에서 닥터가 보였다. 그도 손이 참 컸는데. 그리고 힘이 많을 때 아이들과 놀아주고 싶어서 결혼을 빨리 하고 싶다는 멘트로 날 심쿵하게 했었는데.
연하남이 요새 사무실에 얼쩡거리고 보온병남도 회식에 왔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될 놈들은 눈 앞에 잘 나타난다. 둘다 나에게 바닥을 보였기 때문에 속 시원하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닥터도 이들처럼 되버리는걸까? 내일은 꼭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야지.
When you wish upon a star
Makes no difference who you are
Anything your heart desires
Will come to you
If your heart is in your dream
No request is too extreme
When you wish upon a star
As dreamers do
Fate is kind
She brings to those who love
The sweet fulfillment of
Their secret longing
Like a bolt out of the blue
Suddenly, it comes to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