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들의 생활은 언제나 어딘가에 숨어서 빈틈을 노리고 있는 정신적 위험의 가능성에 관한 끊임없는 배려로 가득 차 있고, 그 위험을 완화시키려는 시도는 수없이 많다.'
'무의식의 예기치 못한, 위험한 경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오직 하나의 목적으로 실시되는 마술적 의식이 수없이 많다.'
(융 기본저작집 4권, 인간의 상과 신의 상)
참 많이 공감되는 글이다.
예기치 못 한 큰 일을 겪은 분들이 감내하는 고통을 보면서 더 그렇다. 고베 지진 때 그곳에 계셨던 분도 기억나고 멀리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분도 기억난다. 범죄 피해자들을 의뢰받아 진료하다보니 그분들이 겪는 고통도 자주 듣게되고 또 성매매로 고통받다 세상으로 나오신 분들 얘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디 그분들만의 얘기겠는가? 비록 비교할 순 없어도 사실 우리 모두의 얘기이기도 하다. 예기치 못 한 불행을 겪어보지 않은 분이 어디 있으랴?
부질 없는 것 같지만 예기치 못 한 어려움에 대한 불안이 이해도 된다.
사실이지 지금은 희미하지만 자랄 때는 참 금기가 많았었다. 밥그릇에 숟가락을 꽂는다든가, 문지방을 밟는다든가, 혹은 배게를 세워놓는다든가 하면 혼이 났었다. 조상들의 어떤 지혜일지는 몰라도 그런 금기에는 아마도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어떤 심상이 만든 두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의례(retual)의 많은 부분들도 정교하게 장치된 그런 회피일 것 같다. 결국은 외부의 어떤 자극이 촉발시킨 잠재의식의 심상이 주는 예기치 못 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한 것 아니겠는가?
그 심상 가운데는 비록 기억하진 못 해도 과거의 언젠가 직접 겪었던 경험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경험과는 무관한 인류 보편적인 심상일 수도 있다. 융은 이를 집단 무의식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금기는 금기일 뿐이라고 치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중에는 정말 인류보편의 집단무의식에 내재된 원형상과 관계된 것도 있을 수 있기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란 것이다.
누미노제는 융이란 걸출한 정신과를 통해 처음 접했던 단어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지 관련 글을 찾아보면 주로 융의 관점에저 본 내용들이 많긴 하다.
누미노제란 단어는 루돌프 오토 (Rudolf Otto)라는 신학자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종교적 감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신의 의지와는 상반되는 한 쌍의 느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신성한 힘"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인 numen으로부터 numinose란 단어를 끌어왔다고 한다. 바로 매혹적인(fascinans) 동시에 신비한 떨림(mysterium tremendum)을 동반하는 어떤 느낌을 이른다. 경외와 매혹이다.
거룩한 존재 앞에서 자신이 진실로 피조물임을 존재론적으로 통감하는 감정적, 미학적, 직관적 체험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누미노제는 "거룩함의 체험"이다.
융은 무의식의 심연에 있는 원형들과 만날 때 사람들은 이 근본적인 두려움과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종교(religion)란 '렐리게레(religere)'라는 라틴어 단어가 말해주듯, 루돌프 오토가 적절하게도 'Numinosum'이라고 부른 것, 즉 어떤 역동적인 존재나 작용에 대한 주의 깊고 성실한 관찰이다.
종교는 인간 정신의 특수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렐리기오(religio)'라는 개념의 본래 용법에 걸맞게 어떤 동적인 요소들에 관한 주의 깊은 고려와 관찰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융 기본저작집 4권, 인간의 상과 신의 상>
따라서 내면에서 느껴지는 누미노제의 느낌을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태도를 이른바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불교명상에서 얘기하는 사띠와도 일견 통하는 점이 있어보인다.
'근대정신은 늙은 아담의 죽음, 새로운 인간의 창조, 영적 재탄생, 그리고 이와 비슷한, 유행에서 뒤떨어진 '신비한 부조리들'에 관해 말하는 저 옛 진리들을 잃어버렸다.'
<융 기본저작집 4권, 인간의 상과 신의 상>
는 융의 말은 백여년 전의 얘기라고만 볼 수가 없다. 어쩌면 현재진행형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는 듯 하다.
실증과 합리라는 가냘픈 조각배로 항해하기에는 무의식의 바다는 지나치게 넓고도 깊다.
더구나 금기와 의례라는 종교의존주의의 돛단배 역시 매한가지라는 생각이다.
꾸욱.들렸다가요
방문 감사합니다. 꾸욱.
매번 글을 읽을 때마다 무슨 공부를 하시는지 여쭙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거 같아 올리시는 글만 조용히 읽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례라니요. 제 마음을 공부 중인데, 요즘은 융 전집을 다시 읽고있습니다. 저는 융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개인적으로 좋아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융을 많이 인용하고 계셔서, 저도 꼼꼼하게 몇차례 읽어보곤 했는데, 많이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종종 들러서 읽고 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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